해양 플랜트 '심장'…삼성重, 독자 개발
LNG 액화장비 첫 국산화
유럽 업체에 兆단위 납품 눈앞
핵심 기자재도 '초격차' 시동
삼성중공업이 개발한 FLNG의 액화 설비인 센스포. 기체인 천연가스를 액체로 바꾸는 핵심 장비다. /삼성중공업 제공
삼성중공업이 ‘액화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설비(FLNG)’의 ‘심장’으로 불리는 액화장비(기체인 LNG를 액화하는 장비) 개발에 성공해 이탈리아 에너지기업 ENI와 첫 수주 협상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액화장비는 기(基)당 2조~4조원에 이르는 FLNG 건조 비용의 35%를 차지하는 핵심 기자재지만 그동안 국산화가 이뤄지지 않아 미국과 유럽산을 써 왔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은 ENI가 발주할 FLNG에 자체 개발한 액화장비인 ‘센스포’를 적용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그동안 삼성은 발주처 요구에 따라 FLNG를 건조할 때 미국 하니웰이 제조한 액화장비를 주로 사용해 왔다. 하지만 ENI는 검증 결과 삼성 액화장비의 ‘가성비’가 하니웰보다 낫다고 판단해 향후 도입할 FLNG에 센스포를 장착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글로벌 에너지 기업은 안정성 때문에 검증된 미국 장비 위주로 썼지만, 작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며 “LNG 개발 붐에 따라 FLNG 건조 수요가 늘자 에너지 기업들이 가성비가 좋은 삼성 액화장비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중공업이 액화장비 수주에 성공하면 명실상부한 ‘FLNG 최강자’가 될 것으로 관측했다. FLNG 시장의 유일한 라이벌인 중국 위슨조선소는 액화장비를 내재화할 기술이 없을 뿐 아니라 미국의 대(對)중국 제재로 신규 수주도 사실상 막혔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핵심 기자재 국산화는 조선업계 숙원 사업”이라며 “한 번 납품이 성사되면 다른 에너지 기업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K조선의 숙원"…삼성重, 핵심 기자재 국산화 꿈 이뤘다
해양플랜트는 한국이 만들지만 '알짜' 기자재는 美·유럽이 장악
요 몇 년간 한국 조선업계를 먹여 살리는 선종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다. 일반 컨테이너선보다 수익성이 좋은 데다 중국이 완전히 따라잡지 못한 몇 안 되는 선종이어서다. 이렇게 재주는 한국이 부리지만, 돈 버는 업체는 따로 있다. 프랑스 엔지니어링업체 GTT다. LNG운반선의 핵심 설비인 LNG 보관설비(화물창) 기술을 독점한 이 회사는 한국이 LNG운반선 계약을 따낼 때마다 수주 금액의 5%(약 180억원)를 따박따박 로열티로 걷어간다. 이른바 ‘GTT 세금’이다.
이뿐이 아니다. 국내 조선업체는 애프터서비스(AS)도 반드시 GTT를 써야 한다. 자체 기술이 없으니 문제가 생기면 GTT만 쳐다볼 수밖에 없어서다. 핵심 기자재를 국산화하지 못한 허울뿐인 ‘조선 강국’의 민낯이다.
◇해양 플랜트 ‘기술 표준’ 잡아라
삼성중공업이 액화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설비(FLNG)의 핵심 장비인 ‘액화설비’(센스포·SENSE IV) 내재화에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LNG운반선의 화물창처럼 핵심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FLNG에서도 ‘알짜배기’를 외부에 내줘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삼성중공업은 조선업계에 불황이 몰아친 10여 년 전에도 핵심 기자재 연구개발(R&D)을 접지 않았다. 이렇게 손에 넣은 게 센스포다. 천연가스를 연간 200만t가량 액화할 수 있는 이 설비는 여러 장점이 있다. 전력 소모량이 기존 장비보다 최대 14% 적다는 점, 장비의 크기가 작은 가스 팽창 방식이라 안 그래도 좁은 FLNG 공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게 대표적이다.
최대 매력 포인트는 가격이다. FLNG 건조 비용은 상부 구조물(톱 사이드)과 하부 구조물(헐 사이드)이 각각 70%, 30%를 차지한다. 센스포는 톱 사이드 건조 비용의 50%를 차지하는 핵심 설비다. 삼성은 액화장비 후발주자인 데다 FLNG를 건조하면서 액화장비를 함께 개발해 탑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하니웰 제품을 따로 구입해 장착하는 것보다 가격 경쟁력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에너지기업 ENI가 삼성에 센스포 납품을 요청한 이유다.
삼성은 센스포를 자체 설계한 뒤 제작은 해외 기업에 맡길 계획이다. 현재로선 센스포 생산을 맡길 만한 국내 업체가 없어서다. 삼성은 중장기적으로 일감을 국내로 돌려 물류비 등을 절감하는 동시에 국산 기자재 밸류체인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미국과 유럽이 장악하고 있는 해양 플랜트 기자재의 패권을 국내로 돌리겠다는 의미다.
◇FLNG ‘풀 밸류체인’ 갖춘다
삼성중공업이 센스포 기술을 확보한 건 2021년이다. 하지만 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등 글로벌 ‘톱 티어’ 에너지 기업들이 검증된 미국 기자재만 찾는 탓에 납품 기회가 없었다. 상황이 바뀐 건 작년 말부터다. ‘화석연료로의 귀환’을 내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세계적으로 ‘LNG 개발 붐’이 일어서다. FLNG를 찾는 글로벌 에너지 기업의 수요가 늘어나며 전반적인 건조 가격이 오르자 가성비가 좋은 센스포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삼성중공업이 독자 개발한 핵심 기자재는 센스포뿐이 아니다. 연료 공급 시스템인 에스퓨가스와 재기화 시스템인 에스리가스는 이미 FLNG에 적용하고 있다. LNG를 운반하는 엑스랠리, 증발하는 가스를 처리하는 가스이젝터, LNG를 선박에 하역하는 리퀴드 이젝터 연구도 마쳤다.
FLNG를 발주한 기업이 이들 장비도 승인하면 국산화 비중은 한층 더 올라간다. FLNG의 국산화 비율은 헐 사이드는 60~70%에 이르지만, 주요 기자재가 장착되는 톱 사이드는 30~40%에 불과하다. 업계 관계자는 “핵심 기자재를 국산화했다는 건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조선 강국’이 됐다는 의미”라며 “지역 기자재 업체로의 낙수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형규/김우섭 기자 k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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