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늪 빠진 K바이오
(4) 꽁꽁 묶인 의료데이터
美 84만개인데 韓 3000개
20년 뒤늦게 확보 나섰지만
개인정보법·의사반발 등 암초
신약개발·질병 대응 '뒷걸음'
유전자 검사 사업도 속속 포기
‘84만 개와 3000개.’
미국과 한국이 각각 확보한 유전체 데이터 규모다. 한국이 확보한 데이터는 미국의 0.3%에 불과하다. 세계적으로 개인 맞춤형 헬스케어와 치료제 개발을 위한 의료 데이터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한국은 규제로 데이터 수집 및 활용이 막혀 관련 산업 발전이 지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에서 데이터 사서 쓰는 한국
유전체 데이터는 취약한 질병의 대응책을 마련하고, 환자 개인에게 가장 잘 듣는 신약을 개발하는 데 필수 요소다. 최근 인공지능(AI) 신약 개발이 등장하면서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영국은 2006년부터 바이오뱅크 사업을 도입해 50만 명 이상의 유전체 데이터를 확보했다. 이를 토대로 희소질환, 암, 전염병의 유전적 원인을 밝히기도 했다. 핀란드는 자국민의 약 10%인 20만 명의 유전체 데이터를 확보했으며, 미국도 84만 명의 데이터를 확보해 연구자와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게 돕고 있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암젠, 리제네론 등 글로벌 대형 제약사는 이들 국가의 데이터를 활용해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지난해 12월 뒤늦게 ‘국가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사업’을 시작했다. 익명화한 데이터로 수집이 가능한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개인의 동의가 필수여서 데이터 확보가 더디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개인의 동의를 받고 확보한 유전체 데이터는 약 3000개다. 시민단체는 건강 데이터 유출로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하며 국내 의료 빅데이터 공개에 반발해왔다.
핀란드는 2013년 바이오뱅크법을 시행해 유전체 정보를 연구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지만 신용평가기관, 보험사의 의사결정에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를 토대로 국민의 의료 데이터 제공에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한 AI 신약 개발 업체 대표는 “국내에도 공공 의료 데이터가 많지만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데 제약이 있어 국내 기업은 대부분 해외에서 데이터를 사서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한국인 맞춤 신약을 내놓기 어려워진다”고 덧붙였다.
◇DTC 규제에 민간도 속속 포기
한국은 자가(DTC) 유전자 검사 시장 규제 장벽도 높다. DTC 유전자 검사란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유전자 검사기관에 직접 의뢰해 받는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말한다. 글로벌 시장은 2조1040억원 규모지만 한국은 300억원 정도(한국바이오협회 추정)에 불과하다.
미국 일본 등 대부분 DTC 유전자 검사 업체는 각종 암, 치매 등 질병 발생 가능성을 포함해 400개 이상의 항목을 검사할 수 있다. 별도 규제가 없다. 반면 한국에서는 질병과 관련한 데이터 분석을 할 수 없다. 검사의 부정확성을 우려한 의료계의 반발이 반영된 결과다.
업계는 휘청이고 있다. 바이오니아, 클리노믹스, 엔젠바이오, 지니너스 등 여러 업체가 DTC 유전자 사업을 접고 있다. 롯데헬스케어는 자회사이자 DTC 검사 업체인 테라젠헬스 매각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유전체 검사를 통한 질병 예측과 맞춤형 치료제 개발은 국민의 의료비 지출 감소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며 “국내에서도 DTC 유전자 검사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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