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손충당금 1.5조 늘고 순익 8000억 줄어
“금융 당국 추가 적립 지시에 순익 감소”
서울 시내 한 금융사 영업점 창구 모습. 기사와는 직접적인 관련 없는 사진. /뉴스1
캐피탈사의 순이익 규모가 지난해 대폭 감소했다. 캐피탈업계 안팎에서는 전년보다 대손충당금을 많이 쌓느라 순익 규모가 줄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일각에선 금융 당국이 업체별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대손충당금을 더 쌓으라고 지시해 장부상 실적이 나빠졌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5일 금융감독원 정보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여신금융협회 회원사인 50개 캐피탈(할부리스)사의 지난해 순이익은 2조6333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3조4385억원)과 비교해 8052억원 줄어든 수치다.
캐피탈업계는 전년 대비 실적이 악화한 이유 중 하나로 대손충당금 적립 증가를 꼽는다. 대손충당금이란 금융사가 손실이 나거나 대출 회수에 실패할 것을 대비해 쌓아두는 돈이다. 금융사가 이익으로 번 돈에서 대손충당금을 전환하기에 대손충당금 규모가 증가하면 장부상 이익 규모는 그만큼 줄어든다. 캐피탈업계의 지난해 대손충당금 적립액은 5조4747억원으로 2022년(4조246억원)대비 1조4501억원 늘었다.
금융 당국은 지난 1~2월쯤 캐피탈사에 지난해 회계 결산 마무리 전 대손충당금을 추가로 쌓으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태영건설이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신청하는 등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금융 및 부동산 경제 뇌관으로 지목되자 금융 당국이 캐피탈사 상대로 손실 대비를 강화하라고 주문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월 5일 금융감독원 업무계획 발표 자리에서 “부동산 PF는 ‘우리 경제의 뇌관’이다”라며 “정당한 손실 인식을 미루는 등 그릇된 결정을 내리는 회사에 대해서는 시장에서 퇴출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2월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2024년도 금융감독원 업무계획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금융 당국의 대손충당금 추가 적립 지시에 대해 캐피탈업계 일각에선 ‘근시안적인 조치’라고 지적한다. 업권 전체가 적자로 전환한 것도 아니고 연체율이 위험한 수준도 아닌데 일방적으로 대손충당금을 더 적립하라고 지시해 실적이 감소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회사별 재무건전성을 고려하지 않고 캐피탈업계를 묶어 위험하게 평가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대출 연체율이 5%를 넘기는 캐피탈은 50곳 중 13곳이며 이중 연체율이 두 자릿수를 넘기는 곳은 8곳이다.
캐피탈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요즘 같은 불경기에 연체율 5% 미만 캐피탈사들이 많은 것은 업권이 무난한 상태임을 보여준다”며 “(금융 당국의 대손충당금 적립 지시가) 회사 입장에선 불만이 있지만 감독 당국의 지시니 따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대손충당금 적립 압박이 우회적인 부동산 PF 정리 지시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금융사가 부동산 PF 대출을 매각한다면 전체 채권 규모가 줄어든다. 채권 규모가 감소하면 적립해야 할 대손충당금 규모도 줄어든다. 대손충당금으로 전환되는 돈이 적다는 건 장부상 순익을 갉아먹는 영향도 감소함을 뜻한다. 대손충당금 부담을 떠안든지 부동산 PF를 정리하든지 두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또 다른 캐피탈업계 고위 관계자는 “금융 당국 입장에서는 계속 부동산 PF가 문제로 제기되니 정리를 유도하고 있다”며 “시간을 두면 정상화가 가능한데 지금 당국의 압박으로 사업장을 매각하면 캐피탈사 입장에선 손실이 커 불만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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