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국립생태원 에코리움(Ecorium)
‘생태’라는 가치 고려해 서천군에 건립
5개 전시 온실 기후대별 생태계 재현
일조 환경 고려 ‘우각호’ 개념 디자인
각 온실마다 온습도·빛의 양도 바뀌어
‘이식된 생태’ 지속가능성 확보 위해선
인접한 지역 군산과 공생관계 이뤄야
금강 하구에 위치한 충남 서천과 전북 군산은 비슷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일종의 경쟁 관계를 이루어 왔다. 군산을 배경으로 하는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서도 두 지역의 경쟁 관계를 예측하는 내용이 나올 정도다. 초봉을 겁탈하고 나중에는 초봉에게 죽임을 당하는 형보는 “들은풍월로 강 건너 장흥(현 서천군 장항읍)이 축항까지 되면 크게 발전이 될 테고, 그러는 날이면 이쪽 군산이 망하게 된다”고 초봉과 결혼한 태수에게 씨부렁거렸다.
두 지역의 운명은 1989년 지정된 ‘군장국가산업단지’에서 크게 갈렸다. ‘군장’이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국가가 군산과 장항에 조성하는 산업단지 사업이었다. 그런데 먼저 개발된 군산지구의 분양이 IMF 금융위기로 신통치 않았다. 문제는 이 사업이 군산지구의 분양 수입을 통해 장항지구를 조성하는 구조였다는 점이다. 결국 군산지구의 진행이 더뎌지면서 장항지구의 개발도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여기에 장항지구 갯벌의 보전 가치가 이슈화하면서 2007년 결국 장항지구는 제외됐다. 사업의 명칭도 장항이 빠진 ‘군산국가산업단지’가 됐다.
국립생태원 에코리움은 곡류하던 하천의 일부가 끊겨 생긴 호수(우각호)를 닮아 구불구불한 선형을 이루고 있다. 각기 다른 기후대의 환경을 담고 있는 다섯 개의 전시 온실을 관람하다 보면 마치 작은 지구를 여행하는 것 같다.
정치권에서는 4년 재계약을 위해 서천군과 장항읍 주민들을 달랠 필요가 있었다. 산업단지 개발이 환경 이슈로 무산됐으니 선택할 수 있는 키워드는 ‘친환경’과 ‘생태’였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생태’를 내건 다른 개발 아이템이었다.
‘어메니티(Amenity) 서천 2020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정부와 정치권이 내놓은 대안 사업은 환경부의 국립생태원, 해양수산부의 국립 해양생물자원관, 연안 정비였다. 산업단지 조성도 추진됐는데 내륙으로 자리를 옮겨 ‘생태’라는 이름을 넣어 면적을 확장했다(당초 264만㎡, 변경 331만㎡). 서천군청 홈페이지에 따르면 정부대안사업의 전체 사업비는 1조1117억원이다.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서천군 입장에서는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셈이다. 무엇보다 국립생태원 건립을 통해 서천군은 환경부 산하 기관 및 외부 방문객 유치를 위한 확실한 앵커시설을 유치하게 됐다.
국립생태원 건립 부지는 서천 발전 정부대안사업 공동 협약 체결 후 3개월이 지나기 전에 서천군 마서면으로 결정됐다. 상당히 빠른 결정이었다. ‘국립생태원 조성 기본계획 수립 연구’에서 서천군 내 4개 후보지를 검토했는데, 사업 대상지가 해풍에 영향이 없고 접근성 및 관광자원 연계성이 높아 상대적으로 지가가 높음에도 최적 후보지로 선정됐다. 이듬해 환경부는 ‘국립생태원 마스터플랜 현상 설계 공모’를 공고했다. 국립생태원의 핵심 시설이라 할 수 있는 실내생태관은 별도의 절차를 거쳐 설계자를 선정하기로 했지만 워낙 규모가 있는 사업이다 보니 대형 설계사무소들이 현상 설계에 참여했다. 최종 심사 결과, 기본 및 실시설계권이 주어지는 최우수작에 삼우설계의 계획안이 선정됐다.
수상작들을 보면 전체적인 시설 배치는 대상지 남쪽을 지나는 금강로에 주 출입구를 두고 북쪽으로 방문자센터∼연구교육영역∼보전영역∼실내생태관∼관람영역∼용화실방죽∼부출입구 순으로 거의 비슷했다. 설계자가 제안한 마스터플랜 개념은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드는 힘찬 생명의 맥박’이라는 뜻의 ‘바이털 펄스(Vital Pulse)’였다.
마스터플랜을 확정한 뒤 국립생태원의 핵심 시설인 에코리움(실내생태관)이 시설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턴키 방식으로 발주됐다. 에코리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열대관, 아열대관, 지중해관, 온대관, 극지관으로 나뉜 5개 전시 온실에 기후대별 생태계를 재현하는 작업이었다. 삼우설계와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에코리움 건립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설계자는 전시 온실의 형태와 구성을 크게 중앙집중형, 선형, 그루핑형으로 나눠 검토한 뒤 크리스털, 나뭇잎, 흘러가는 이파리, 우각호(牛角湖), 녹색 방주 개념으로 각각 디자인을 발전시켰다. 여기에 일조 환경을 시간대별로 분석하여 다섯 개의 전시 온실이 남북 방향에서 동쪽으로 볼록하게 배치됐을 때 가장 유리하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관람 동선까지 고려하여 최종적으로 우각호 개념을 최적의 배치안으로 선정했다. 물론 완성된 에코리움을 보고 우각호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마스터플랜 개념이었던 ‘바이털 펄스’를 에코리움의 디자인 콘셉트로 설명하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환경파괴로 사라져 가는 열대우림을 재현한 열대관
국립생태원 에코리움은 눈에 보이는 건축물의 형태나 디자인보다 다양한 기후대의 식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생장 조건을 만들어내는 건축적 기술을 더 중요하게 평가해야 한다. 또한, 국립생태원이 서천군에 들어서게 된 배경인 ‘생태’라는 가치를 고려한다면 건축물의 에너지 시스템을 어떻게 구성하느냐는 시설 건립의 타당성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도 있다.
삼우설계는 열원시스템으로 지열 히트 펌프, 목재 칩 보일러, 열병합발전 폐열, 흡수식 냉동기, 태양열 급탕 시스템을 도입하였고 공조 시스템으로 창틀 난방, 공조급기, 상하부 자연 환기, 변풍량 단일 덕트 등을 전시 온실의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르게 적용했다. 특히, 창틀 난방은 온실의 창틀 내부에 온수를 순환시켜 실내 온도를 유지하는 특별한 시스템이다.
열대관에서 시작해 극지관으로 끝나는 에코리움의 관람 과정은 마치 작은 지구를 여행하는 것 같다. 전시 온실마다 각기 다른 온습도와 빛의 양은 하나의 온실을 나와 다른 온실을 들어서는 짧은 구간을 지나는 사이에 바뀐다.
서천군에 국립생태원이 건립된 지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여전히 국립생태원은 서천군에 ‘이식된 생태’다. ‘생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생물이 살아가기 위한 토양과 환경을 형성하는 일, 즉 지속가능성 확보다. 그렇기 때문에 이식된 생태가 지역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또 다른 생태계를 형성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태는 고립된 영역 안에서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다. 하나의 생물, 하나의 장치, 하나의 시설이 해당 지역 사회에 뿌리내리려면 해당 지역 사회를 넘어 다른 생물, 다른 장치, 다른 시설들과 ‘계(系: 일정한 상호 작용에 관련이 있는 집합체)’를 이루어야 한다. 서천군만을 보기 위해 외부 방문자들이 찾아오기를 기대하는 건 욕심이다. 더욱이 국립생태원은 서천군만을 위한 시설로 보기에는 미래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너무 크다.
서천군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국립생태원을 포함해 지역 내 ‘생태’라는 이름하에 들어선 다양한 시설을 활용하는 것이다. 동시에 인접한 군산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군산의 근대문화 자산과 도시적인 요소들을 서천의 생태적 요소, 자연환경과 엮어내야 한다. 결국 현시점에서 서천과 군산, 두 지역은 경쟁이 아닌 공생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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