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에 막힌 의료개혁 법안, 국회서 '표류'
"진료기록 제공 NO, 비대면 NO"
비상 상황에도 필수의료 유지
노인 주치의 등 의료 관련 법안
의협에 막혀 '무더기 폐기·계류'
반대 이유 따져보면 결국 밥그릇
"직역 이기주의로 환자들만 피해"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의료계가 비상 시 필수의료 유지, 진료기록 제공 의무화 등 의료 서비스 혁신 방안에 대해서도 대부분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야 정치권이 동의하는 의료개혁 입법안 중에서도 의료계 반대로 표류하고 있는 법안이 적지 않았다.
< “전공의 간절히 찾습니다” >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이어지는 가운데 2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전공의 전용 공간에 신입 전공의 모집 안내문이 붙어 있다. 최혁 기자
○기득권 수호 우선인 의료계
2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가 전공의 집단행동을 계기로 추진하는 상당수 의료 서비스 개혁 방안에 대해 의료계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전공의 대신 의료현장을 지키고 있는 진료지원(PA) 간호사를 법제화하는 게 대표적이다.
정부는 지난달 27일부터 전공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PA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한시적으로 확대했다. 국민의힘은 전공의 사태를 계기로 PA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구체화한 간호법 개정안을 최근 발의했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의협) 측은 “의사가 해야 할 일을 전공의가 없다는 이유로 PA 불법 의료행위 양성화를 통해 해결하려 한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정부가 한시 허용하고 있는 비대면 진료도 의료계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는 의료 인프라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지만 의협은 “오진을 줄이기 위해선 대면 진료가 원칙”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비대면 진료를 금지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의료계는 정치권이 추진하는 주요 의료 서비스 제도 개혁에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의료 관련 입법활동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의협은 20·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의료 관련 법안 중 734건에 찬성 또는 반대 입장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했다. 80%에 달하는 585건(79.7%)이 반대였고, 찬성은 103건(14.0%)에 불과했다. 의협이 반대한 585건 중 438건(74.9%)은 폐기됐거나 계류 중이고, 나머지 147건(25.1%)은 가결됐다.
○전공의 근무여건 개선은 ‘찬성’
의사들은 제도 개혁을 반대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의료계에 책임을 부과하는 법안에 대해 반대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중환자 치료, 응급 의료, 분만 등 생명과 직결된 분야의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는 의사들의 단체행동을 제한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이 법안은 2020년 8월 전공의 파업 직후 민주당이 발의했는데 의료계 반대에 밀려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의협은 “필수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의료행위를 규정할 경우 필수의료 기피가 심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병원 간 진료기록 전송 시스템 도입도 의료계는 반대하고 있다. 의협은 “진료기록 제공은 당연한 의무가 아닌데 전송 거부 시 시정명령이나 벌금형을 내리는 것은 가혹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료기록 전송이 의무화되면 지금처럼 병원을 옮길 때 진료기록을 일일이 발급받아야 하는 불편이 사라져 환자들은 찬성하고 있다. 진료기록 공유로 병원간 협력 시스템을 강화할 수 있다는 장점 등으로 전문가들도 해당 법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의료계는 노인 주치의 도입도 반대하고 있다. 국내 의료 접근성이 좋은 편이라 필요성이 크지 않고, 환자의 의료진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의료계는 전공의 수련환경을 개선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에 대해선 적극 지지하고 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의료계에서 반대하는 것만 추진해도 제대로 된 의료개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반대가 심하다”며 “의사들의 수입을 지키기 위한 반대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허세민/황정환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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