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명 그냥 나온 숫자 아니다"
2035년까지 1만5천명 늘려야
정부 출범후 37차례 증원 논의
점진적 증원, 9번 싸워 모두 져
제대로 된 의료시스템 만들것
의정 빨리 협의테이블 앉아야
1일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의료인이 윤석열 대통령의 의대 증원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TV 생중계로 지켜보고 있다. 이충우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의대 증원 문제에 대해 "2000명은 그냥 나온 숫자가 아니다"며 산정 근거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윤 대통령이 의정 갈등의 핵심인 2000명 증원에 대해 조정 가능성을 열어놓긴 했지만 대국민 담화의 방점은 의대 정원 확대의 당위성에 찍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총선 후에도 양측 간 타협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1일 윤 대통령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로는 이례적으로 긴 시간인 51분간 의료개혁과 관련해 국민에게 입장을 직접 설명했다.
가장 먼저 꺼낸 메시지는 국민에 대한 사과였다. 윤 대통령은 "이 어려운 상황에도 불편을 감수하며 정부의 의료개혁에 힘을 보태주고 계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아울러 국민들의 불편을 조속히 해소해드리지 못해 대통령으로서 송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다음으로 윤 대통령은 2000명이란 숫자가 어떻게 나왔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51분간 이어진 담화문 중 30분가량을 여기에 할애했다.
윤 대통령은 우선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추계를 검토했다"며 "어떤 연구 방법론에 의하더라도 2035년에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취약 지역에 전국 평균 수준의 의사를 확보해 공정한 의료 서비스 접근권을 보장하는 데만 지금 당장 5000명의 의사가 더 필요하다"며 "결국 2035년까지 최소한 1만5000명의 의사를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현재 우리나라 의사 수는 11만5000명이고, 10년 후 매년 2000명씩 늘기 시작하면 2045년에야 2만명의 의사가 더 늘어난다"며 "저는 증원된 인원이 배출되지 못하는 향후 10년 동안 우리 국민들께서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으실지 그게 더 걱정"이라고 했다.
2022년 기준으로 6.8%인 70대 이상 의사의 비중은 2035년에는 19.8%로 증가한다. 의료진 고령화가 심각해지는 가운데 의사들의 근로시간은 평균 12%, 전공의 근로시간은 평균 16% 감소했다는 통계도 제시했다. 의사 수가 더 필요할 수밖에 없는 근거를 제시한 셈이다.
다른 나라와도 상세히 비교했다. 윤 대통령은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의 현재 의사 수를 제시하고 한국 인구 기준으로 환산했을 때 그 숫자가 각각 15만6000명, 16만3000명, 23만2000명, 13만4000명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모두 우리나라 의사 수 11만5000명보다 크게 높다"며 "현재 매년 배출하는 의사 수가 영국은 1만1000명, 프랑스는 1만명, 독일은 1만127명, 일본은 9384명이다. 우리나라 3058명보다 크게 많다"고 강조했다.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3.7명인데 한국은 2.1명에 그친다는 점도 지적했다.
특히 지방 상황은 더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종합병원과 지방의료원은 수억 원의 연봉을 제시해도 의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며 "강원도에서 운영하는 영월의료원은 지난해 11월부터 8차례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채용공고를 냈지만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의료계와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적극 반박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2022년 5월 출범 이후 꾸준히 의료계와 의사 증원 논의를 계속해 왔다"며 "다양한 협의 기구를 통해 37차례에 걸쳐 의사 증원 방안을 협의해 왔다"고 강조했다. 작년 2월 9일부터 지난 1월 16일까지 회의 날짜와 정부의 요청 내용을 모두 밝히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1월 15일과 16일에 걸쳐 대한의사협회, 대한전공의협의회, 대한병원협회 등 6개 단체에 공문을 보내 적정 의대 증원 규모에 대한 의견을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대한의사협회는 의대 증원 규모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고 비판했다.
점진적 증원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도 강조했다. 점진적으로 늘리려 할 때마다 의료계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점진적인 증원이 가능했다면 어째서 지난 27년 동안 어떤 정부도 단 한 명의 증원도 하지 못한 것인지 되묻고 싶다"며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갈수록 더욱 공고해졌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전공의들의 업무 복귀와 대화 참여를 촉구하면서 의료개혁에 대한 의지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제가 대통령으로서 앞으로 수많은 국민의 생명을 구하고 또 수많은 국민의 건강을 지켜낼 여러분을 제재하거나 처벌하고 싶겠냐"며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매우 중요한 미래 자산"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제가 의료개혁을 통해 제대로 된 의료시스템을 만들겠다"면서 "의사단체는 하루라도 빨리 정부와 테이블에 앉아 무엇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한 길인지 논의에 나서야 한다"며 의료개혁특별위원회 등 사회적 협의체 구성을 촉구했다.
이날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놓고는 '정면 돌파' 의지를 강조했다는 해석과 함께 총선을 앞두고 최악의 충돌을 막기 위해 유연한 태도를 취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필요한 정책은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추진하겠다는 쪽에 더 무게가 실린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께서 저를 불러내셔서 이 자리에 세워주신 이유가 무엇인지 저는 잘 알고 있다"며 "대통령인 제게 가장 소중한 절대적 가치는 바로 국민의 생명"이라는 말로 담화를 마쳤다.
[우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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