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주권이 곧 국가 경쟁력…주요국들, AI 자립 선언
한국도 독자 AI 본격화…기술 종속 탈피 시동

'하이퍼클로바X' 소개하는 최수연 대표이사 (서울=연합뉴스) 최수연 네이버 대표이사가 24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팀 네이버 콘퍼런스 단(DAN) 2023'에서 초대규모 AI '하이퍼클로바X'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2023.8.24 [네이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기자 = "우리 인공지능(AI)도 이제 국산화해야 하나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이런 질문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 배경에는 생소하지만 매우 중요한 개념인 바로 '소버린 AI(Sovereign AI)'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말로는 '국가 AI 자립'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이름만 들어도 어렵고 거창해 보이지만, 이 개념을 이해하면 왜 요즘 각국이 AI 기술에 사활을 걸고 있고, 우리나라가 왜 이토록 서두르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AI 왜 '메이드 인 코리아'가 필요할까?

지난 2월 세계 최대 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유럽 정상들 앞에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AI는 단순한 소프트웨어가 아니다. 각국의 언어와 문화를 담고 있는 지능 그 자체다. 모든 나라는 자신만의 AI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AI가 국가의 '신경망'에 비유될 정도로 중요하며, 자국의 데이터 주권을 지키고 AI '팩토리'를 구축해야 한다는 엔비디아의 전략적 비전이기도 했다.

데이터를 외국 기업 서버에 맡길 경우 국민의 생활 정보, 언어 습관, 심지어 국가 기밀까지 외부로 노출될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였다. "국방과 경제 주권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말은 각국 지도자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LG, 초거대AI '엑사원 2.0' 공개…"신소재·신약개발에 활용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19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LG AI 토크콘서트에서 AI 플랫폼 '엑사원 2.0'(EXAONE 2.0)을 소개하고 있다. 2023.7.19 ryousanta@yna.co.kr

이후 '소버린 AI'라는 용어는 전 세계 정책 입안자와 개발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했다.

소버린 AI는 AI를 타국에 의존하지 않고 자국 내에서 개발하고 운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국산화를 넘어 서버 인프라, AI 반도체, 데이터, 알고리즘, 클라우드 등 AI 기술 전반에 걸친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외국 기업이 만든 챗봇이 한국어 문장을 어색하게 처리하거나 특정 문화 코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용자 경험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최적화된 AI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특히 군사·안보 영역에서는 외국 기술에 대한 AI 의존이 치명적인 위협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세계는 이미 '소버린 AI' 전쟁 중

실제로 '소버린 AI'를 향한 주요국들의 경쟁은 이미 '전쟁' 수준에 이르렀다. 유럽연합(EU)은 유럽 시민의 가치와 권리를 지키는 AI를 만들겠다며 AI법(AI Act)을 제정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2024~2025년 기준으로 최대 400억~500억 달러 규모로 예상되는 '휴메인(Humain)' 프로젝트를 통해 AI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붓고 있다. 중국 역시 공공기관 및 주요 산업에서 자국 클라우드 사용과 AI 인프라 통제를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구글 AI 제미나이 소개하는 마니쉬 굽타 디렉터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구글 마니쉬 굽타 딥마인드 시니어 디렉터가 2일 서울 강남구 조선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포 코리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구글 AI'를 주제로 발언하며 구글 AI 제미나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2025.7.2 superdoo82@yna.co.kr

우리나라도 이 거대한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정부는 대통령 직속 '국가 AI 위원회'를 출범하기로 하고,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빅테크 기업들과 손잡고 한국형 AI 모델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한국어 특화 초거대 AI 모델로는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HyperCLOVA X)', LG AI연구원의 엑사원(EXAONE)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하이퍼클로바X는 방대한 한국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돼 뛰어난 한국어 이해 및 생성 능력을 자랑하며, 네이버는 이를 '소버린 AI' 솔루션으로 발전시켜 국내 기업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소버린 AI' 경쟁에서 우리나라는 분명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반도체와 네트워크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한국어와 한류 콘텐츠는 독창적인 데이터 자원으로서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AI 개발에 필수적인 고급 인재가 부족하고, 초거대 AI를 구동할 데이터센터와 그래픽처리장치(GPU) 같은 핵심 인프라도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한 AI 스타트업 대표는 "AI 모델을 한 번 훈련하는 데만 수백억 원이 들 수 있다"며 "한국형 소버린 AI를 만들려면 민관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I는 '디지털 주권'의 핵심 무기

AI는 이제 검색엔진이나 번역기 수준의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법률 자문, 의료 진단, 국방 시뮬레이션 등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AI를 국가의 '디지털 주권'을 지키는 핵심 무기로 보고 있다. 결국 AI 주권을 확보한 나라만이 기술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인 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소버린 AI'는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한국이 반드시 준비해야 할 '생존 전략'이 될 수 있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인력 양성, 인프라 투자, 법·제도 정비까지 모두 국가 차원의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MWC 2025 SKT 부스, AI 혁신 기술에 참관객 몰려 (서울=연합뉴스) SK텔레콤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25에서 혁신적인 AI 기술을 전시하며 글로벌 ICT 업계 관계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고 7일 밝혔다. 사진은 SKT 부스 관람하는 참관객 모습. 2025.3.7 [SK텔레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AI가 글로벌 기술 패권의 중심에 선 상황에서 '소버린 AI'를 갖춘 나라만이 자국의 데이터와 기술을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AI로 디지털 주권을 되찾을지, 아니면 챗GPT나 제미나이 등 글로벌 플랫폼에 종속된 채 따라가기만 할지는 지금부터의 선택에 달려 있다.

"AI도 국산화가 필요하다"는 질문은 단순한 논쟁을 넘어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험대가 됐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세계 각국의 '소버린 AI' 경주는 이미 시작됐고, 이제 중요한 건 누가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느냐다.

president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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