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워시와 케빈 해싯, 연준 의장 자리 둔 경쟁 
‘충성도’에서 해싯이 앞선다는 평가도 
WSJ “트럼프 특유의 ‘어프렌티스식 경쟁’”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케빈 해싯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차기 연방준비제도 의장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고 전했다./로이터 연합뉴스

“그는 일을 끔찍하게 했습니다. 기준금리가 지금보다 3%포인트 더 낮아야 해요.”

지난 1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을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는 작년 대선 승리 직후부터 파월에게 지속적으로 금리 인하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연준이 작년 12월 0.25%포인트를 내린 뒤 올해 1, 3, 5, 6월 연속 금리를 동결하자 “파월은 멍청하다” “항상 너무 늦다” 등 끊임없이 파월을 흔들고 있다. 트럼프는 최근엔 파월 후임자를 거론하며 ‘힘 빼기’에 나서기도 했다. 파월의 법적 임기는 내년 5월까지로 10개월이나 남았다. 고도의 정치적 독립성을 바탕으로 미국 기준금리를 결정해 세계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는 연준 의장 자리가 이제는 강한 정치적 외풍을 맞고 있다.

◇다크호스로 떠오른 ‘케빈 해싯’

트럼프는 이달 초 기자들에게 “연준 의장 후보가 2~3명으로 압축된 상황”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가장 유력한 차기 연준 의장 후보로 꼽혀 온 인물은 케빈 워시(55) 전 연준 이사였다. 워시는 트럼프가 1기 행정부 때 파월을 연준 의장으로 앉힐 때 마지막까지 후보로 검토했던 인물이다. 결국 트럼프가 파월을 선택했지만, 그 후에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그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는 듯한 말을 하며 워시를 칭찬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2020년 1월 미·중 1단계 무역 협정이 열린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초청 손님 자격으로 앉아 있던 워시를 보며 “나는 당신과 함께 일했으면 매우 만족했을 것”이라면서 “왜 그 자리를 원했을 때 좀 더 강하게 나가지 않았느냐”며 대본에 없는 말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트럼프 2기 내각이 꾸려질 때 스콧 배선트 현 재무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재무장관 자리를 두고 다툼을 벌이자 차선책으로 워시가 거론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워시가 아닌 케빈 해싯(63)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는 소식을 전하며 분위기가 다소 바뀌고 있다. 해싯은 트럼프 취임 날인 지난 1월 20일 NEC 위원장으로 공식 취임한 뒤 트럼프의 관세 전쟁을 주도해 온 인물로 꼽힌다. 특히 최근 CBS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무역 전쟁”인지를 묻는 말에 “우리는 이것을 무역 전쟁이라고 보지 않고 마약이 국경을 넘는 것을 막기 위한 약물 전쟁”이라고 말하면서 관세 부과가 미국의 안보를 위한 것이라는 트럼프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케빈 워시 전 연방준비제도 이사는 오랜 기간 차기 연준 의장 후보로 꼽혀왔다./로이터 연합뉴스

해싯도 트럼프 1기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미·중 무역 전쟁에 참전하는 등 트럼프의 경제 분야 핵심 측근으로 꼽힌다. 2019년 잠시 백악관을 떠난 그는 코로나가 창궐하던 2020년 3월 비공식 경제 자문역으로 복귀해 약 90일간 무보수 자원봉사 형태로 근무했다. 당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해싯이 등장하자 CNN 등 언론에서는 “해싯이 돌아왔다”고 조명하기도 했다.

◇이름은 같지만, 금리에 대해서는…

경제 전문가인 케빈 워시와 케빈 해싯은 금리 수준에 대해 미묘한 입장 차이를 갖고 있다. 워시는 1970년생으로 비교적 젊은 편이지만, 조지 W. 부시의 지명을 받아 2006~2011년 연준 이사를 지내면서 2008~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경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연준 이사 재직 시 정부의 양적 완화 정책에 회의적인 발언을 여러 차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는 “그는 연준이 장기간 저금리와 대규모 자산 매입에 의존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경계를 흐리게 했다고 주장해 왔는데 이런 견해는 더 빠른 성장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느슨한 통화정책을 원하는 백악관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에 반해 1990년대 연준 이코노미스트로 근무한 적이 있는 해싯은 저금리 정책을 추진하려는 트럼프 정부의 기조에 조금 더 맞는 인물이다. 작년 9월 연준이 한 번에 0.5%포인트 인하하는 ‘빅컷’을 단행하자 해싯은 다음 달(10월) “연준은 가지고 있던 데이터를 기준으로 상당히 타당한 결정을 했다”고 옹호했다. 해싯이 파월과는 다르게 순응적인 성향이라 트럼프의 바람대로 금리를 대폭 낮출 수도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해싯은 한때 “사람들에게 연준의 독립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상기시키는 것이 나의 임무”라면서 파월을 방어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입장을 바꿨다. 그는 13일 ABC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연준 의장을 해임할 권한이 있느냐”는 질문에 “사유가 있다면 대통령은 분명히 그럴 권한이 있다”고 답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04~2015년 출연한 리얼리티 TV 프로그램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trump.com

◇두 명 모두 트럼프와 개인적 인연

두 사람은 직·간접적으로 트럼프와 개인적인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를 끈다. 워시의 장인은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 에스티로더 가문의 로널드 로더다. 그는 공동 창업자 에스티 로더와 조셉 로더 부부의 둘째 아들이다. 트럼프와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동문이다. 두 사람 모두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해 안면이 있다. 해싯은 공직에서 물러난 뒤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설립한 사모펀드(Affinity Partners)에서 수석 경제 고문을 맡았다. 일각에서는 두 ‘케빈’이 언론 등을 통해 언급되는 것은 트럼프 특유의 경쟁 방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WSJ은 “트럼프가 차기 연준 의장직을 (과거 그가 출연한 리얼리티 TV쇼인) 어프렌티스식 경쟁으로 끌어가고 있다”고 했다. 또 파월 임기가 아직 남은 만큼 ‘제3의 후보’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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