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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며 폭염주의보가 해제된 13일 서울 여의도물빛광장에서 물놀이를 즐기던 시민들이 비를 피해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장마가 끝난 남부 지방에 장마급 물폭탄이 예고됐다. 폭염 여파로 잔뜩 뜨거워진 열대저압부(태풍 전 단계의 공기 덩어리)가 북쪽 찬 공기와 충돌하며 큰 구름대를 형성, 15일까지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전국에 비를 뿌리겠다. 최근 서울에 동남아의 스콜과 비슷한 강한 국지성 소나기가 온 데 이어, 장마 종료 후 일부 지역에 더 많은 비가 내리는 등 동남아의 우기(雨期)를 연상케 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13일 밤에서 14일 새벽 사이 제주 남쪽 해상을 지나는 열대저압부와 북서쪽에서 찬 공기를 품고 내려오는 기압골이 충돌하며 비가 내리겠다. 찬 공기와 뜨거운 공기의 충돌 과정에서 팝콘이 터지듯 순식간에 커진 비구름대는, 특히 영남을 중심으로 14일 오전까지 시간당 최대 50㎜ 이상의 강한 비를 뿌릴 전망이다. 남부 지방은 올해 장마 기간 강수량(98㎜)보다 많은 150㎜ 이상의 비가 예보됐다. 이에 행정안전부는 재난안전관리본부장 주재로 ‘관계기관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호우 대비에 필요한 조치들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긴급 점검하기도 했다.

빗줄기가 굵은 것은 극심한 폭염과 뜨거운 바다 때문이다. 태백산맥을 넘으며 열풍이 된 동풍이 대류 불안정을 키웠고, 바다에선 비의 씨앗이 되는 수증기가 원활히 공급되며 열대 저압부의 덩치를 키웠다. 장맛비와 소나기가 내리던 여름철 비의 양상이 점차 동남아 우기와 스콜에 근접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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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저압부는 찬 공기와 충돌하면서 비구름대를 동반한 온대저기압으로 변할 것으로 보인다. 뜨겁기만 했던 공기 덩어리가 성질이 전혀 다른 공기와 만나 큰 비구름대(저기압)로 변하는 것이다. 15일까지 예상 강수량은 부산·울산·경남이 50~150㎜, 호남·대구·경북·제주가 30~120㎜ 등으로 남부 지방에 많은 비가 내리겠다. 중부지방은 강원영동·강원영서남부 30~120㎜, 경기 남부·충청 20~80㎜, 경기 남부를 뺀 수도권과 강원영서중북부 10~40㎜로 예상된다. 기상청은 “최근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던 남부 지방은 짧은 시간 많은 비가 쏟아지면서 하천이 급격히 불어나는 등 호우 피해가 클 수 있다”고 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서남권에 강한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도심 일부 지역에서만 비가 내리고 있다. 이날 서울 곳곳에 강한 비가 내렸다. /장련성 기자

동남아 수준의 폭염에 비도 폭우로

그동안 장마철에 가장 많은 비가 내리던 패턴이 깨진 것은 폭염의 한계선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올여름은 북태평양고기압의 이른 세력 확장으로 남부·제주에 장마가 빠르게 시작됐고, 빠르게 끝났다. 중부지방은 아직 장마가 끝나진 않았으나 태백산맥을 넘으며 열풍이 된 동풍의 영향으로 서울의 7월 상순(1~10일) 최고기온 기록이 117년 만에 깨졌고, 경기 광명·파주에선 최초로 7월 초에 한낮 기온이 40도 넘게 올랐다.

폭염은 대류 불안정을 키운다. 이는 우리나라 상공이 ‘시한폭탄’ 상태가 된다는 뜻이다. 워낙 공기가 뜨겁다 보니, 외부에서 성질이 다른 공기가 들어와 기존 공기와 충돌하기만 하면 언제든 큰 비구름대를 만들 수 있다. 동남아 수준의 폭염이 극심해지면서, 벼락같이 퍼붓고 지나가는 동남아식 폭우 양상도 나타나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 8일 퇴근길 서울 여의도에 내린 시간당 68㎜의 소나기도 대류 불안정이 원인이었다. 당초 이날 소나기 예보가 있긴 했으나, 시간당 50㎜가 넘는 게릴라성 폭우가 내릴 거라고 예상하진 못했었다. 그동안 볼 수 있었던 소나기 수준이 아니라 스콜에 가까웠다. 이런 조짐은 앞서 늦봄부터 감지됐는데, 지난 5월 16일 경기 남양주에 시간당 74㎜, 서울 중구와 용산구에 시간당 37.5㎜, 30.5㎜의 소나기가 내린 바 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자 시민들이 뛰어서 비를 피하고 있다./뉴스1

도시일수록 ‘스콜형 소나기’ 더 위험

이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지난 10~11일 일본 도쿄·사이타마·후쿠시마 등 관동 지방에선 시간당 110㎜ 이상의 소나기가 내렸다. 일본 기상청은 “이 같은 기록적 단시간 대우(大雨)는 폭염으로 인한 대류 불안정과 상승 기류 활성화에 따른 적란운(번개를 동반한 비구름대)의 발달, 도심의 열섬 효과가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에 내렸던 강한 소나기와 원인이 같았다.

폭염이 심해질수록 폭우도 더 심해지기에, 폭염이 절정에 달하는 8월로 갈수록 비가 더 강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지훈 세종대 환경융합공학과 교수는 “여름철 지배적이던 북태평양고기압에 더해 몽골이나 티베트 쪽 유라시아 내륙에서 들어오는 고기압의 영향이 겹쳐져 폭염이 강해지고 있다”며 “기상 패턴이 극단적으로 흘러갈 수 있다”고 했다.

스콜형 소나기는 스콜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스콜은 주로 비구름대가 한낮에 형성되고, 비가 내리는 시간대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반면 소나기는 낮밤을 가리지 않고 구름대가 형성된다. 기상청은 “소나기 구름대는 산발적으로 형성되고, 규모 또한 예측이 어렵기 때문에 불시에 기습 폭우가 내려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했다.

한편 태백산맥 서쪽을 중심으로 내려졌던 폭염특보는 남하하는 찬 공기와 강한 비의 영향으로 해제될 전망이다. 그러나 16일부터는 다시 북태평양고기압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재차 폭염이 찾아오겠다. 이번에는 고온다습한 남서풍이 ‘찜통더위’를 야기하면서 한증막에 들어간 듯 후텁지근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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