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 개정 여부 상관없이 현행 체제 유지시 독립성 논란 쳇바퀴
5인 합의제 기구로 출범했지만…정권 의중에 따라 상당수 정책 결정
국정위, 정부조직 개편 논의…정치 독립 위한 제도 설계 본격화

【서울=뉴시스】 2008년 방송통신위원회가 출범했다. 당초 초대 방송통신위원장인 최시중 위원장(왼쪽 두번째)이 광화문 청사에서 위원들과 현판식 후 박수를 치고 있다. /전진환기자 amin2@newsis.com

[서울=뉴시스] 심지혜 기자 = "방송통신위원회, 파행 꼬리표 뗄 수 있을까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 관련 법안(방송3법)이 국회 문턱을 넘더라도 숙제가 남아 있다. KBS, MBC 등 이사진 정원과 추천 주체를 확대한다 해도 공영방송 이사 선임권과 방송 심사·허가권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쥐고 있어서다. 방통위의 정치적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방송법이 바뀐다 해도 공영방송 독립성 논란은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게 방송가의 시각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현행 방통위는 공정한 방송정책 구현을 기치로 합의제 기구로 출범했다. 대통령이 지명한 2인과 국회 교섭단체가 추천한 3인을 포함한 총 5인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된다. 또 위원장을 비롯한 상임위원 모두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된다. 이처럼 형식은 합의제 기구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대통령 직속 행정기관으로서의 한계를 벗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방통위 설치법상 공영방송 이사 선임·방송 재허가·심사 등 주요 정책 결정은 위원회 회의를 열고 재적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여당 추천 위원이 다수인 구조 속에서 대부분의 의사결정이 정권의 의중대로 결정됐다.

정파를 떠나 소신껏 정책을 결정해달라는 취지에서 3년 임기를 법적으로 보장했지만, 자신들을 추천한 정당에 대한 의리 혹은 후속 거취 등이 부담이 되면서 방통위 전체회의가 '여야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주요 방송정책을 수립·시행할 때 야권 추천 위원들을 통해 입장이 대변되고, 또 논란의 정책에 비판을 제기할 수 있다는 점이 그나마 다른 독임부처(장관제)와의 차별점으로 꼽히기도 했다. 

합의제 기구지만 '여야 거수기' 논란도…파행 끝 사실상 기능 상실

[과천=뉴시스] 고범준 기자 =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28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내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김태규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 2025.02.28. bjko@newsis.com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급기야 쌓이던 고름이 터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초반에는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한상혁 위원장을 비롯해 5인 상임위원 체제가 잠시 유지됐지만 이들의 임기가 순차적으로 만료되면서 한번도 5인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당시 야당 몫 방통위원을 추천했지만, 윤 전 대통령이 여러 이유를 둘러대며 임명하지 않았고 이후 민주당 또한 더 이상 추천하지 않았다.

한 위원장의 경우 임기를 두 달 남겨둔 시점에서 검찰 기소를 이유로 면직 처리됐다. 이후 이동관·김홍일 위원장이 잇따라 임명됐지만 민주당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면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모두 자진 사퇴했다.

끝내 국회 교섭단체 몫 상임위원은 추천되지도 선임되지 않았고 급기야 지난해 7월부터 대통령 몫 2인만 있는 '2인 의결체제'로 전락했다. 파행에 파행이 거듭된 셈이다.

지난해 7월 이진숙 현 위원장이 취임하자마자 KBS와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 해임 및 후임 선임 등 주요 안건처리를 2인 체제로 강행해 논란을 빚었다. 이후 법원이 잇따라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며 '2인 의결' 효력에 제동이 걸렸다.

정권이 이재명 정부로 바뀐 이후 김태규 부위원장이 사퇴하고, 현재는 이진숙 위원장만이 남은 상황이다.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가 최소 정족수조차 충족하지 못하면서 행정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이 같은 기능 정지 상태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방통위 해체 vs 확대…'3가지 시나리오' 제안

결국 현 정부로서도 방통위 개편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 거버넌스 개편안이 잇따라 제시되고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방송·콘텐츠특별위원회는 방송·콘텐츠 분야의 국정 과제 제안서를 공개하면서 미디어 관련 정책과 규제를 총괄하는 새 정부조직 개편안을 공개했다. 

제안된 안은 미디어 3학회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인 최민희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 등을 포함한 3가지다. 

첫 번째 방안은 미디어콘텐츠부를 신설해 방송 정책 전반을 총괄하도록 하고 공영방송 분야는 별도 위원회가 다루도록 하는 구성이다. 기존 방통위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분산돼 있던 기능을 통합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공영방송 분야는 미디어콘텐츠부 내 합의제 행정위원회를 설치해 담당하도록 한다. 위원은 5인 또는 7인으로 구성하고 위원장과 위원은 미디어콘텐츠부 장관이 임명 또는 위촉하거나 미디어콘텐츠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 또는 위촉하도록 제안했다. 

미디어의 민간영역과 공공영역을 구분해 진흥 업무를 담당하는 미디어콘텐츠부와 공영미디어위원회로 재편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방통위는 폐지하고 보도기능을 가지고 있는 방송영상미디어 중심의 공공 규제 부문만 공영미디어위원회가 다루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미디어콘텐츠부는 방통위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중 미디어산업 진흥정책을 관할한다. 

위원은 국회 교섭단체, 국회의장, 대법원장이 추천하고 일부는 대통령이 지명하며,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현행 방통위를 확장하는 방안도 있다. 이는 최민희 의원이 발의한 정부조직법 개편안으로 방송진흥 정책 기능을 과기정통부에서 떼어내 방통위로 이관함으로써 기존 합의제 기구 체제를 유지하면서 기능을 일원화하는 안이다. 

대신 위원을 9명으로 늘렸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포함해 3인을 지정하고 여당과 야당이 각각 3인을 추천하면 총 9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이 중 상임위원은 위원장, 부위원장, 야당 몫 상임위원 3인으로 하고 그 외 6명은 비상임위원으로 구성하는 방식이다. 

미디어특위는 3가지 안을 국정기획위원회에 정리해 제출했고, 국정위는 조직개편안 발표를 서두르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상황이다. 

방통위 개편, 정치 후견주의 끊을 수 있을까

학계에선 방통위의 정치적 중립성과 제도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단순한 구성 조정보다는 기구의 성격과 기능 전반을 근본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하고 본연의 공적 기능을 수행하려면 구조 자체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방통위가 본연의 기능하려면 여야 구도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 인사 구조와 투명한 의결 시스템이 필요하다. 공영방송을 정권의 소유물에서 국민의 공적 자산으로 전환하기 위한 실질적인 제도 변화가 뒤따를지 주목된다. 

고삼석 동국대 AI융합대학 석좌교수이자 국회엔터테크포럼 상임대표(전 방통위 상임위원)는 "방통위는 이제 정치적 대립과 갈등의 상징체가 된 만큼 개편이 필요하다"며 "국정 과제이기도 하지만 시대적 과제이기도 하다"며 개편 필요성을 강조했다. 

고 교수는 "방통위 제도와 운영이 민주적으로 작동해야 방송의 독립성이 보장된다. 그렇지 않으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장악될 수 있는 구조"라며 "방통위란 조직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여야가 치열하게 대립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국정위는 국민의 요구가 담긴 국정과제를 실행하는 기관인 만큼 그에 맞게 재편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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