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는 윤석열 정부 시기인 2023년, 반민족·반민주적인 한국사 검정교과서 제작을 시도했던 인물들의 실체를 연속 보도하고 있다. 뉴스타파 보도로 당시 문제의 교과서 제작 작업에는 극우 성향 교원단체인 대한민국교원조합(대한교조) 소속 교사들과 박근혜 정부 시기 국정교과서 필진들이 참여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관련 기사: 윤 정부 역사기관장이 쓴 ‘일제 미화’ 교과서 원고 공개)

뉴스타파는 당시 제작된 교과서 원고에 이승만과 박정희 독재 정권이 자행한 민주화 세력 탄압 사건을 옹호하는 내용이 담겼다는 사실을 추가로 공개한다. 독재 정권의 간첩 조작, 사법살인으로 역사적 평가가 끝난 사건들에 대해, 여전히 논란이 있는 것처럼 교묘하게 서술한 대목들이 다수 발견된 데 따른 것이다.

박근혜 정부 국정교과서 필진 등이 지난 2023년 교과서 검정심사에 출원할 목적으로 교과서 원고를 작성했다.

‘진보당 사건’ 왜곡 서술…이승만 독재에 면죄부

문제의 교과서 원고가 왜곡한 대표적인 사건은 ‘진보당 조봉암 사건’(진보당 사건)이다. 진보당 사건은 1958년 진보당 당수 조봉암을 비롯한 당 간부들에게 간첩 혐의를 씌워 체포한 뒤, 이듬해 7월 조봉암의 사형을 집행한 사건이다. 현행 한국사 교과서에서도 이승만 정부가 장기 집권을 의도하여 벌인 정치탄압으로 빠짐 없이 다뤄지고 있는 국가폭력의 한 장면이다. 반세기가 지난 2011년 1월 20일, 대법원은 조봉암의 재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문제의 교과서 원고는 조봉암 사건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남파 간첩 양명산을 통해 북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지원받았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 중이던 진보당의 조봉암이 사형에 처해졌다.” 건조한 문체이지만, 조봉암의 간첩 혐의 자체가 사실이었던 것처럼 오해할 수 있도록 문장을 구성했다.

더불어 이 원고의 저자는 재심 무죄 판결을 내린 대법원이 결정적인 증거를 배척하는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다음과 같이 적었다. “2011년 대한민국 대법원은 조봉암 사건 당시 관련자의 자백과 방첩대의 첩보활동 결과를 배제한 결과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문제의 교과서 원고는 대법원의 재심 판결에 의문을 제기하는 데 이어, 학술적으로도 진위가 논란인, 김일성의 발언 기록을 앞세워 역사적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무책임한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조봉암 사건 재심과 구 소련 문서
2011년 대한민국 대법원은 조봉암 사건 당시 관련자의 자백과 방첩대의 첩보활동 결과를 배제한 결과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판결 이후 발굴된 구 소련 문서에는 김일성이 “‘진보당’이란 소위 ‘합법 정당’의 설립을 지원했고, 1956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조봉암 후보 측에 자금을 지원하고 조언했다”고 말한 내용이 확인되어 역사적 사실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 -뉴스타파 입수 교과서 원고

교육부 심의를 거쳐 학교 현장에 보급된 최신 한국사 교과서(총 9종)가 설명하는 진보당 사건의 실상은 다르다. 리베르스쿨의 고등학교 한국사2 교과서는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조봉암이 예상보다 많은 득표를 얻자 이승만 정부는 조봉암과 진보당 간부들에게 간첩의 누명을 씌워 탄압하였다.”(p.98)

이처럼 현행 교과서들은 진보당 사건을 이승만 정권의 ‘대표적 정치 탄압’(지학사 한국사2 p.93)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완수된 과거사 진상 조사의 결과를 보여주며 학생들이 이승만 독재의 이면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도록 안내하기도 한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의 진보당 조봉암 사건 결정 요지(2007)
이 사건은 정권에 위협이 되는 야당 정치인을 제거하려는 의도에서 표적 수사에 나서 극형인 사형에 처한 것으로 민주 국가에서 있어서는 안 될 비인도적, 반인권적 인권 유린이자 정치 탄압 사건이다.
- -동아출판 한국사2 p.93

민청학련, 2차 인혁당 사건 왜곡…유신체제 옹호

문제의 교과서 원고는 박정희 유신체제가 벌인 민주화운동 탄압과 사법살인 역시 옹호하고 있다. 이른바 ‘민청학련’과 ‘인혁당 재건위’ 조작 사건(2차 인혁당 사건)을 다루는 대목에서다. 

해당 원고는 두 사건에 대해 “1974년에는 *전국 민주 청년 학생 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이 발생하였고, 같은 해 검거된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1975년 4월 주요 인물 8명이 판결 직후 사형이 집행되었다”고 서술했다. 해당 단락만 읽으면, 모종의 반국가 조직이 ‘사건’을 일으키고, 공권력에 의해 정당하게 검거된 것처럼 보인다.

나아가 문제의 원고는 민청학련과 인혁당 재건위 조작 사건에 대해 별도의 용어 설명을 덧붙여, 두 사건의 피해자들이 실상은 국가 전복 세력이었으며, 이를 실행하려 했던 것처럼 보이게 꾸몄다.

해당 원고는 용어 설명 부분에서 민청학련 사건을 “1974년 유신체제에 불만을 갖고 있던 대학생들이 국내 공산 비밀 지하조직인 인민혁명당에 포섭되어 전국대학연합체를 구성하여 폭력으로 정부를 전복하고, 공산국가를 세우려 했다는 이유로 다수의 대학생들, 대학교수들, 그리고 재야 인사들을 구속한 사건”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이러한 원고 속 설명과 달리, 실상은 민청학련이라는 조직 명칭부터 당시 중앙정보부가 날조한 것으로 확인된다.

문제의 교과서 원고는 '인혁당 재건위 조작 사건'에 대해 실제 내부 전복을 꾀한 사건으로 알려진 것처럼 다루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인혁당 재건위 조작 사건에 대해서는 “(1964년 1차 인민혁명당 사건의 중심 인물들이) 인민혁명당을 재건하여 베트남과 같은 내부 전복을 도모한 사건으로 알려졌다”는 식의 무책임한 서술로 일관했다. 민청학련과 인혁당 재건위 조작 사건 피해자들이 실제 국가전복을 시도하여, 처벌받은 것처럼 보이도록 거듭 강조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현행 교과서들은 두 사건의 실상에 대해 박정희 정권이 유신 반대 세력을 억압하기 위해 고문 등 가혹행위로 불법 수사를 벌인 간첩 조작 사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1974년 초에 대학생들이 전국 각지에서 유신 반대 시위를 벌이자, 박정희 정부는 180명을 구속하고 이들 배후에 인민 혁명당이라는 공산주의 단체가 있다고 누명을 씌웠다.
- -비상교육 한국사2 p.103

박정희 유신정권의 비상보통군법회의는 인혁당 재건위 주범으로 누명 씌운 8명에 대해 대법원에서 사형 판결이 확정된 지 18시간 만에 형을 집행했다. 1975년 4월 9일, 사형이 집행된 이날을 국제법학자협회는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한 바 있다. (관련 기사: 유신과 맞선 시노트 신부의 마지막 인터뷰)

현행 교과서들은 누명을 쓰고 사형대에 오른 피해자 8명이 30년이 지나서야 법원에서 명예를 회복했다는 사실도 다루고 있다.

오랫동안 ‘사법 살인’이라는 비판을 받은 법원은 2007년 이 사건을 다시 재판해 관련자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 -천재교과서 한국사2 p.107

저자는 ‘박근혜 국정교과서’ 필진, 김명섭 교수

이처럼 정부가 심의한 현행 교과서들과 비교하면, 문제의 교과서 원고는 독재정권에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과 다름 없다. 이렇게 이승만, 박정희의 인권 탄압, 사법살인을 감싸준 교과서 원고를 썼던 인물은 누구일까.

뉴스타파 취재 결과, 해당 교과서 단원은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집필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교수는 박근혜 정부 시기 국사편찬위원으로 한국사 국정교과서 필진을 맡았고, 뉴라이트 성향의 한국현대사학회 이사를 지냈다. 그는 대표적인 이승만 찬양론자로도 알려져 있다. 윤석열 정부 시기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추진위원에 이름 올렸고, 이승만학당에서 강의를 해왔다. 이승만학당은 <반일종족주의>의 공동저자이자, 대표적인 식민지근대화론 학자로 꼽히는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교장을 맡고 있는 단체다.

김 교수는 이 교과서를 집필한 때인 2023년 윤석열 정부의 국가보훈처 산하에서 '독립운동훈격 국민공감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당시에도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재심사하는 자리에 김 교수 등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위촉돼 논란이 일었다.

김명섭 교수가 한 우익 매체 유튜브채널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김명섭 교수에게 휴대전화 메시지, 이메일 질의서를 통해 당시 교과서 필진이 된 계기와 본인이 쓴 원고의 내용이 검정교과서로서 적절하다고 생각하는지 등을 물었지만, 김 교수는 보도 당일까지 답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 시기 뉴라이트, 극우 세력들이 정부가 공인하는 교과서에 어떤 역사관을 담고 싶어했는지, 뉴스타파는 연속 보도를 통해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국가폭력과 사법살인을 외면해서라도 독재정권을 옹호하려 했던 그들의 계획은, 출판되지 못한 원고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뉴스타파는 그들이 어떤 계획을 갖고, 문제의 교과서 제작을 강행했는지 추가 보도할 예정이다.

뉴스타파 홍우람 wooramh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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