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정보고속도로 만든 DJ처럼
기업인 등용·인프라 구축 선언
AI 3대 강국 첫걸음 디뎠지만
인재·데이터 확보 없인 공염불
규제 풀고 국가 역량 총동원해야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국가 차원의 인프라스트럭처 프로젝트를 꼽자면 경부고속도로와 정보고속도로(초고속인터넷망)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경부고속도로는 경제 성장의 동맥이자 산업화의 초석이었고, 정보고속도로는 외환위기를 딛고 정보기술(IT) 강국으로 거듭나는 발판이 됐다.
현재 대한민국은 ‘인공지능(AI) 고속도로’라는 또 다른 변곡점 앞에 서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한민국 AI 대전환의 성공을 이끌 AI 시대의 고속도로를 구축하겠다”며 기업인 출신을 장관과 AI 수석으로 임명하고 AI 데이터센터 구축·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 등 대대적인 인프라 확충을 선언했다. 김대중 정부가 IT 혁명 컨트롤타워였던 정보통신부 장관에 배순훈 전 대우전자 회장 등 기업인 출신을 기용하고 초고속 광통신망 구축에 올인했던 것과 유사한 행보다.
‘AI 3대 강국’을 위한 첫걸음으로는 썩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앞길은 순탄치 않을 가능성이 높다. AI 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나 정보고속도로와는 차원이 다른 고차원 방정식이기 때문이다. 여러 난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막대한 전력 소비를 감당할 수 있는 에너지 공급 시스템부터 AI로 인한 일자리 감소 우려까지 다양한 쟁점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가장 큰 난제는 인재와 데이터가 없는 인프라 구축은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인재가 있어야 우수한 AI 모델과 알고리즘을 확보할 수 있으며, 데이터의 품질과 접근성은 AI 성능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우리의 언어와 문화를 기반으로 독립적으로 AI 기술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소버린 AI’의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것도 인재와 데이터다. 하지만 인재와 데이터 분야에서 AI 선도국과 한국 간 격차는 크다.
인재에 대한 인식부터가 그렇다. 미국의 경우 빅테크들이 회사의 명운을 걸고 인재 영입에 나서고 있다. 메타는 최근 데이터 라벨링 스타트업인 스케일AI에 무려 143억달러(약 20조원)를 투자했다. 투자 대가는 의결권 없는 주식 지분 49%와 10대 때 스케일AI를 창업한 천재 개발자 출신 최고경영자(CEO) 알렉산더 왕(28)의 메타 AI 프로젝트 합류. 사실상 왕 CEO 한 사람을 영입하기 위해 20조원을 투자한 셈이다.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해외 AI 인재 유치를 위해 ‘AI 국가대표 양성 사업’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한국행을 택하는 박사급 우수 연구자에게 약 1억원의 연봉을 보장한다는 게 골자다. 오픈AI·앤스로픽 등 해외 유명 AI 기업의 박사급 연구원의 평균 연봉이 80만달러(약 11억원)를 넘는 상황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데이터 경쟁력도 취약하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 따르면 AI 기업 10곳 중 6곳이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2024년 인공지능산업 실태조사). 한국어 데이터 자체가 많지 않은 데다가 금융·의료 등 민감하지만 가치가 높은 데이터는 수집이 어렵고 개인정보 관련 규제도 많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AI 인프라 구축만으로도 버겁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AI 고속도로 성공을 위해서는 다방면에 걸친 노력이 필요하다. 거액의 보수를 제공하기 어렵다면 종신 재직권 제도 등으로 연구자들에게 장기적인 안정성을 보장하고 자율적인 연구 환경을 만드는 시도라도 해야 한다. 국가가 교통, 보건, 교육, 환경,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의 데이터를 AI 학습에 적합한 형태로 무료 개방하는 미국 사례를 참고해 국내 공공 데이터 플랫폼을 강화하는 등 벤치마킹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활용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제도 정비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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