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맞서 새 자유무역체계 구축 의도…獨 "초기 아이디어이지만 지지"
EU 집행위원장 (브뤼셀 EPA=연합뉴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27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EU 정상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6.27 photo@yna.co.kr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유럽연합(EU)이 수년째 '무용론' 논란이 일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를 대체할 새로운 자유무역체계 구축을 깜짝 제안했다.
특히 세계 경제의 15%를 차지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합류 가능성을 열어둬 주목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26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EU 정상회의가 끝난 뒤 심야 기자회견에서 'WTO 대체기구 설립을 제안한 것이 맞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면서 "회원국들에 자유무역을 원하는 여러 국가와 할 수 있는 여러 옵션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특히 "내 입장에서 가장 매력적이며 흥미로운 부분은 CPTPP로, (가입국인) 아시아 국가들이 EU와 구조적 협력(structured cooperation)을 희망하고 있으며, EU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이것은 세계무역기구(WTO)를 재설계하는 것의 시작이 될 수 있다"면서 WTO 내의 개혁도 필요하겠지만 WTO의 '오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계에 많은 나라들이 규범에 기반한 구조에서 자유 무역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WTO 2.0'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CPTPP와 EU가 함께라면 막강할 것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추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CPTPP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이 결성해 2018년 출범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작년 12월에 영국이 추가로 가입해 현재 회원국은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칠레,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등 총 12개국이다. 한국은 가입국이 아니다.
애초 미국도 포함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첫 임기 당시 탈퇴를 결정한 이후 CPTPP로 재발효됐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구조적 협력'을 언급한 것을 고려하면 CPTPP와 별도 협정을 체결하거나 나아가 정식 가입을 검토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앞서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도 지난달 EU가 CPTPP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EU 합류 시 CPTPP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30%를 포괄하게 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미국의 전방위 관세에 맞서 제3국과 공조를 확대하고, 일종의 '거대한 무역지대' 조성을 모색하려는 의도인 셈이다.
실제로 CPTPP 회원국들도 트럼프 2기 관세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가입국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지난달 29일 CPTPP 확대 의사를 내비치며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이나 EU와 대화를 모색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미국에도 제안할 것인가'는 추가 질의에 "내가 아는 바로는 어느 시점에 미국은 빠진 것으로 안다"고 답을 대신했다.
이와 관련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별도 기자회견에서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WTO 대체 기구' 설립을 제안했다고 확인하면서 "지난 수년간 그랬듯 WTO가 앞으로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다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지지 입장을 밝혔다.
그는 다만 "아직은 아주 초기 단계 아이디어"라고 덧붙였다.
다자무역체제의 근간이 된 WTO는 국제 무역질서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1995년 1월1일 공식 출범했다. 국제 무역분쟁 중재를 위한 핵심 기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트럼프 집권 1기 당시인 2019년 미국 행정부가 WTO의 분쟁 처리 절차를 담당하는 상소기구 위원 선임 승인을 거부하면서 상소기구 구성이 불가능, 분쟁 해결 시스템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다.
WTO 대체 조직 구축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다.
WTO 일부 회원국들이 대안조직 성격으로 '다자간 임시 상소 중재 약정'(MPIA)을 창립했고 EU 역시 동참했다. 다만 MPIA가 WTO 기능을 완전히 대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sh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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