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관 지명]
달라진 헌법재판소 지형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김상환 전 대법관과 오영준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두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최종 임명되면, 헌재 구성에서 진보 색채가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 후보자는 헌법재판소장 후보도 겸하고 있다. 법조인들은 정치·사회적 파장이 큰 쟁점을 다루는 헌재의 판결 흐름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두 사람은 문형배·이미선 전 헌법재판관 후임이다. 지난 4월 한덕수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은 보수·중도 성향의 이완규 전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했지만, 헌재가 ‘지명 효력을 정지시키라’는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절차가 중단됐다. 이 대통령은 취임 다음 날인 지난 5일 이완규·함상훈 후보자의 지명을 취소시켰다.
그래픽=김성규
김 후보자는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 시절 ‘김명수 대법원’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대법원 재판뿐 아니라 법원행정처장으로 법원 행정도 총괄했다. 오 후보자는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전신 격인 우리법연구회에 참여했고, 엘리트 판사 모임인 민사판례연구회에서도 활동했다.
두 후보자가 임명되면 헌재는 보수 열세 구도가 된다. 현재 헌법재판관 7명은 보수 2명(정형식·조한창), 진보 2명(정계선·마은혁), 중도 3명(김형두·정정미·김복형)으로 분류된다. 여기에 진보 성향인 김·오 후보자가 들어가면 보수 2명, 진보 4명, 중도 3명이 된다는 것이다. 한 법조인은 “정정미 재판관을 진보, 김복형 재판관을 보수 성향으로 볼 수 있다”며 “그렇더라도 ‘보수 3, 진보 5, 중도 1’이 돼 진보가 보수를 압도하긴 마찬가지”라고 했다.
현재 정국을 볼 때 이재명 대통령 재임 기간 헌재가 결정적 역할을 할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민주당이 그동안 추진해 온 법안을 보면 헌법적 논란이 벌어질 것이 상당수 있다. 헌법 84조의 대통령 불소추 특권과 관련해 대통령 임기 중에 재판이 중지된다는 ‘재판 중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 헌법 89조에 명시된 검찰총장과 관련해 검찰총장을 공소청장으로 바꾸는 공소청 설치·운영 법안 등이 대표적이다. 만약 이런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위헌 여부를 따지는 헌법 재판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경험 많은 김상환 후보자를 헌재 평의와 결정을 주도하는 헌재 소장 후보자로 지명한 것도 그런 상황을 염두에 포석”이라고 해석했다.
법조계에서는 “위헌 결정이 나오려면 9명 가운데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정치적 의도가 있는 문제 법안을 헌재가 걸러 주길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한 법조인은 “국회 의석의 과반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앞으로 이재명 대통령을 수사한 검사들을 다시 탄핵 소추할 경우 기각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고도 했다. 여당 의원들은 내란이나 외환죄로 파면된 대통령이 소속한 정당에 대해 헌재에 해산 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정당법 개정안도 발의해 놓았다.
앞으로 이 대통령 임기 중에 헌법재판관 2명이 더 바뀐다. 김형두·정정미 재판관 임기가 각각 2029년 3월과 4월에 끝난다. 후임 지명권은 대법원장이 갖고 있는데 그때는 조희대 현 대법원장이 아니라 이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이 지명권을 행사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2027년 6월 정년(70세)으로 퇴임하기 때문이다. 헌재의 진보 우위가 강화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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