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는 사기 아니다...동맹국 정상들의 나라 사랑과 열정에 감동 받았다”
정상들, 잇달아 트럼프 칭송…일부는 ‘아첨’도 불사
주최국 네덜란드 왕실의 극진한 환대, 이란 폭격 ‘성공’으로 트럼프는 분위기 고양
WSJ “트럼프, 친(親)나토 지지자로 변모했다”
1기 행정부때부터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가 미국의 군사력에 무임승차한다며, NATO 무용론, 해체론을 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입장이 180도로 확 바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나토 32개 회원국들의 정상회의에서 10년내(2035년) 각국이 국방비를 GDP(국내총생산)의 5%까지 올리기로 합의하자, “나토는 바가지 씌우지 않는다(NATO is not a rip-off)”고 돌연 입장을 바꿨다. 5%는 지금보다 국방비 지출을 배(倍) 이상늘리는 것이다. 미국은 GDP 대비 3.4%(2024년 기준), 한국은 약 2.5%를 국방비로 쓴다.
트럼프는 과거에 ‘탈퇴’ 의사까지 밝히며 나토의 방위 무임승차를 비난했다.
그러나 그는 24시간이 채 안 된 체류 일정을 마치면서 “이들 지도자들은 정말 자기 나라를 사랑한다…이건 사기꾼 짓이 아니고, 우리는 그들을 돕기 위해 여기 있다”고 말했다.
그의 ‘변신’에는 유럽 회원국들의 극진한 ‘환대’와, 이란 핵시설에 대한 ‘성공적인’ 폭격, 이스라엘ㆍ이란 간 휴전 중재 성공도 배경 요소로 작용했다.
트럼프는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 부부가 제공한 왕궁 중 한 곳에서 하룻밤 머물렀다. 마르크 뤼테 나토 사무총장은 트럼프가 자신의 휴전 ‘선포’에도 이스라엘과 이란이 서로 공격하자 24일 나토 정상회의 참석 차 출국하면서 “두 나라는 젠장(f**king)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른다”고 강한 어조로 비난하고 이후 휴전이 지켜지는 것에 대해 “아빠(daddy)는 가끔 강한 말을 써야 한다”고 트럼프를 치켜세웠다.
트럼프도 ‘대디’ 발언에 기분이 좋았다. 25일 트럼프가 귀국한 뒤, 백악관은 소셜미디어 X에 “대디가 집에 돌아왔다…헤이 헤이 대디”라고 썼다.
🎶 Daddy’s home… Hey, hey, hey, Daddy.
President Donald J. Trump attended the NATO Summit in The Hague, Netherlands. pic.twitter.com/asJb5FD2Ii— The White House (@WhiteHouse) June 26, 2025
심지어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해서도 “그는 용감한 전투를 치르고 있다. 아주 힘든 싸움”이라며, 패트리어트 미사일 시스템을 추가 제공하고 군사 원조도 증액할 의사를 밝혔다. 때마침 미 중앙정보국(CIA)의 존 랫클리프 국장은 미국의 공습으로 “이란이 핵 시설을 재건하기까지는 수년을 걸릴 것”이라는 새로운 정보 보고서를 발표했다. 모든 게 ‘트럼프를 위한 정상회의’였다.
◇2025년까지 GDP의 5%까지 국방비 증액 합의
나토 동맹국들은 2035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국방비로 지출하기로 합의했다. 트럼프가 요구했던 대로였다. 세분하면, 핵심 군사비용(병력·무기·탄약·미사일 등) 3.5%, 도로·교량 등 군사 인접 인프라, 응급보건, 사이버 보안 등에 1.5%를 쓰기로 했다. 현재 32개 회원국 중 22개국이 이미 2% 이상을 지출하고 있다.
하지만, 10년은 너무 길고, 도로ㆍ교량 같은 사회간접시설 구축까지 ‘국방비’로 산정하는 것은 너무 ‘창의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나토 동맹국들은 트럼프 이후에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지도 지켜보며 국방 예산을 편성할 것이다. 10년ㆍ5%는 전체의 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방편이었고, 실제 목표는 군사비 지출을 GDP의 3.5%까지 올리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 정상들의 단체 사진 촬영에서, 자신을 '대디'에 빗댄 마르크 뤼테 나토 사무총장과 얘기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실제로 스페인의 산체스 총리가 정상회의 참석 전에 “과도하다. 스페인은 딱 2.1%만 쓰겠다”고 말한 것을 놓고, 트럼프는 나중에 “스페인은 형편없다. 하는 짓을 봐라. 좀 무임승차를 하겠다는 것인데, 무역에서 토해내게 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올 때는 와야 해서 왔는데….떠날 때는 마음이 좀 달라졌다”
트럼프는 정상회의를 마치고 난 뒤 기자들에게 “오늘 나는 왕과 왕비와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마치 영화 캐스팅 같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5일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 막시마 왕비와 만나 환하게 웃고 있다. 국왕 부부는 헤이그의 왕궁 한 곳을 트럼프가 묵을 수 있게 했다. /AP 연합뉴스
나토에 대해 바뀐 생각도 드러냈다. 트럼프는 “올 때는 단지 ‘해야 할 일’이라서 왔는데, 떠날 때는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며 동맹국 정상들에 대해서도 “이 나라들의 지도자들이 일어나 자기 나라를 얼마나 사랑하고 열정을 보이는지 지켜봤다. 믿을 수 없었다. 그런 건 본 적이 없다. 훌륭했다. 우리는 그들이 나라를 지키도록 돕기 위해 여기에 있다 그들은 자기 나라를 지키고 싶어 한다. 그리고 미국이 필요하다. 미국이 없다면, 이건 전혀 다른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2016년 처음 미 대선에 나왔을 때 나토를 비난했던 말도 의식했다. 그는 그때 “나토는 미국을 등쳐먹고 있는데, 우리는 아무것도 안한다”고 했었다. 트럼프는 이날 “이건 미국을 속여먹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가 전세계 앞에서 친(親)나토 지도자로 변신한 것처럼 보였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어느 한 동맹국이 공격을 받으면, 나머지 동맹국 모두 공동으로 방어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5조(Article 5)’을 재확인한 성명에도 서명했다. 이것은 냉전 때부터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핵심 보장 문구였다.
◇동맹국 정상들, 잇달아 트럼프 칭송
네덜란드 총리 출신인 뤼테 나토 사무총장은 이미 정상회의 시작 전부터 트럼프를 기쁘게 하는 문자 메시지를 트럼프에게 보냈다. “아무도 감히 생각 못했던, 이란에 대해 진정 탁월하고 단호한 행동을 축하합니다. 덕분에 우리 모두 더 안전해졌습니다…오늘 저녁 헤이그에서 또다른 큰 성공을 맞게 될 것입니다.” 트럼프는 뤼테가 보낸 이 사적인 메시지를 자신의 트루스 소셜에 그대로 공개했다.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우리는 ‘나토를 다시 위대하게(Make NATO Great Again)’라는 모토를 채택해야 한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의 참여가 없었다면 우리는 2.5% 수준에서 아무런 긍정적 결과도 없이 논의만 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다른 정상들도 차례로 트럼프가 유럽 국방비 증액을 추진한 노력을 칭찬했다. 일부는 그의 이란 공격을 지지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일부 정상들은 트럼프를 감동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난 ‘아첨’을 기꺼이 수용했다”고 평했다.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매우 드물게 자리를 지키며 다른 정상들의 발언을 경청했다. 미국 대통령으로선 드문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군비 증강은 러시아 위협으로부터 유럽을 지키기 위한 ‘필요성’과 독립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트럼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시도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동맹국끼리 군사비를 더 써야 한다면서, 동시에 관세 상업 전쟁을 벌이는 것은 터무니 없는 모순”이라고 말했다.
이는 트럼프의 급격한 입장 변화로, 그는 이전에는 전쟁의 책임을 더 많이 지는 쪽이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라고 지목했었다. 그러나 이번 기자회견에서는 푸틴을 비판하면서 젤렌스키를 칭찬하기도 했다. “그는 용감한 전투를 치르고 있습니다. 아주 힘든 싸움이에요,”라고 트럼프는 말했다.
◇남편이 전장(戰場)에 있는 우크라 女기자에게 “꼭 안부 전해 주시오”
트럼프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한시간 가량 회담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젤렌스키를 “그는 용감한 전투를 치르고 있다. 아주 힘든 싸움이오”라며 칭찬했다. 또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패트리엇(Patriot) 방공 미사일을 얼마나 더 제공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패트리엇 발언은,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방공 시스템을 구매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연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러시아 공습으로 민간인 희생자가 많자, 젤렌스키는 지난 4월 패트리엇 시스템 10기를 150억 달러에 구매하고 싶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러시아와 전투 중인 남편을 둔 우크라이나 기자의 질문에는, “행운을 빕니다. 당신에게 정말 힘든 일이겠어요. 남편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알겠죠?”라고 했다.
나토 공동성명은 우크라이나의 향후 가입 가능성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를 반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배려한 조치로 해석됐다. 그러나 뤼테 나토 총장은 우크라이나를 궁극적으로 NATO에 가입시키겠다는 동맹의 오랜 약속을 강조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평화를 추구하는 여정에 함께 하며,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이라는 불가역적(不可逆的) 길을 가는 것을 계속해서 지지한다.” 작년 워싱턴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 공동성명 내용을 되풀이했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의 책임을 보다 푸틴에게 돌렸다. 그는 “(휴전 도출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더 까다롭다”며 “푸틴은 정말로 그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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