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생제르맹(PSG) 소속 이강인 선수 photo 뉴시스·AP
이강인(24·파리 생제르맹)은 2017년 12월 22일 프로에 데뷔했다. 이강인이 스페인 발렌시아 메스타야(2군)와 후베닐 A(19세 이하 팀)를 오가고 있던 때였다. 이강인은 스페인 세군다 B(3부 리그) 레알 사라고사 B(2군)와의 맞대결에서 후반 37분 교체로 그라운드를 밟았다. 당시 이강인은 16살이었다.
이강인은 2019년 폴란드에서 열린 U-20(20세 이하) 월드컵에서 세계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강인은 대회 7경기에서 2골 4도움을 기록하며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한국 남자 축구가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에서 결승 무대를 밟은 것은 이 대회가 유일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강인은 대회 최우수선수상(MVP)을 받았다. 그의 나이 18살 때였다.
이강인은 역대 23차례 U-20 월드컵에서 두 번째로 어린 MVP 수상자다. 가장 어린 MVP 수상자는 리오넬 메시(2005)다. 메시는 18세 8일의 나이로 MVP를 수상했다. 이강인은 18세 117일에 U-20 월드컵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았다. 이강인이 프로 8년 차가 됐다. 이강인은 발렌시아, 레알 마요르카(이상 스페인)를 거쳐 파리 생제르맹(PSG)에서 2년 차 시즌을 마쳤다.
유럽 정복 PSG, 그 중심에 이강인은 없었다
PSG는 2024~2025시즌 역사를 썼다. 프랑스 리그앙, 쿠프 드 프랑스, 트로페 데 샹피옹에 이어 오랜 꿈이었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정상에 올랐다. PSG는 UCL 결승전에서 인터 밀란(이탈리아)을 5 대 0으로 대파할 만큼 압도적 경기력을 뽐냈다.
이강인은 웃지 못했다. 이강인은 2024~2025시즌 후반기부터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이강인은 UCL 토너먼트(16강~결승전)에선 딱 한 번 기회를 받았다. 이강인은 UCL 16강 2차전 리버풀과의 맞대결에서 연장 전반 11분 교체로 들어가 19분 뛰었다. 이강인은 PSG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난 채 2024~2025시즌을 마쳤다.
이강인은 올여름 이적시장에서 PSG를 떠날 것이 유력하다. 이강인의 새 소속팀으로 SSC 나폴리(이탈리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널(이상 잉글랜드) 등 유럽 빅클럽의 이름이 거론된다. 어마어마한 자금력을 앞세운 사우디아라비아 프로페셔널 리그에서도 이강인을 주시하고 있다.
이강인에게 올여름 이적은 아주 중요하다. 이강인의 선수 경력에 있어서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는 시기인 까닭이다. 이강인은 이제 어리지 않다. 팀 핵심으로 전성기를 맞이해야 할 때다. 그런데 이강인의 현실을 냉정하게 볼 필요도 있다.
이강인의 재능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프로 8년 차 이강인이 팀 핵심으로 한 시즌을 마친 건 딱 한 번뿐이다. 마요르카에서 주가를 드높였던 2022~2023시즌이다. 이강인은 이 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36경기에서 6골 6도움을 기록했다. 이강인이 단일 시즌 '리그 20경기 이상 선발'로 나섰던 유일한 시즌이다.파리 생제르맹(PSG) 선수들이 지난 5월 24일(현지시간) 프랑스 생드니의 스타드드프랑스에서 열린 2025~2025 쿠프 드 프랑스(프랑스컵·FA컵) 정상에 올라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강인을 바라보는 축구전문가 3인의 의견
이강인은 PSG에서 2시즌을 보내며 애매모호해졌다. 이강인은 PSG에서 오른쪽 공격수, 제로톱, 중앙 미드필더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뛰었다. 이강인이 '멀티 플레이어'로 인정받는 선수처럼 팀이 필요로 하는 포지션에서 인상 깊은 활약을 펼친 것은 아니었다. 이강인이 2024~2025시즌 득점포를 가동한 건 2024년 11월 10일 앙제전이 마지막이다. 이강인은 이후 공식전 30경기에서 도움 5개만 기록했다. 주로 오른쪽 공격수, 제로톱으로 뛴 이강인이 30경기 연속 침묵한 채 2024~2025시즌을 마친 것이다.
이강인이 PSG 주전 경쟁에서 밀린 요인은 명확하다. 이강인은 PSG에서 자기 강점을 살리지 못했다. 팀이 필요로 하는 선수가 된 것도 아니었다. 이강인이 2025~2026시즌 자기 강점을 살리고자 한다면, 공을 오랫동안 소유하면서 자기 중심으로 공격을 전개할 수 있는 팀을 찾아야 한다.
2019 U-20 월드컵에서 이강인을 앞세워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었던 정정용 감독(현 김천상무)은 기자와의 만남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이)강인이의 최적 포지션은 10번(플레이메이커)이다. 강인이는 10번으로 뛸 때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인다. 강인이가 킬리안 음바페처럼 빠르게 내달려서 득점을 만들어내는 유형은 아니지 않나. 강인이는 공을 잡고 방향을 바꿔가면서 공간과 기회를 만들어주는 스타일이다. 강인이가 측면 공격수로 자리 잡고자 한다면, 팀에 오세훈·손흥민 같은 유형의 공격수가 필요하다. 강인이는 오세훈처럼 전방에서 싸워줄 수 있는 선수에겐 크로스가 가능하고, 손흥민처럼 뒷공간을 공략하는 공격수에겐 침투 패스를 찔러줄 수 있다."
최문식 안산 그리너스 테크니컬 디렉터는 이강인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최 디렉터는 '한국 최초 테크니션'으로 불리며 1990년대 국가대표 미드필더로 활약한 이다.
최 디렉터는 "2024~2025시즌 PSG의 핵심은 속도였다"며 "전방에선 손흥민처럼 빠르고 득점력 있는 선수가 어울리는 팀이었다"고 말했다. "이강인은 공을 가지고 실타래를 풀어가는 유형이다. 그런데 PSG 주전 공격수들은 하나같이 빨랐다. 볼을 빠르게 처리했고, 쏜살같이 상대 진영으로 내달렸다. PSG는 공을 획득한 순간부터 최대한 빠르게 슈팅까지 가져가려고 했다. 그게 PSG의 색채였다. 공을 잡고서 공격을 풀어가는 이강인의 장점이 나타나기엔 어려운 전술이었다."
최 디렉터는 한국의 2022 카타르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2차전 가나전 득점 장면을 떠올리면서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당시 이강인은 왼쪽에서 날카로운 크로스로 조규성의 득점을 도왔다. "이강인이 측면 공격수로 나서면, 왼발 크로스를 올리거나 중앙으로 파고들어 득점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이강인의 장점이 산다. 2022 카타르 월드컵 가나전을 떠올려 보라. 이강인의 왼발 크로스는 한국의 위협적인 공격 전술 중 하나였다. 만약 PSG 주전 공격수 중 한 명이 이강인 대신 가나전에 나섰다면 어땠을까. 그들은 왼쪽에서 크로스 대신 드리블을 택할 거다. 스피드에 자신 있는 선수들은 본능적으로 드리블을 우선시한다."
최 디렉터는 이강인이 2024~2025시즌 PSG 중원에서도 뛰기 어려웠던 원인을 짚어줬다. "비티냐, 파비안 루이스, 네베스 등 PSG 중원에 포진한 선수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볼 처리가 아주 간결하다. 허를 찌르는 패싱력, 볼 간수 능력도 갖췄다. 이들은 무엇보다 활동량과 수비력에서 이강인보다 우위에 있다. 빠른 공수 전환이 핵심인 PSG에선 미드필더들이 아주 많이 뛰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이강인을 주전 미드필더로 쓰기엔 애매한 것이다. 이강인이 장점을 살리려면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는 게 좋다. 단 팀에 이강인의 활동량과 수비력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강인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 주전 윙어로 활약했던 이상윤 축구 해설위원은 "2024~2025시즌 이강인에게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란 점을 짚었다. "이강인이 PSG에 입단한 게 2023~2024시즌이다. 이강인은 2024~2025시즌 전반기까지 PSG 루이스 엔리케 감독에게 꾸준한 기회를 받았다. 하지만 이강인은 엔리케 감독에게 확신을 주지 못했다. 공격수로 뛰면서 꾸준한 득점력을 보여준 것도 아니었다. 이강인이 훌륭한 재능을 가진 선수인 건 맞지만, 2024~2025시즌만 봤을 땐 PSG의 속도와 전술에 녹아들지 못했던 건 사실이다."
이 위원은 덧붙여 "이강인의 기술은 의심하지 않는다. 상대 수비의 허를 찌르는 패스, 드리블은 아주 뛰어나다. 다만 축구계가 이강인에게 기대하는 게 있다. 이강인은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재능이다. 이강인은 그런 기대에 부응하고자 한다. 그는 U-20 월드컵 때부터 세계 대회 우승을 목표로 한다. 그렇다면 체력, 힘, 속도 등의 보완이 필요하다. 그래야 자기가 가진 장점을 더 부각할 수 있다"고 했다.
이강인의 선택에 대표팀 운명 달렸다
한국은 2026 북중미 월드컵 본선으로 향한다.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다. 이강인의 올여름 선택은 대표팀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강인은 손흥민 이후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재목이다. 이강인은 이미 대표팀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올 시즌 K리그1에서 프로 데뷔 후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전진우, 2025년 발롱도르 유력 후보 우스만 뎀벨레 등을 보면, 선수는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축구 인생이 확연히 바뀌기도 한다. 여기서 선수에게 좋은 지도자란 '자신의 강점을 얼마만큼 인정하고 활용해 주느냐'다.
한국 축구의 전설 박지성은 거스 히딩크 감독을 만나기 전까진 오른쪽 풀백이나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다.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을 만나서 측면 공격수로 자리매김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박지성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측면 공격수로 썼다. 이들은 활동량·수비력이 강점이라고 해서 박지성을 수비 자원으로 쓰지 않았다. 박지성은 세계 축구계 명장들에게 '수비도 잘하는 측면 공격수'였다.
이강인의 재능은 유럽 빅리그 빅클럽도 인정한다. 이강인이 2024~2025시즌 '트레블'을 달성한 PSG 선수란 게 이를 증명한다. 최문식 디렉터는 "한국이 2026 북중미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6월 A매치 2연전을 봤다"며 "경기 감각이 우려됐던 이강인이 변함없이 에이스 역할을 해줬다"고 짚었다. 이어 "재능은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나 이강인은 축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선수다. 이강인이 자신의 장점을 살려줄 수 있는 지도자를 만난다면 지금보다 훨씬 행복하게 축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이강인은 2024~ 2025시즌 유럽 최고의 팀에 속한 선수"라며 "유럽 챔피언 일원으로 쌓은 경험은 이강인의 성장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이어 "이강인의 드리블을 보면 가슴이 뛴다. 한국엔 상대 수비수를 쉽게 제쳐내는 선수가 드물지 않나. 이강인은 두세 명이 붙어도 뚫어낼 수 있는 재능이다. 이강인은 패스 한 번으로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이런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팀으로 가서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세계 축구계가 이강인의 올여름 선택을 주시하고 있다. 이강인은 자신을 향한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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