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약한 남주·강한 여주들의 활약
여성 사회 진출 보편화에 따른 드라마 속 주도권 이전
영국 외신 BBC도 K-드라마 여주인공의 변화 조명
힘세고 자아가 강한 여주인공이 드라마들을 장악하고 있다. tvN 제공
백마 탄 왕자님은 없다. 이제는 힘세고 자아가 강한 여주인공이 드라마들을 장악하고 있다. 여기에 균형을 맞추듯 유약하고 성장이 필요한 남주인공이 로맨스에 특화된 캐릭터성을 발휘하는 중이다. 이는 남성상과 여성상을 획일화 짓는 것을 기피하는 젊은 세대들의 니즈를 적극 반영한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최근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형태가 다각도로 변화하고 있다. 이른바 백마 탄 왕자님으로 불리던 재벌2세 남주인공 캐릭터들은 가정 환경 등으로 성격적인 결핍을 갖고 있거나 콤플렉스로 인해 유약한 자아를 형성하는 공통점을 가진다.
과거 '시크릿 가든' '파리의 연인' 등 인기작들의 클리셰처럼 사용됐던 캔디형 여주인공과 왕자님의 이야기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운 전개다. 지금의 드라마들은 고전의 기승전결을 세련된 스토리텔링으로 변주를 두면서 시청자들이 보고 싶은 인물상을 선보이고 있다. 이달 종영한 지니TV '당신의 맛'이나 tvN '미지의 서울' 등은 여성이 주 서사를 이끈다. 과거 내면의 상처가 있지만 자아가 단단해 외부 타격에도 크게 휘청이지 않는다. '당신의 맛'의 경우에는 완성된 실력을 갖고 있는 여성 셰프, '미지의 서울'에는 직장 내 괴롭힘에도 굴하지 않는 여성 직장인이 표본이 된다.
물질적으로 여유롭지 않지만 이러한 여주인공들은 남주인공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재벌 2세가 돈을 무기 삼아 접근해도 거절하는 모습 등으로 주인공들의 높은 자존감도 부각된다. 지난해 큰 인기를 끌었던 tvN '눈물의 여왕'도 역 클리셰를 내세우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재벌2세인 여주인공이 소시민이었던 남주인공과 사랑에 빠졌고 자신에게 가장 소중했던 일과 지위를 내려놓는다. 2018년 방송된 tvN '남자친구' 또한 회사 대표인 여주인공이 신입사원 남주인공을 만나는 내용이 주 골자다.
앞서 서술된 드라마들의 내용은 성 역할만 바꿨을 뿐인데 색다르고 신선하다. 이미 지위를 가진 여주인공이기 때문에 남주인공의 지원이나 수혜, 또는 신분 상승이 필요하지 않다. 전반적으로 주인공들의 감정 서술이 더 부각되며 캔디형 여주인공의 시대가 저물었음을 느끼게 만든다.
드라마 주 시청층이 OTT 플랫폼 등으로 인해 과거보다 시청층이 확대됐지만 여전히 드라마를 주로 보는 것은 여성이다. 과거 백마 탄 왕자님의 등장이 각광을 받았던 것도 여성 시청자들에게 환상동화 같은 재미를 안겼기 때문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보편화되면서 점차 주도권이 여성에게 넘어가는 이야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로맨스 외에도 다양한 인간 관계의 군상, 직업적 고충 등이 서사에 덧입혀졌다.
2023년 신드롬을 이끈 넷플릭스 '더 글로리'는 로맨스를 중심으로 다루진 않지만 강한 여주인공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이에 영국 BBC는 한국 드라마의 여성 캐릭터 변화를 조명하면서 "현재 한국 텔레비전 시리즈나 드라마에선 사회와 미디어의 관행 변화를 보여주는 복잡하고 강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라면서 '더글로리' 외에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닥터 차정숙' 등을 함께 언급했다. 독립적인 여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끄는 서사가 K-드라마의 열풍, 거기에 한국 사회의 변화까지 촉구한다고 바라봤다.
우다빈 기자 ekqls064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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