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이란·이스라엘 주재원 전원 대피
에너지 의존도 높은 산업 간접 타격 받을 듯
(시사저널=오유진 기자)
15일(현지 시각) 이스라엘 텔아비브 상공에서 이스라엘 방공 시스템인 아이언돔이 이란의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해 가동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중동 분쟁이 현실화하면서 이스라엘, 이란 등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3년 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겪었던 '러시아 리스크'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당시 러시아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은 현지 공장 가동 중단 등으로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중동은 한국 기업의 주요 수출지는 아니지만, 석유화학과 건설업과 제조업 등은 중동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다. 특히 분쟁으로 인한 유가 상승 등 간접적 여파는 러-우 전쟁보다 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은 이스라엘 등에 파견한 주재원과 가족을 인접 국가로 대피시키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4~15일 이스라엘 마케팅 법인(SEIL)과 반도체 연구개발 법인(SIRC)에 근무 중인 주재원 전원을 인근 국가인 요르단으로 긴급 철수시켰다. 이스라엘 현지에 가전 판매점을 운영 중인 LG전자도 파견된 주재원과 가족을 요르단으로 이동시킨 상태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따르면, 이란·이스라엘에 진출한 11개 한국 기업이 파견 인력을 전원 철수·대피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에서는 3년 전 러-우 전쟁 당시의 '러시아 리스크'가 재현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전쟁 우려로 연일 국제 유가가 출렁이는 데다 이란 역시 서방의 강력한 제재 대상이기 때문이다. 러-우 전쟁 당시 러시아에 진출한 기업들은 현지 생산시설을 매각, 철수하는 등 막대한 손실을 떠안았다. 러시아로 향하던 한국산 스마트폰 등의 수출도 크게 줄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대러시아 수출액은 68억 달러(약 9조원)에서 지난해 45억 달러(약 6조원)로 34% 감소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현대차 생산공장의 모습. 현대차는 2023년 해당 공장을 1만 루블에 매각했다. ⓒTASS=연합뉴스
3년 전 '러시아 악몽' 재소환되나
한국 기업들은 미국의 강력한 러시아 제재로 인해 러시아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 수순을 밟았다.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30%에 달했던 삼성전자는 미국 제재로 제품 출하를 전면 중단하면서 시장 점유율이 0%로 급락했다.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에서 세탁기, 냉장고를 생산했던 가전 공장도 부품 수급이 막히면서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러시아 자동차 시장 1, 2위를 달리던 현대차와 기아는 2023년 러시아 시장에서 공식 철수를 선언하면서 대규모 손실을 감내해야 했다. 현대차는 2020년 제너럴모터스(GM)로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인수했는데, 3년 만인 2023년 이 공장을 1만 루블(약 15만원)에 매각하면서 러시아 내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 당시 현대차의 손실 규모는 1조원을 웃돈 것으로 추산된다.
러시아를 주요 고객사로 삼았던 조선업계의 피해도 막심했다.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은 수주한 쇄빙 LNG선 계약이 해지되면서 중도금조차 받지 못했고, 이미 건조된 운반선은 상당 기간 재고로 떠안아야 했다. 삼성중공업은 최근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했던 러시아 즈베즈다 조선소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바 있다.
수출 영향은 제한적…간접 피해가 관건
업계에서는 중동 사태로 기업에 미치는 직접적 여파가 러-우 전쟁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우선 한국의 대(對) 중동 수출 비중이 작고,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 수도 적기 때문이다. 러-우 전쟁 발발 당시 러시아는 한국의 12위 교역국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이란은 5월 기준 교역국 순위가 각각 39위, 98위다. 코트라는 "한국은 이스라엘, 이란 등 해당국 수출 비중이 크지 않아 전체 수출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란, 이스라엘 현지에 운영 중인 생산기지가 없다는 점도 피해 우려를 낮추는 요인이다.
다만 분쟁 여파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항공·해운 물류가 차질을 빚고 있는 만큼 국내 기업들이 직면할 간접적 피해는 상당할 전망이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석유·화학 업계는 물론 석유 가격에 민감한 제조업, 운송업까지도 파급력이 미칠 수 있어서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70%,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의 3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 인근 국가가 방위비를 증강할 경우 한국 기업이 참여 중인 대형 건설 프로젝트의 발주가 지연되거나 취소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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