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유가 130달러까지 오를 수도”
“연평균 100달러 경우 GDP 0.3%p 하락, 물가는 1.1%p 상승”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지난 15일 이란 테헤란 부근 정유시설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불타고 있다. ⓒAFP=연합뉴스
한국경제에 또 하나의 적신호가 켜졌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강한 충돌로 국제 유가가 들썩일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전 세계 석유 수송량의 20%에 육박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대미 관세 여파로 경제 불확실성이 한층 커진 상태에서 유가까지 급등한다면 한국 경제가 복합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15일 오후 8시(현지 시각) 기준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선물은 3.7% 급등한 배럴당 75.67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북해산 브렌트유 선물 역시 전날보다 1% 이상 올라 75달러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들 유가는 이달 초만 하더라도 배럴당 60달러 초반에서 거래가 형성됐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이란을 전격 공습하며 중동 위기가 고조되자 급등하는 모양새다. 지난 13일 WTI 선물 가격은 장중 한때 전거래일 대비 14.07%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초반인 2022년 3월 이후 하루 기준 최대 변동 폭이다.
전 세계 원유 생산의 3분의 1을 담당하고 있는 중동에서 전면전 우려가 커지면서 유가 전망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특히 이란 혁명수비대(IRGC)의 에스마일 코사리 지휘관이 "세계 석유의 3분의 1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경고하면서 위기감을 키우는 형국이다.
페르시아만과 아라비아해를 잇는 호르무즈 해협은 글로벌 원유 및 LNG 해상 물동량의 20%가 지나는 핵심 수송로다. 해당 해협이 막힐 경우 이곳을 지나는 유조선은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해야 해 비용 증가와 적시 수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투자은행 JP모건은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거나 무력 충돌이 중동 전역으로 확대되면 심각할 경우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실제로 단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진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에너지 운송의 85%가 아시아향"이라면서 "역으로 우방인 이라크와 카타르, 주요 고객인 중국의 반발을 유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란은 평화와 안전에 문제가 없는 한 항해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무해통항권에 가입돼 있다"고도 덧붙였다.
다만 중동 분쟁의 중재자 역할을 해온 미국의 입장이 이번엔 다르다는 점이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5일(현지 시각) "나는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휴전) 합의가 이뤄지길 바란다. 협상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국가들이 먼저 싸워서 해결해야 한다"고 언급해 양국을 자극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며 에너지 수급 우려가 커지고 있는 16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표시된 유가 정보 ⓒ연합뉴스
올해 GDP 전망치 0.8% 더 떨어지나
당장 한국경제에는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다. 현재 한국은 원유의 70% 이상, 액화천연가스(LNG)의 3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대부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기에 봉쇄가 현실화하면 원유 수급에 차질이 생겨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크다.
현재 우리나라는 정부 비축분과 민간 보유분 등을 합쳐 약 200일분의 비축유를 확보한 상태다. 단기 수급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관측이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펼칠 경우 에너지 수급 불안은 물론 제조 비용 증가, 공공요금 인상 압력, 물가 상승 등 전방위적인 경제 위기를 마주할 수 있다. 가뜩이나 미국발 관세 리스크로 인해 타격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악재가 또 하나 추가되는 셈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로 전개될 경우 올해 경제성장률도 하향 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2022년 3월 현대경제연구원은 '글로벌 경기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상품가격 불안정성 확대, 인플레이션 압력 고조, 실물 경기 침체 등과 같은 막대한 경제적 비용이 동반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 바 있다. 특히 국제유가가 연평균 배럴당 100달러에 도달하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3%포인트(p) 하락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1%p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앞서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GDP 전망치를 0.8%로 하향 조정했다. 두 기관 모두 직전 전망 대비 절반 수준으로 전망치를 깎았다. 일부 기관들이 최근 들어 새 정부의 대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 가능성이나 미국의 관세 리스크 완화 등을 고려해 전망치를 소폭 상향 조정하고 있다. 하지만 중동 쇼크가 장기화할 경우 추가 하향 조정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정부는 대응책 논의에 분주한 모습이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오전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 회의를 개최하고 "양국 간 무력충돌이 반복되고 향후 전개양상에 대한 불확실성이 매우 높다"며 "금융·실물경제 동향을 면밀히 점검하고 특이 동향이 발생하면 관계기관 간 긴밀한 공조 아래 신속히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경제 펀더멘털과 괴리된 과도한 시장 변동성에는 '상황별 대응계획'에 따라 즉각적이고 과감하게 조치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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