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 첫 통화부터 이상 신호…트럼프 ‘침묵’, 美 관망 기류
“중도보수 표방”에도 좌파 이미지…美 언론, ‘李 세계관’에 의구심
李, 미·일 압박 속 첫 외교 무대 G7에서 ‘균형외교’ 선보일지 주목
(시사저널=김하늬 미국 통신원)
이재명 대통령의 집권으로 한국 외교는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전임 윤석열 정부가 한미 동맹에 지나치게 치우쳤다면, 이재명 정부는 그 균형을 재조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러한 변화를 경계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대선 기간 이 대통령은 중도보수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한미 동맹 강화를 강조했다. 그러나 여전히 '좌파'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치적 성향이 상반된 인물이라는 선입견, 중국·북한과의 관계 재설정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얽히고설킨 고차방정식 같은 외교 실타래를 풀어낼 수 있을까.
ⓒ일러스트 신춘성
'균형' 강조했지만 미국 의심 안 걷혀
이재명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 간 '적신호' 조짐은 첫 통화부터 감지됐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취임 사흘 만인 6월6일 트럼프 대통령과 첫 통화를 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대통령의 통화 내용은 위성락 안보실장이 들었다. 한미 관계는 걱정 안 해도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역대 정부 사례와 비교할 때 이례적으로 늦은 시점이다. 윤석열, 문재인, 박근혜 전 대통령 모두 당선 직후 혹은 취임 당일 미국 대통령과 곧바로 통화한 전례가 있다.
통화 내용 발표 역시 눈에 띄게 달랐다. 한국 정부는 통화 직후 관련 내용을 공개했지만, 미국은 별도의 설명자료를 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국 정상과의 통화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해 왔지만, 이 대통령과의 통화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후 통화 사실은 나흘 후 미국 국무부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중 처음으로 확인했을 뿐이다. 미국 측의 관망 기조가 뚜렷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재명 정부가 맞닥뜨릴 외교 현안은 산적해 있다. 미국의 관세 문제부터 방위비 분담금, 주한미군 역할 조정, 대중국 견제 동참 요구 등 한미 간에는 첨예한 이슈가 즐비하다. 통상·국방·대북·외교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트럼프의 미국과 조율해야 할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바라보는 이 대통령의 이미지는 급진적이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그를 '좌파' 혹은 '좌파 성향' 인사로 묘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재명 정부가 중국·일본에 대한 워싱턴의 접근법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 긴장이 발생할 수 있다"며 "한국에 진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서울과 워싱턴 간 정책 불일치가 커졌다"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자국 외교정책을 재편하겠다는 비전을 지닌 자유주의자를 한국 국민이 선택했다"며 "이는 중국 문제를 놓고 트럼프와 갈등을 빚을 수 있다"고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일본과의 3자 협력 유지를 시사했지만, 여전히 균형 잡힌 접근과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선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간다국제학대학 사카타 야스요 교수는 "진짜 시험은 그가 집권한 이후부터"라고 지적했다.
외신들은 공통적으로 이 대통령이 미국과의 동맹, 그리고 자국의 외교 자율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예측 불가능성은 오히려 이 대통령으로 하여금 기존 외교 선례와 무관하게, 자국민 보호를 위한 단호한 조치를 택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정상 통화 대상을 미국, 일본, 중국 순으로 정했다. 이는 미국 백악관이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며 한국이 그에 동조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힌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이 미국의 의구심을 누그러뜨리고 불필요한 자극을 피하려 신중하게 통화 순서를 설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도 반색했고, 미국 역시 일정 부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평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장거리포·미사일 체계 합동타격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5월9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
G7에서 미·일과 정상회담 가능성
이제 이 대통령의 첫 외교 시험대는 6월15~17일 캐나다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될 전망이다. 취임 열흘 만에 다자 외교 무대에 데뷔하는 이 대통령은 미국, 일본 등 주요국 정상들과 마주하게 된다. 한국은 G7 회원국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의장국인 캐나다의 초청으로 참석하게 됐다. 영국 BBC는 "한국은 이번이 여섯 번째 G7 초청 사례"라며 "이 대통령이 미국, 일본과의 첫 양자 회담이나 한·미·일 정상회담을 추진할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전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G7 정상회의엔 안보실장과 홍보수석이 동행한다"며 "현지에서 트럼프와 만나 관계를 트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G7에서 트럼프 대통령,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각각 회담을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트럼프는 이번 회의에서 이재명 정부에 대한 입장을 보다 명확히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을 견제하는 국제 공조에 이재명 정부가 얼마나 동참할지를 두고 트럼프가 압박에 나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행정부가 점점 더 강경한 대중 전략을 펼치고 있으며, 동맹국들에도 이를 따르도록 요구하고 있다"며 "이는 균형외교를 지향하는 이 대통령에게 큰 도전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안킷 판다 연구원은 "국가안보와 대미 동맹에 관한 한, 이 대통령에게 이번 G7이 첫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한미, 한·미·일 협력을 유지하되 이를 지렛대 삼아 중국과의 전략적 대화, 북한과의 실질적 접점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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