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강국 도약의 길 <1> AI정책 새 판을 짜라
민관 100조 투자·AI컴퓨팅센터 등
'모두의 AI' 전방위 정책 드라이브
컨트롤타워 역할 AI미래기획 수석
업계와 이해관계 조정 리더십 중요
거버넌스 위한 일관된 추진력 필요
산업 연계 구체적 실행방안도 절실
일관된 인프라 구축·인재양성 과제
사후책임 중심으로 규제 정책 조정
'모두의 인공지능(AI)'을 내세운 이재명 정부가 AI 시대의 국가 전략 수립에 본격 착수했다. 민관 공동 100조원 투자, 국가 AI컴퓨팅센터 구축, 규제완화 등 대형 정책 어젠다가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구체성과 실행력을 갖춘 실전 로드맵이다. 기술주권 확보부터 민간협력 구조 설계까지, 선언에 머물렀던 정책들을 실질적 전략으로 전환하는 것이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업계와 학계는 글로벌 AI 패권 경쟁에서 성과를 내려면 한국 AI정책이 명확한 우선순위와 정밀한 설계를 바탕으로 '새판 짜기'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AI컨트롤타워, 속도와 방향 잡아야"
가장 관심이 쏠리는 부분은 정책 추진의 중심축이 될 AI 컨트롤타워 개편이다. 특히 대통령실 직속으로 신설되는 AI미래기획 수석은 단순한 정책자문을 넘어 범부처 정책을 총괄하고 조율할 실질적 권한을 갖춘 정무형 실무총괄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수석 아래 과학기술연구, 인구, 기후, 국가 AI정책 비서관으로 구성하며 AI진흥의 뜻을 명확히 했다.
전문가들은 AI 인프라 구축, 인재 양성, 공공AI 활성화, 윤리 및 거버넌스 등 정책 영역이 방대하고 복잡한 만큼 기술과 정책, 산업에 대한 복합적 이해를 갖춘 인물이 필요하다고 본다. 10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현재 물망에 오르고 있는 인사로는 임문영 전 디지털정책조정관, 박태웅 전 과기정통부 자문관, 장병탁 서울대 교수 등이 거론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AI수석은 단순한 청와대 인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며 "산업계와 학계, 부처 간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전략적 리더십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새 정부가 참고할 수 있는 기구로는 더불어민주당 시절 가동됐던 'AI강국위원회'가 있다. 당시 위원회는 'AX혁신' 'AX포용' 'AX소버린' 'AX국방' 등 4대 전략 분과를 중심으로 AI 기반 사회 전환 청사진을 제시했다. 산업과 공공, 인재, 주권, 안보에 이르는 전방위적 접근이 특징이었다.
윤석열 정부 당시 AI정책의 축이었던 국가AI위원회는 5개 분과(기술·혁신, 산업·공공, 인재·인프라, 법·제도, 안전·신뢰)를 통해 AI정책 거버넌스 역할을 시도했지만, 예산이나 운영 권한에서 제한이 있다 보니 예상보다 정책 추진 속도와 범위가 더딘 것도 사실이었다. AI수석 체제가 정식으로 자리 잡게 되면 국가AI위원회의 기능 역시 재정비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AI정책의 구심점이 명확해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다만 거버넌스가 제 기능을 하려면 현장을 잘 반영하면서도 부처 간 실질적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특히 장기적 관점에서의 일관된 추진력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AI컴퓨팅센터 조기 진수 필요
전문가들은 AI산업을 전방위적으로 키우기 위해 유연한 민관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표적 케이스가 국가AI컴퓨팅센터다. 정부가 2조원 이상을 투입하는 국가AI컴퓨팅센터는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대거 투입해 이를 수요기업과 연구가 필요한 학계, 스타트업까지 임대하는 서비스를 하는 것이 핵심이다. 다만 지분비율을 정부 51% 민간 49%로 제한한 데다 민간 참여기업에 혜택이 적다는 지적도 제기된 바 있다. 지난달 1차 입찰 공모에서 '제로 응찰' 사태를 빚으면서 일부 정책 선회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 바 있다. 정부는 이달 13일까지 2차 입찰을 진행 중이다.
한 대형 IT서비스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입찰 설명회를 할때 100개 넘는 기업이 관심을 보였지만 운영 조건이 녹록지 않아 대다수 업체가 마지막까지 눈치보기를 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꼭 이번 케이스가 아니더라도 AI 1위 국가인 미국처럼 민간이 주도해 과감히 시장을 키울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은 AI 데이터센터(AIDC) 구축, 반도체 등 AI 인프라에 수백조원 규모의 투자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은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민간 주도형 AI 프로젝트의 대퓨적 케이스다. 오픈AI와 오라클, 소프트뱅크 등 3사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며 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향후 4년간 5000억달러를 AI 인프라에 투입하는 계획이 핵심이다. 민간 주도 초대형 프로젝트라는 상징성을 띠고 있어 이 프로젝트에 추가 참여를 희망하는 업체도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U는 '인베스트AI 이니셔티브'를 통해 2000억유로를 모아 하이퍼스케일 AIDC를 건설할 계획이다. 중국은 10대 컴퓨팅 허브와 자체 AI 반도체 생태계를 동시에 키우며 기술주권 확보에 나서는 상황이다.
과감한 민관 투자환경이 조성되지 않다 보니 통계에서도 국내 AI산업은 뒤처지는 형국이다. 영국의 데이터 분석업체 토터스 미디어가 발표한 글로벌 AI 인덱스가 대표적이다. 한국은 2024년 기준 세계 6위를 기록했으나, 상업 생태계 및 인재 풀 부문에서는 1위와 2위인 미국과 중국에 비해 큰 격차를 보였다. 인프라와 정책 전략은 경쟁력을 갖췄지만, 민간 혁신역량을 뒷받침할 구조화된 실행계획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규제 지향적 제도 전면 개편 필요
AI 관련 법·제도 정비에서도 방향 전환이 예상된다. 내년 시행을 앞둔 AI기본법은 고위험 AI기술에 대해 강력한 규제를 예고하며 업계의 우려를 샀다. 이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불합리한 AI규제로 위축되는 일이 없도록 면밀히 점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해외 법·제도 정비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최근 사례는 일본이다. 일본은 지난 4일 '인공지능 관련 기술의 연구 개발 및 활용의 추진에 관한 법률(인공지능추진법)'을 제정·공포했다. 한국의 AI기본법이 내년 1월 시행인 점을 감안하면 일본 AI법은 선례로 볼 수 있다. 일본의 AI추진법은 사업자에게 강제 의무보다는 협력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제재보다는 가이드라인이나 지도·자문을 통한 리스크 관리를 강조함으로써 AI관련 업계가 서비스를 개발할 때 운신의 폭을 넓혀 주도록 배려한 것이 특징이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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