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상용화 나선 韓 연구팀·테크기업
전남중 한국화학연구원 박사·유종수 고산테크 CTO
태양전지 '세계 최고 효율' 달성…올해 양산화 도전
"돈 쏟아붓는 중국, 일본이 기술 선점... 한시가 급해"
전남중 한국화학연구원 광에너지연구센터장 (왼쪽 끝)과 전 센터장이 이끄는 연구팀의 모습 /사진=한국화학연구원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기술입니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이 최근 이 분야에 엄청난 투자를 감행하고 있습니다."
전남중 한국화학연구원(이하 화학연) 광에너지연구센터장은 최근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K-페로브스카이트'가 기술은 세계 최고인데 상용화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 센터장은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유일하게 3년 연속 '세계 최고 영향력을 가진 연구자(HCR)'에 선정된 화학자다.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10년간 피인용 횟수가 상위 1%인 논문을 가장 많이 발표한 연구자가 HCR에 선정된다. 전 센터장의 전문분야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다.
태양전지는 태양의 빛에너지를 전기로 변환해주는 장치다. 고갈되지 않는 태양 빛이 에너지의 원천인데다 발전 과정에서 환경에 유해한 물질을 배출하지 않기 때문에 친환경 에너지 기술로 주목받는다. 페로브스카이트는 태양전지에 쓰이는 신소재다. 빛이 없으면 효율이 떨어지는 실리콘과 달리 낮은 조도에서도 높은 에너지 효율을 유지하는 데다 곡면에 설치할 수 있을 정도로 가볍고 유연하다.
전 센터장 연구팀과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상용화를 연구 중인 장비 전문 기업 고산테크의 유종수 CTO(최고기술책임자)는 "한국이 페로스카이트 태양전지 원천 기술만큼은 '세계급 선수'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 우리나라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가 막 움틀 때부터 단연 앞서나가는 성과를 냈다. 고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이가 우리나라 연구자인 박남규 성균관대 교수다. 전 센터장 연구팀은 이같은 흐름을 발전시켜 2023년 3월 200㎠ 이상 대면적 페로브스카이트에서 18.24% 효율을 달성해 세계 기록을 세웠다. 이후 중국 연구팀이 기록을 앞질렀지만, 전 센터장 연구팀이 20.6% 효율을 달성하며 세계신기록을 되찾아왔다.
전남중 화학연 센터장 연구팀이 2023년 개발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셀 /사진=한국화학연구원
하지만 'K-페로브스카이트'는 한참 앞선 원천기술을 보유하고도 상용화 목전에서 위기를 겪고 있다. 한국은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면적의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실증해 본 경험이 없어서다. 2세대 디스플레이 기판 크기(370㎜ x 470㎜)가 지금으로선 국내 최대다.
유 CTO는 "실제 제품에 적용할만한 큰 크기의 태양전지를 여러 개 만들어 봐야 상용화 단계에서 생길 수 있는 기술적 문제를 찾을 수 있는데, 면적 크기를 키우는 데 드는 장비값과 재료값이 어마어마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연구실 수준의 R&D(연구·개발) 예산만으론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전 센터장은 "미국과 일본, 중국의 투자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수준"이라고 했다. 미국은 에너지부(DOE)를 중심으로 매년 3억 달러(약 4096억원)를 태양광 연구에 쏟는다. 일본은 총리가 직접 나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국가 산업'으로 점찍었다. 일본 세키스키화학공업이 조 단위 투자를 결정했고 일본 정부가 '매칭형'으로 비슷한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기로 했다. 2027년부터 태양전지를 양산하는 게 목표다.
중국 정부는 '제14차 5개년 계획'에 따라 태양전지 기술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했다. 전 센터장은 "중국이 대규모 실증 단지에 축구장 하나를 덮을 정도로 많은 태양전지 패널을 깔아 성능을 시험 중"이라고 했다. 여기서 생산하는 전기에너지만 수백 MW(메가와트)에 이른다.
중국 톈진에 위치한 대규모 태양광에너지 시설 전경 /사진=중국 신화통신
전 센터장은 "경쟁국이 대규모 투자를 통해 시장을 주도한다면 한국은 효율적인 R&D와 빠른 상용화 전략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했다. 연구팀은 올해부터 양산화 공정을 확립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연구팀은 '잉크젯 프린팅 기술'이 그 해답이 될 거라고 본다.
유 CTO는 "태양전지 생산의 핵심은 나노(nm·10억분의 1m) 크기의 박막을 얼마나 균일하게 인쇄할 수 있는가에 있다. 잉크젯 인쇄 방식은 나노 단위의 디스플레이 생산 공정에 활용되며 기술성을 검증한데다 전후방 산업도 잘 발달해 있어서 대량생산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본다"고 했다.
화학연 연구팀과 고산테크 연구팀은 올해 3월 화학연 상생기술협력센터에 입주해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기술을 이전한 연구자와 수요기업, 공급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주한 뒤 함께 연구하는 공간이다. 유 CTO는 "실제 느껴지는 개발 속도가 다르다. 모든 연구자가 함께 붙어있으니 실험에 실패해도 재도전하는 데 부담이 적다. 낮에 실험해보고 안 되면 저녁에 다시 하자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했다.
첫 양산화 공정 실험을 위한 기본 장비들은 올가을쯤 완성될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서 태양전지 시제품을 생산해 수요 기업에 보여주고 피드백을 적용해 곧바로 재생산하는 과정을 반복할 예정이다.
전 센터장은 "기술이전 후에도 연구자와 기업이 계속 가까이서 협업하다 보면 또 다른 새로운 기술을 발견하게 된다. 이후엔 제2, 제3의 공동 특허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화학연 상생기술협력센터 내부 실험공간 /사진=한국화학연구원
박건희 기자 wiss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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