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은 대통령경호처 ‘비화폰 불출 내역’ 문건을 입수했다. 12·3 쿠데타의 핵심 인물들은 경호처 비화폰을 가지고 있었다. 경찰은 비화폰 정보가 원격으로 삭제된 정황을 포착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4차 공판이 열린 5월19일, 윤석열이 오전 재판 종료 후 법정을 빠져나가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비화폰은 12·3 쿠데타를 주도한 윤석열에게 유용한 도구였다. 통상 대통령은 안보상 목적으로 비화폰(도청·녹음 방지 보안폰)을 쓴다. 윤석열은 대통령 취임 후에도 개인 휴대전화를 사용했다. 비화폰을 본격적으로 이용한 건 12·3 비상계엄 계획이 구체화되던 2024년 11월 말부터다. 검찰은 “피고인(윤석열)과 공범들이 대통령경호처 관련한 정부 비화폰(경호처 지급 비화폰)을 매개로 은밀히 소통하며 내란 범행을 모의하고 실행(5월26일 윤석열 내란 우두머리 혐의 5차 공판)”했다고 본다.
윤석열은 대통령경호처 비화폰을 어떻게 활용했을까. 12·3 쿠데타 핵심 인물들은 경호처 비화폰을 가지고 있었다. 윤석열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뿐만 아니라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진우 전 수방사령관도 군 비화폰과 별도로 경호처 비화폰을 수령했다. “국군통수권자와 소통할 일이 있는 사령관들에게는 (경호처 비화폰이) 지급될 수 있다(1월24일 검찰 진술)”라는 게 김성훈 전 경호차장의 설명이다. 〈시사IN〉이 입수한 경호처 ‘비화폰 불출 내역’ 문건에 따르면, 여인형 전 사령관에게는 2023년 11월5일, 곽종근·이진우 전 사령관에게는 2023년 11월10일 비화폰이 지급됐다. 세 사람은 그해 11월6일 각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모두가 경호처 비화폰을 받은 건 아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육군 참모총장)과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경호처 비화폰이 없었다. 그런데 12·3 쿠데타 ‘비선 기획자’로 알려진 민간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게는 12·3 비상계엄 전날 비화폰이 지급됐다. “경호처에서 핸드폰을 가져다줄 거니까 받으면 바로 가져와.” 2024년 12월2일 오후 7시, 김용현 전 장관은 자신의 사적 수행원 역할을 하던 전직 경호처 직원 양 아무개씨에게 지시했다. 검찰은 양씨가 김용현 전 장관에게 건넨 비화폰이 그날 저녁 노상원 전 사령관에게 전달됐다고 본다.
윤석열 통화 내역이 일부 공개됐지만, 12·3 쿠데타의 핵심 퍼즐인 ‘비화폰끼리’의 통화 내역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예컨대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가 임박하자, 윤석열이 비화폰으로 주요 지휘관들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의원을 끄집어내라(곽종근·이진우 전 사령관)” “국회 들어가려는 국회의원들 다 체포해. 국회의원들 다 포고령 위반이야. 체포해(조지호 경찰청장)”라고 지시했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윤석열 비화폰 통화 내역에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경호처 비화폰 관리업체의 설명에 따르면, 보안 앱을 사용하는 경호처 비화폰끼리의 통화 내역은 경호처 비화폰 서버에 저장된다. 경호처 비화폰으로 군 비화폰에 ‘비화폰 모드’로 전화(발신)하는 경우에도, 통화 내역은 경호처 비화폰 서버에만 남는다(1월24일 검찰 진술). 그간 경호처는 “경호 업무와 관련된 자료들은 비밀로 분류된다”라며 경찰의 압수수색을 막아서고, 비화폰 서버 제출을 거부했다. 5월이 되어서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에 비화폰 서버를 선별해 임의 제출했다.
경찰 특별수사단은 비화폰 서버 기록 분석 결과, 윤석열·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의 비화폰에 담겨 있던 정보가 원격으로 삭제된 정황을 포착했다고 5월26일 밝혔다. 누군가 외부에서 세 사람의 비화폰을 강제로 ‘로그아웃’한 건데, 이 경우 통화 내역 등 비화폰 정보가 모두 사라져 일반 휴대전화와 비교하면 ‘초기화’나 다름없는 상태가 된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왼쪽부터).ⓒ시사IN 박미소
비화폰 원격 삭제가 이뤄진 시점은 12·3 비상계엄 선포 사흘 뒤인 2024년 12월6일이다. 윤석열에 대한 1차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을 하루 앞둔 이날, 경찰 특별수사단과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비상계엄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홍장원 전 차장은 “계엄 날 오후 10시53분 윤 전 대통령이 전화로 ‘이번 기회에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하라’고 지시했다”라고 폭로했다. 그리고 바로 이날 홍 전 차장의 비화폰 기록이 삭제됐다.
같은 날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의 비화폰 기록도 삭제됐다. 김 전 청장은 2024년 12월3일 오후 6시20분경 대통령 안가에서 조지호 경찰청장과 함께 윤석열을 만나 구체적인 비상계엄 계획을 듣고, 계엄이 선포되자 경찰 기동대를 투입해 국회 통제를 지시한 인물이다. 김 전 청장은 윤석열이 대구지검에 부임한 1994년 그를 처음 만났다. 줄곧 대구·경북에서 근무하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승진 가도를 달렸다. 2023년 1월부터 서울경찰청 수사부장 등 주요 보직을 맡기 시작했고 2024년 8월 서울경찰청장으로 발탁됐다.
김봉식 전 청장은 경호처 비화폰으로 윤석열과 한 번 통화했고, 통화 내용은 ‘격려’가 전부였다고 주장했다. “12·3 비상계엄 해제 이후인 2024년 12월4일 오후 2시경(정확하지는 않음)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통령께서 보안폰으로 전화를 주셔서 ‘김 청장이 중간에 의원들을 국회에 출입시켜줘서 빨리 잘 끝났어. 수고했어’라고만 하셨다. ‘예, 알겠습니다’라고 통화를 마쳤다(2024년 12월21일 검찰 진술).” 윤석열은 같은 날 오후 1시45분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이 전 장관은 이 통화를 전후로 법조인 출신 4인방의 ‘대통령 안가 회동’을 추진했다.
그런데 서울경찰청장이 왜 경호처 비화폰을 가지고 있었을까? 2024년 8월 취임한 김봉식 전 청장은 윤석열이 본격적으로 비화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그해 11월 경호처 비화폰을 받았다. 명분은 ‘대통령 일정 등에 대한 경호 보안 강화’였다. 12·3 비상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 밤 9시가 지난 시각에, 김용현 전 장관이 비화폰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대통령 경호 보안’ 목적은 아니었다.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님께서 청장님이 부임하신 이후 열심히 잘하고 계신다고 가끔 칭찬하십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잘하십시오’라고 말씀하시기에 제가 좀 뜬금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예,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끊었던 기억이 있다”라고 김 전 청장은 검찰에 진술했다.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김봉식 전 청장의 주장대로라면, 이전에는 업무상으로도 전혀 접촉이 없던 김용현 전 장관이 12월1일 밤 9시가 넘은 시각 김 전 청장에게 비화폰으로 전화를 걸어서 단순히 윤석열의 칭찬을 전달했다. 검찰이 “12월1일 통화와 12월3일 (대통령 안가) 회동을 연결지어 생각해보지는 않았느냐”라고 따져 묻자, 김 전 청장은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김 장관이 그랬을 수도 있겠다”라고 2024년 12월23일 검찰 조사에서 말했다. 김 전 청장은 김 전 장관이 비상계엄 선포 전에도 전화해 “비상계엄이 조금 늦어질 것”이라고 고지했다고 진술했다.
12·3 쿠데타를 공모한 김용현 전 장관의 경호처 비화폰은 내란 전모를 밝힐 핵심 증거다. 김 전 장관은 철저하게 경호처 비화폰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2024년 12월3일 오후 6시11분 김 전 장관은 이상민 전 장관에게 전화해서 “비화폰 가지고 있냐. 그걸로 전화하라”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휴대전화를 바꿔 전화를 걸자 김 전 장관이 “서울에 도착하는 대로 용산으로 들어오라”고 했다고 2024년 12월16일 경찰에 진술했다. 곽종근·여인형·이진우 전 사령관의 검찰 진술을 종합하면, 김용현 전 장관은 사령관들과 통화할 때도 경호처 비화폰을 이용했다. “(이진우 전 사령관은) 김용현 장관님과 통화하실 때만 무궁화폰(경호처 비화폰)을 사용하셨다(2024년 12월26일 수행부관 오상배 검찰 진술).”
2024년 12월6일 국회 정보위원회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2·3 계엄 당시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윤석열의 통화 내역 캡처본을 기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시사IN 김영화
경호처 비화폰이 추가로 원격 삭제된 정황도 있다. 검찰은 2024년 12월 여인형·이진우 전 사령관의 경호처 비화폰을 확보했지만 모두 ‘먹통’이었다. “계엄이 선포되고 나서 대통령님이랑 통화할 때는 그 폰으로 통화했다. 두 번 정도 전화가 왔다”라던 여인형 전 사령관은 “내가 어떻게 한 것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고장 낸 적이) 전혀 없다(2024년 12월12일)” “사용하던 휴대전화 그대로를 건넸다(2024년 12월16일)”라고 검찰에 진술했다. 이진우 전 사령관도 2024년 12월14일 검찰 조사에서 “압수수색 나왔을 때 제출하면서 (무궁화폰을) 켜려고 했는데 뭘 차단해놨는지 켜지지 않았다”라고 진술했다.
누가 ‘원격 삭제’를 지시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비화폰 서버를 관리하는 경호처에서 이 같은 조치를 한 것으로 본다. 지시 주체는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삭제된 비화폰 데이터 복구에 나서는 한편, 증거인멸 혐의와 관련한 수사를 시작했다. 한편 이번에 경찰이 확보한 자료는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 방해(특수공무집행 방해)’ 혐의 재판에서만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 윤석열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에 증거로 쓰기 위해선 담당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가 직권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거나 경찰에 사실조회를 요청해야 한다. 검찰은 비화폰 서버 자료에 대한 압수수색이 필요하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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