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 한림대성심병원장 겸 에크모센터장
코로나19 환자 국내 최초 폐이식 수술 성공
수술 전 112일 에크모로 연명, 세계 기록
국내 최초 개소한 에크모센터서 첫 센터장 맡아
“고난도 중환자 치료를 선도하는 병원 되겠다”
김형수 한림대성심병원장은 5월 27일 조선비즈와 만나 "에크모(ECMO) 장비는 그 자체로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만능장치가 아니라 말기 상태의 심폐 부전 환자가 이식받기 전까지 생명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라고 말했다./한림대의료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이제 계절성 감기처럼 여겨지지만, 5년 전만 해도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무서운 병이었다. 2020년 2월, 50대 여성 코로나19 중증 환자가 긴급 후송돼 경기도 안양시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응급 중환자실 음압격리실에 입원했다. 당시 이 환자는 기도에 튜브를 넣고 인공호흡기를 달았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강력한 항염증 효과가 있는 스테로이드제도 무용지물이었다.
의료진은 체외막산소공급장치(ECMO·에크모)를 쓰기로 했다. 에크모는 심장이나 폐 기능이 정상이 아닌 중환자의 혈액을 몸 밖으로 빼내 산소를 공급한 뒤 다시 체내로 흘려보내는 장치다. 간단히 말해 심장과 폐를 우회해 인체에 산소를 공급하는 장치다. 에크모가 심폐 기능을 보조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다.
이 환자는 무려 112일 동안 에크모 치료를 받았다. 에크모 사용으로는 세계 최장 기록이었다. 폐 기능이 심하게 손상돼 에크모를 떼면 환자의 사망 위험이 높은 상황이었고 선택지는 폐 이식 밖에 없었다. 의료진은 8시간에 걸친 폐 이식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 후 환자는 스스로 호흡이 가능해져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김형수 한림대성심병원장(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당시 국내 최초로 코로나19 환자에게 폐를 이식하는 수술을 집도했다. 지난달 27일 만난 김 병원장은 “코로나19가 어떤 질병인지 다 규명이 안됐던 터라 에크모 환자의 폐 이식 수술 후 조직이 돌아올지 여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면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폐는 크기도 작게 수축돼 있고 돌덩이처럼 딱딱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폐 이식 수술을 결정하고 에크모 치료를 유지하면서 외과중환자실 양압이식방으로 환자를 옮겨 폐 공여자를 기다렸다. 김 병원장은 ”장기간 에크모 장착으로 인한 감염, 출혈, 혈전증 등 여러 합병증을 막기 위해 의료진이 함께 24시간 집중치료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형수 한림대학교성심병원장(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 에크모센터장)이 에크모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살펴보고 있다.
김 병원장에 수식어처럼 따르는 에크모는 2014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 사용했다고 해서 대중의 관심을 모았다. 이듬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유행 때도 중환자 치료의 핵심 도구로 사용됐다. 한 대 가격은 종류에 따라 1억~3억원대로, 아직 상용화된 국산 제품은 없다.
김 병원장은 큰 사건을 통해 에크모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탓에 오해도 많다고 했다. 그는 “에크모는 그 자체로 환자를 치료하는 만능 장치가 아니라 생사 기로에 있는 사람 생명을 연장해 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며 “말기 상태의 심폐 부전 환자가 이식받기 전까지 생명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에크모의 가치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의료진에게 중환자의 생명을 살릴 기회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한림대성심병원은 2015년 3월 국내 처음으로 에크모센터를 열었다. 김형수 병원장은 그때부터 에크모센터장을 맡았다.
에크모센터는 에크모와 함께 중환자실 환자 감시시스템, 혈액투석기, 최신 초음파 장비 등을 갖췄다. 병원은 에크모센터에 흉부외과·중환자의학·순환기내과·응급의학과·신장내과·신경과 등 다양한 전공의 의료진을 투입했다. 병원에 있는 권역응급의료센터도 응급환자 전용 하이브리드 수술실을 마련하고 심정지 환자에게 심폐소생술과 혈관조영술, 에크모 치료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김 병원장은 “재단과 의료원 차원에서 중환자 치료 시스템과 의료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전폭적으로 투자해준 덕분에 더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었다”며 “한림대성심병원의 중환자 치료 시스템이 국내외 다른 병원들의 벤치마킹(모범) 사례도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병원장은 한림대 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컬럼비아대 의대 뉴욕프레스비테리안병원에서 기계적 순환보조·심장이식 분야로 연수 후 한림대성심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과장, 에크모센터장을 거쳐 지난해 병원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병원에서 걸어서 2~3분 거리에 있는 숙소에서 지내며 24시간 병원과 환자 곁을 지키고 있다.
한림대성심병원은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의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지원사업 대상 병원에 선정됐다. 올해는 중환자실을 확장하고, 4월에는 중증 환자만 집중적으로 진료하는 중환자의학과를 출범해 중증 환자 진료·연구 전문성을 강화했다. 김 병원장은 “고난도 중환자 치료를 선도하는 병원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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