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엔 이하나 기자]
6월 9일 방송되는 KBS 1TV '인간극장'에서는 애경 씨 4남매 편이 공개된다.
경기도 일산에서 세무사 사무실을 운영 중인 애경 씨(52) 4남매. 종합소득세 신고가 있는 5월은, 세무사에게 가장 바쁜 달인데, 그 와중에도 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텃밭을 두 군데나 마련한 애경 씨는 하필 농사도 딱 이맘때 시작이라, 온갖 모종을 싣고 밭으로 달려간다.
둘째 미경 씨(49)는 오줌 액비를 만들어서 온 밭을 적시고 셋째 은경 씨(46)는 집 마당에 종류대로 씨를 뿌려 모종을 낸다. 청일점이자 막내인 대권 씨(40)는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시중을 든다. 그러던 와중 복숭아 꽃을 솎던 대권 씨가 “과수원 있는 집이 제일 부러웠는데...”라며 속마음을 꺼내놓는다.
제주도에 살았던 다섯 식구에게 고향은 가난의 다른 이름이다. 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있었고 주폭에 시달리던 어머니는 밖으로 돌았다. 그러니 기댈 데가 없던 4남매. 맏이였던 애경 씨는 동생들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기로 했다.
중학생 때부터 경운기 몰고, 농기구 고쳐가며 농사를 지었고 이 악물고 공부해서 서른 넘어 세무사가 되었다. 그해 가족들을 이끌고 제주도를 빠져나와 동생들 공부를 시켰다. 그런 애경 씨를, 동생들은 왕초이자 아빠 대신이라고, ‘왕빠’라 부른다.
너무 악착같이 살아서였을까, 4년 전, 갑상샘암에 걸렸고, 나무 자르다 십자인대까지 끊어졌다. 몸이 아프니 마음까지 약해졌던 애경 씨는 옹이처럼 새겨진 상처가 떠올랐다.
애경 씨가 아홉 살 무렵, 엄마는 집을 나갔다. 가지 말라고 울면서 매달렸지만, 다음날 눈을 떠보니, 엄마는 없었다. 그때 동생 미경은 여섯 살, 은경은 세 살이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엄마가 간 곳을 대라고 손찌검을 했고 미경이 손 붙잡고, 은경이 업고, 도망을 다녀야 했다. 어머니는 1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때의 상처는 평생 애경 씨를 괴롭혔다. 애경 씨를 비롯해서 동생들까지, 마흔 넘은 4남매가 모두 미혼이다. 불행한 유년 시절 탓인지, 아무도 결혼을 꿈꿔보지 않았단다.
술 때문에 병을 얻어,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 동생들의 반대에도 애경 씨는 지금껏 지극정성 제사를 지내왔다. 올해도 온종일 기름 냄새 맡아가며 제사상을 차렸는데 동생들이 아버지를 향한 원망을 쏟아내던 그때 어머니에게 불쑥 서러움을 토해내는 애경 씨였지만, 어머니도 언성을 높이는 바람에, 폭풍 같은 밤이 지나간다.
아픈 기억을 마주하기로 다짐한 애경 씨는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도로 날아가 옛집을 둘러본다. 옥수수 키우던 마당이며, 불에 탔던 창고. 담을 넘어오던 향긋한 귤 냄새까지, 모든 게 그대로인데 그새 폭삭 늙어버린 어머니, 그 뒷모습이 새삼 짠하게 다가온다.
가족을 책임지느라 정작 본인의 인생은 없었던 왕빠. 동생들은 그 짐을 조금씩 나누고 있다. 작년 여름, 부엌살림을 이어받은 둘째, 미경 씨 우리 밭에서 나온 제철 채소로 매 끼니 차려내고, 셋째 은경 씨는 모종 열심히 키우고, 밭에선 힘쓰는 일을 도맡아준다.
4년 전, 세무사가 된 막내 대권 씨는 누나의 일을 덜어주는 든든한 후계자다. 웬만하면 ‘왕빠’의 뜻을 따라주는 순한 동생들인데 봄 농사가 얼추 마무리되던 어느 날, 동생들이 반기를 들었다. 이제는 제발 쉬엄쉬엄 가자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야말로 먹고사느라, 늘 앞만 보고 내달렸던 가족. 조급함 내려놓고, 인생을 즐겨볼까 싶어 난생처음 찜질방을 찾았다. 유행 지난 ‘양 머리’도 해보고, 얼음 식혜의 짜릿함도 맛본다. 다른 집에 가면, 벽에 떡하니 걸려있는 그 흔한 가족사진 한 장이 없던 가족은 자식처럼 키우는 강아지들까지 데리고, 가족사진을 찍어본다.
그리고 꽃다발과 함께 헌사를 전하는 동생들. 막내 대권 씨의 편지에 애경 씨 참았던 눈물을 보인다. 동생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왕빠가 행복해지는 것’. 한목소리로, “우리 집 왕빠, 제발 이기주의자로 살아줘”라며 남다른 부탁을 전한다.
한편 KBS 1TV '인간극장' 애경 씨 4남매 편은 6월 9일 오전 7시 50분에 방송된다.
뉴스엔 이하나 bliss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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