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셜리>
[최해린 기자]
'그래서 그 후보는 왜 나왔던 거지?'
큰 선거가 끝나고 나면, 군소후보들에 대한 의문이 일기 마련이다. 당선자는 언제나 거대 양당의 후보 사이에서 결정되고, 군소후보들이 선거 기간 동안 보였던 임팩트나 토론회의 모습은 순식간에 대중의 관심 밖으로 사라진다. 10% 이하의 득표율로 선거비 보전조차 받지 못하는 후보들은 도대체 왜 나오는 걸까. 질 게 뻔한 싸움에서 그들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넷플릭스 영화 <셜리 치점>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셜리 치점>은 동명의 미국 정치인 '셜리 치점'의 일대기 중에서도 1972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 경선에 참여했던 시기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공화당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재선이 기정사실화되던 때, 초선 하원의원에 불과하던 치점이 민주당 경선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그렇게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의원은 순식간에 최초의 흑인 여성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해리스 이전에 있을 '뻔'했던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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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셜리 치점> 스틸컷 |
ⓒ 넷플릭스 |
치점은 왜 대통령 경선에 나선 것일까. 1972년 당시의 미국 정치 지형은 흑인과 여성 모두에게 가혹했으며, 두 속성을 모두 지닌 치점에게는 두 배로 혹독했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그러한 현실이 치점의 출마 원인이라고 꼬집는다.
영화의 오프닝은 초선의원이 된 치점이 상임위원회 결과를 통보받는 모습인데, 브루클린 도심을 지역구로 둔 치점에게 배정된 위원회는 다름아닌 농림위원회다. 신진 정치인이 대부분 선택권을 가지지 못한다는 걸 참작하더라도, 불과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흑인들의 소작농 생활이 만연하던 미국에서 흑인 여성 의원을 농림위원회에 배정하는 건 인종차별적인 뉘앙스가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치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항의해, 참전군인관리위원회로 재배치된다. '참고 넘어갔으면' 아무런 변화도 이루어 내지 못했을 상황에서 목소리를 내기로 택했기에 작은 승리를 거둘 수 있던 것이다.
하지만 경선에 출마한 치점은 결국 있을 '뻔'했던 후보가 되는 데 그친다. 정치적 로비가 법제화된 미국에서 거대 세력의 지원 없이 시민의 후원금만으로 운영된 캠프는 심각한 자금난을 겪었고, 조지 맥거번 후보에게 패배하고 만다. 그리고 맥거번은 큰 표차로 닉슨에게 패배한다.
그렇다면 치점의 여정은 아무런 득이 없었던 것일까. 영화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한다. 치점의 출마는 베트남전 참전 등으로 정치와 외교에 대한 희망을 내려놓았던 대학생들이 경선 투표장으로 향하게 했다. 당시 치점의 캠프에서 대학생 자원봉사자로 일하던 흑인 여성 바버라 리는 25년 후, 14선에 빛나는 중량감 있는 정치인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치점의 출마는 그 자체로 미국 정치 혁신의 초석이었던 셈이다. '질 게 뻔하다'라는 이유로 출마를 포기했으면, 흑인 여성의 정계 진출은 몇십 년 더 더뎌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대선은 아주 큰 싸움의 일부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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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의적이던 대학생 바버라 리를 영입하는 셜리 치점 영화 <셜리 치점> 스틸컷 |
ⓒ 넷플릭스 |
그렇다면 경선 패배 이후 치점은 조용히 잊히는 길을 걸었을까? 역시 아니다. 영화는 경선 패배 이후 치점이 하원의원 7선에 거듭나는 정치적 커리어를 달성하면서 군사비용 감축과 복지 증진에 치중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흑인 민권 운동과 여성 인권 운동에 나섰음을 분명히 한다. 영화가 치점의 가장 잘 알려진 순간인 경선 기간에만 집중할지언정, 그가 선거 기간에만 얼굴을 비추었다가 사라지는 '반짝 후보'가 아니었다고 밝히는 것이다.
대부분 경쟁력이 부족한 군소후보들은 '이름을 알리기 위해' 출마한다고 여겨진다. 큰 규모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일종의 명예로 여기는 정치적·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물론 치점의 출마에서도 알 수 있듯, '선거판'에 얼굴을 비추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후보들이 오로지 대선 출마만을 위해 달려 왔다고 판단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투쟁을 과소평가하는 발상일지도 모른다.
재야에서 뛰어 오던 인권 운동가들에게 '대선'은 그보다 큰 싸움의 일부일 뿐이다. 셜리 치점은 평등권 강화를 위한 투쟁에 대통령 후보 경선을 이용했고, 패배했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어 미국 민주당에 선명한 자유주의 좌파 색채를 더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군소 진보정당은 더욱 선명한 노동 정책과 차별금지법 제정 등 민주당이 선뜻 건드리지 못했던 의제를 제시하며 당선되지 못할 선거에 나선다. 이들의 출마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다소 무모하다고 보일 수도 있는 투쟁의 필요성을 알리는 도구다.
비대한 정치 세력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 그리고 다시 잊혀진 시민들의 곁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군소후보들의 출마 이유가 아닐까. <셜리 치점>의 엔딩은 대선에 얼굴을 내밀었다가 '사라진' 후보들의 투쟁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관객에게 선거전 바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호소한다. 21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금, '대체 왜 출마했는지 모를' 군소·진보 후보들의 무모한 도전이 가지는 의의가 궁금하다면 넷플릭스에서 <셜리 치점>을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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