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분야 공약 관통하는 키워드 ‘포용’
벼랑 끝 자영업자 살리기에 재정 투입
금융소비자 이자 부담 낮출 제도 개편
가계부채 문제엔 “안정 관리” 원론만
금융권 “산업 경쟁력 제고 고민해야”
이재명 제21대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가계와 소상공인의 금융부담을 낮추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구 한 상가에 임대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는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이재명 제21대 대통령의 금융 분야 공약은 가계와 소상공인 부담을 완화하고 금융약자를 지원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대출 가산금리 손질과 대환대출 확대, 중도상환수수료 감면, 배드뱅크 설치, 중금리대출 전문 인터넷은행 설립 등 주요 정책 제안이 모두 ‘포용’이라는 키워드로 연결된다. 특히 정책자금 대출 관련 채무 조정이나 탕감 등 직접적인 지원을 펼치겠다는 계획까지 내놨다.
금융의 공공성 실현과 함께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공정경제를 실현하겠다는 게 이 대통령의 구상이다.
이 대통령이 4일 취임과 함께 ‘민생 회복’을 역설하고 나선 만큼 경기 침체와 고금리 등으로 벼랑 끝에 몰린 서민과 자영업자, 소상공인의 숨통을 트기 위한 정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대출’에 종합대책 마련 예고
우선 이 대통령은 재정을 투입해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채무조정·탕감에 나설 전망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빚을 제때 갚지 못할 우려가 있는 취약 자영업자 차주는 3년 새 52%가량 늘어난 43만명에 육박했다. 이들 취약 자영업자의 대출 연체율은 작년 말 11.16%로 3년 전과 비교해 2.6배 뛰었다. 직전 분기인 9월 말(11.55%)보다 소폭 줄었지만 11년 만에 최고 수준을 이어갔다.
이에 이 대통령은 코로나19 당시 대규모로 집행된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상 정책 대출과 관련해 채무조정부터 탕감까지 특단의 대책을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고 공약했다. 12·3 비상계엄으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에게도 지원을 약속했다.
저금리 대환대출과 이차보전 지원사업을 확대해 소상공인의 이자 부담을 덜고 저신용·창업·청년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정책금융 전문기관을 설립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이미 시행 중인 새출발기금의 지원 자격 완화와 대상 확대, 페널티 축소 등을 통해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은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금융사의 부실채권을 사들여 전문적으로 정리하는 배드뱅크 설치도 추진한다. 이 대통령은 장기소액연체채권 소각을 위해 한시적으로 대규모 펀드를 설치하고 소득 정도에 따라 적극적인 채권 소각을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일정한 요건을 갖춘 소상공인·자영업자도 채권 소각 대상에 포함된다.
이재명 제21대 대통령이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당 주최로 열린 국민개표방송 행사에 참석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
‘가산금리 손질’ 은행법 개정안에 힘 실어
금융소비자의 이자 부담 경감을 위한 대책도 큰 축이다. 이 대통령은 은행이 대출 가산금리를 산정할 때 법적비용을 금융소비자에게 부당하게 전가하는 것을 막아 원리금 상환 부담을 덜겠다고 밝혔다.
대출금리는 시장에서 공표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지수), 금융채 금리 등을 반영한 지표금리(기준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하고 우대금리(가감조정금리)를 빼는 방식으로 산정된다. 가산금리에는 업무원가, 법적비용, 위험프리미엄, 기대수익률 등이 포함되는데 여기서 법적비용을 제외하겠다는 것이다.
은행이 그간 법적비용이라는 명목하에 지급준비금과 예금보험료, 각종 신용보증기관 출연금 등의 비용 부담을 대출 차주에게 떠넘겨 왔다는 게 이 대통령의 주장이다. 은행법 개정은 국회의 영역이나 개정안 통과와 시장 적용에 속도가 날 수 있도록 힘을 더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가산금리 산정에서 법적비용이 빠지면 최종 대출금리가 낮아지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의 연이은 기준금리 하향 조정에도 금융소비자가 대출금리 인하 효과를 느끼지 못한 주된 이유가 은행의 높은 가산금리 책정에 있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4월 신규취급액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평균 가계대출 가산금리는 3.13%로 지난해 9월(3.09%)보다 0.04%포인트 높다. 같은 기간 금리산정의 기준이 되는 지표금리가 3.26%에서 2.76%로 0.5%포인트 내린 것과 상반된다.
이 대통령은 이와 함께 금융회사의 교육세 부담구조를 개편할 계획이다.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상 대환대출 활성화와 정책모기지·정책금융기관부터 중도상환수수료의 단계적 면제도 검토한다.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금융사고엔 엄정처벌
이 대통령은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감독범위를 확대하고 검사기능을 부여하는 등 금융소비자보호기구의 기능과 독립성을 대폭 보강하기로 했다. 또 민간 전문가 중심의 금융소비자평가위원회를 신설해 금융당국을 평가하도록 할 방침이다.
반복되는 금융사고 책임 떠넘기기에는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금융사고에 대한 엄정처벌 원칙 아래 대주주 지분매각명령권의 전 금융회사 확대 적용을 검토하고 금융 보안사고가 발생할 경우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금융기관 경영진을 대상으로 재무제표에 중대한 오류 등이 발견되면 일정 기간 보수를 환수하는 보수환수제도 도입한다.
엄격한 책무구조도 적용과 함께 고위험·고난도 투자상품의 판매한도 차등화 방안 마련을 검토하는 등 은행의 단기 실적주의를 근절할 계획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가계부채 총량의 안정적 관리 기조를 확립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진은 서울 한 은행 지점 앞에 게시된 담보대출 광고. [연합]
최대 현안인 가계부채에 대해서는 ‘가계부채 총량의 안정적 관리 기조를 확립한다’는 정도의 원론적인 입장만 밝혀왔다. 다만 이 대통령이 그간 ‘돈을 갚을 수 있는 만큼만 빌리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온 만큼 오는 7월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 등의 가계대출 규제 기조는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공적 역할 강화 움직임에 금융권 ‘긴장’
금융권은 금융의 공적 역할을 강화하는 이 대통령의 정책 방향에 공감하면서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정책 설계와 실행 과정에서 금융권이 직간접적으로 부담을 지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부실채권 매각 과정에서 일부 손실을 부담하거나 정책금융기관 출연 확대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가산금리 손질의 경우 은행의 수익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실제 증권가에서는 은행이 법적비용을 가산금리에 반영할 수 없게 되면 세전이익이 5~10% 감소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채무 탕감과 관련해 도덕적 해이가 확산하거나 금융질서가 훼손될 여지도 있다. 탕감까지 포함한 채무 조정이 반복되면 금융사로서는 회수 가능성이 낮은 대출에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고 이는 중저신용자 대상 대출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연합회는 비금융업 허용 확대와 신탁제도 개선, 해외 진출 활성화 지원 등을 골자로 하는 은행권 건의사항을 새 정부에 전달할 계획이다. 가산금리를 손보는 은행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이미 국회 쪽으로 형사처벌 조항을 삭제해달라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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