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와 '공동정부 구상' 합의한 이낙연... 수긍하기 어려운 그의 말들
[안호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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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이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대선에서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김 후보와 괴물 독재국가 출현을 막고 새로운 희망의 제7공화국을 준비하고 협력하자는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밝히고 있다. |
ⓒ 남소연 |
12.3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 전 대통령은 계엄으로 철권통치를 구가했던 전두환과 닮았다. 군부와 안기부 등 권력을 동원하여 양심세력과 야당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제5공화국은, 87년 6월 항쟁이 도화선이 되어 무너졌다. '체육관 대통령'으로 불리던 간선제 대통령 선출이 직선제로 바뀐 것이 이때부터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87년 체제인 직선제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군과 경찰을 동원해 내란을 일으켰다.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라고 적시한 비상계엄 포고령이 전두환 신군부의 포고령과 닮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제6공화국의 헌법 수호의지보다 제5공화국처럼 철권통치로 권력을 유지하고 싶은 욕망이 더 컸기 때문은 아닐까.
전두환 군부의 호헌 조치에 맞선 호헌 철폐 투쟁이 87년 6월 항쟁의 성과물이다. 노태우부터 윤석열에 이르기까지 8명의 대통령이 국민의 직접선거로 당선됐다. 그러나 38년이 지난 지금 87년 체제와 제6공화국 헌법은 낡아서 고쳐야 할 부분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선거는 직선제로 바뀌었지만 대통령의 횡포 앞에서 민주주의는 위협받는다. 선택되지 않는 권력인 검찰과 사법권력이 정치권력과 결탁하며 국민 주권을 유린해도 견제할 장치가 마땅찮다. 노동권·성평등 등 시대 변화에 맞는 가치가 헌법에 제대로 담겨 있다고 볼 수도 없다. 87년 체제와 제6공화국이 민주주의의 성과물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제 바꿀 때가 됐다. 제6공화국을 끝내고 제7공화국으로 가자는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들은 옳다.
괴물독재정권 출현을 막고 희망의 제7공화국으로? 틀렸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은 중대한 기로에 섰습니다. 어렵더라도 3년만 준비해서 새로운 제7공화국으로 넘어갈 것이냐, 아니면 한 사람이 모든 국가권력을 장악한 괴물독재국가로 추락할 것이냐의 기로입니다. 부디 괴물독재국가의 출현을 막고 희망의 제7공화국으로 함께 건너가기를 바랍니다." - 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의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찬조연설 중에서
6.3 대선에서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의 지지를 선언한 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의 찬조연설이 지난 29일 TV조선을 통해 공개됐다. 연설에서 그는 우연히 마주친 많은 사람들의 호소에 "괴물독재국가를 막을 결심을 했다"라면서 김문수 후보를 선택한 배경을 설명했다. '국민통합을 위한 공동정부를 구성해 운영하고 개헌을 매듭지어 3년 안에 제7공화국을 출범시키고 퇴진한다'라는 두 정당의 합의안 내용도 설명했다. 말미에는 6.3 대선은 '정리 단계에 있는 내란심판보다 괴물독재국가가 다가올 위기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랫동안 더불어민주당에 몸담고 문재인 정부에서 국무총리까지 역임한 과거를 들어 그의 선택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12.3 내란을 바라보는 시각은 너무 편협하고 위험하다. 개헌을 매듭 짓는 제7공화국 건설과 대통령 임기 단축 구성안도 내보였지만, 정작 새로운 제7공화국의 헌법에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하는지 고민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김문수 후보가 내놓은 임기 3년 단축 및 4년 중임제 개헌안을 그가 언어의 성찬으로 포장해 주는 모양새일 뿐인 찬조 연설은 보고 있기에 민망했다. 시작도 하지 못한 내란의 진상규명과 처벌을 두고 정리 단계라니?
"계엄은 계엄이고 내란은 내란이고 다른 거죠. 그런데 그런 것을 막 섞어서 무조건 상대를 내란범이다, 또 내란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도 내란 공범이다, 동조자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정말 심각한 언어폭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제21대 대통령선거 제3차 후보자토론회 김문수 후보 발언 중 일부
계엄은 전쟁 같은 큰 위험으로부터 대통령이 국민과 국가의 안전을 위해 취할 수 있는 법적 조치다. 그래서 계엄의 구성요건은 엄격하다. 12.3 비상계엄이' 내란'으로 불리는 이유는 법에서 정한 계엄의 구성 요건을 어느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회에 군인들을 들여보냈고, 국무회의 심의도 거치지 않았다. 모든 국민이 지켜본 불법 계엄임에도, 아직 법의 판단이 나지 않았으니 '내란'으로 불러서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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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이낙연의 선택... 야합일까, 결단일까?
내란의 규명과 처벌은 정리 단계에 있는 게 아니라 제대로 시작도 안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판이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다. 대통령의 파면은 처벌이 아니라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다는 헌법적 판단일 뿐이다. 동원된 군인들의 죄도 규명되지 않았고,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12.3 내란이 정리 단계라는 이낙연 상임고문, '동조자'니 '내란공범'이니 하는 말은 '언어폭력'이라는 김문수 후보. 그들이 말하는 희망의 제7공화국 건설 공약은 모래 위에 성을 쌓자는 흰소리나 다름없다.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괴물독재국가'로 이어진다는 주장도 동의할 수 없지만, 12.3 내란에 대한 심판보다 이재명 후보의 당선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은 더더욱 수긍하기 어렵다.
개헌을 거쳐 제7공화국으로 가야 하는 건 역사적 필연이다. 그러나 12.3 내란을 척결하지 못하고 제7공화국으로 가자는 건 희망의 약속이 아니라 정치 야합이다. 6.3 조기 대선은 12.3 내란으로 생겨난 선거다. 진보 보수의 대결이 아니라 내란 세력 척결의 시작을 알려야 하는 선거다.
그러므로 괴물독재국가의 출현을 막고 희망의 제7공화국으로 가자는 게 아니라, 내란 세력을 척결하고 희망의 제7공화국으로 가자고 해야 맞다. 개헌을 거쳐 희망의 제7공화국으로 가겠다는 새미래민주당과 국민의힘의 공동정부 구상. 야합인지 결단인지는 6월 3일 대선 결과가 말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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