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 프리즘]
“서울 시급 1만3000원, 지방은 7000원?”
‘1만원’ 돌파한 최저임금… 지역별 적용, 가능할까
OECD 절반 이상 차등제 도입… 한국엔 실효성 의문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에 있는 이준석 개혁신당 대통령 후보 캠프 건물에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스1
지방이 스스로 최저임금을 정하는 시대가 올까.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가 정한 기준 최저임금을 ±30% 범위 내에서 자율 조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예를 들어 서울 등 대도시는 기준보다 높은 시급을, 지방은 생활비 수준에 따라 낮은 시급을 알아서 정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핵심은 ‘임금 차등’ 자체가 아니라, 중앙정부가 독점해 온 경제정책 결정권을 지방정부로 이양해 지자체 간 정책 경쟁을 가능케 하자는 지방 분권 구상에 있다. 최저임금뿐 아니라 법인세율, 규제 조건까지 각 지자체가 설정할 수 있게 되면, 지방이 스스로 경쟁력을 갖춘 경제 단위로 재편될 수 있다는 게 이 후보의 생각이다.
올해 법정 최저임금은 시급 1만30원이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일부 지역은 시급이 7000~8000원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
경영계는 현행 제도가 지역·업종·기업 규모의 차이를 반영하지 못해 영세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의 고용 여력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 공약이 오히려 지역 간 격차를 심화시키고, 지방 인구 유출을 가속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서울의 한 식당에서 소상공인이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 /뉴스1
◇ “최저임금 상승에 소상공인 ‘눈물’” vs “수도권 인구 쏠림”
28일 개혁신당에 따르면 이 후보는 지역 간 생활비와 인건비 격차를 반영해,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급 1만30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1만원’을 돌파했다. 2018년부터 5년간 최저임금은 42% 넘게 상승했다.
이로 인해 직원을 쓰기 어려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직접 장시간 노동에 나서거나 아예 인력을 줄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 편의점, 간이음식점, 택시업계 등에서는 “주휴수당 포함 실질 시급은 1만2000원을 넘는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300인 미만 사업장 중 60% 이상이 ‘최저임금 동결’을 요구하고 있다. 경영계는 생활비와 인건비 수준이 지역별로 큰데도 동일 임금을 적용하는 것이 오히려 고용 축소를 불러온다고 주장한다.
반면 지방 최저임금을 낮추는 것이 지방 소멸을 가속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저임금 기준을 적용해 시급이 7000원대로 낮아질 경우, 월 209시간을 일해도 월 소득은 약 146만원에 그친다. 이는 정부가 정한 1인 가구 기준 최저생계비(143만원)와 큰 차이가 없다.
이 공약이 시행되면 동일 노동에 대한 보상이 지역별로 달라지는 구조가 제도화되며, 임금이 높은 지역으로 노동자 이동이 가속화될 수 있다. 일자리를 따라 서울·수도권으로의 ‘인구 쏠림’이 심해지면서, 지방은 더 빠르게 공동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또한 지방정부가 ‘기업 유치’ 명분으로 지나치게 낮은 임금을 설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결과 저임금 지역이 오히려 ‘낙인효과’를 불러와 인력난과 소비 위축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서비스연맹) 주최로 열린 '같이 살자! 최저임금! 오픈마이크'에서 최저임금 차등적용 관련 설문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 해외도 차등제 운영… “韓 제도적 여건 달라”
이 후보는 최근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어딜 가나 법인세, 임금 조건이 같으면 누가 지방으로 가겠나”라며 “미국은 연방제라 주마다 세금이 다르고, 일론 머스크가 ‘스페이스X’ 같은 핵심 기업을 캘리포니아에서 텍사스로 옮긴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이 후보는 단체장에게 자율권을 주되, 그만큼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도 따르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후보는 “멍청한 단체장이 포퓰리즘으로 최저임금을 30% 올려 시급을 1만3000원으로 설정하면, 일자리는 사라지고 (지역은) 망할 수 있다. 그래서 정당들도 인재를 영입하게 되고, 유권자는 단체장의 실적을 보고 투표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다만 실제 기업 유치가 가능할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수도권의 기업들이 지방으로 이전을 결정할 때는 단순한 인건비 외에도 교통·물류 인프라, 인력 수급, 시장 접근성 등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이다. 한 지방정부 관계자는 “시급이 1000원 싸다고 본사를 옮길 기업은 많지 않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임금보다 전반적 사업 여건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선진국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6개국 중 17개국은 지역·업종·연령별로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각각 최저임금을 설정하고, 일본은 도도부현별로 차등화된 시급을 적용한다. 독일, 스위스, 멕시코 등도 지역 또는 업종에 따라 임금을 다르게 책정한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중앙집권적 단일국가라는 점에서 지역별 최저임금 차등적용이 제도 설계상 복잡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수도권과 지방이 일일생활권으로 묶여 있고, 생활비 격차가 크지 않다는 점에서 정책 실효성도 낮다고 보는 시각이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한국은 수도권과 지방이 사실상 일일생활권으로 묶여 있어,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하는 건 제도 설계상 타당성이 떨어진다”며 “지방 정부의 자율성도 낮은 상황에서 기업 입장에서도 낮은 임금이 오히려 인재 유치에 걸림돌이 될 수 있고, ‘저임금 지역’이라는 낙인이 기업 운영에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후보의 공약은 ‘현 제도 내 실현 가능성’을 따지기보다는, 지방정부에 자율권을 새로 부여하자는 지방 분권형 구조 개편 제안에 가깝다. 이 후보는 “지방 자치를 강화해 오히려 지방에 법인 세율·최저임금을 정하는 권한을 주면 자연스러운 경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영록 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전국에 똑같은 임금을 적용하는 건 지역별 생활비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며 “제조업 투자 등 지역 여건이 함께 개선될 경우, 기업 유치와 지역 일자리 창출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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