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부터, 서울시뮤지컬단 ‘더 퍼스트 그레잇 쇼’
좌충우돌 뮤지컬 탄생기…뮤지컬에 대한 헌사 담아
뮤지컬 ‘더 퍼스트 그레잇 쇼’의 김동연 연출가, 김덕희 예술감독, 박해림 작가, 최종윤 작곡가(왼쪽부터). [세종문화회관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뮤지컬 배우 김선영이 출연한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 스타’. “뮤지컬 배우들을 묘사할 때 직업적으로 장황하게 표현하다 보니 오해를 많이 받는다”는 그의 이야기에 당시 MC였던 코미디언 안영미가 직접 시범을 보인다. 약간의 과장을 더한 뮤지컬 한 대목의 흉내. 허공을 향해 긴 팔을 쭉 뻗더니 과장된 표정과 목소리로 “이봐요, 물 좀 주세요”라며 멜로디를 실은 대사를 던지더니, 난데없이 ‘급발진’. 이유 없이 감정이 고조되더니 무릎을 꿇고 고음을 내지른다.
“‘왜 대화를 하다 갑자기 노래해? 왜 갑자기 해피엔딩이지? 이게 말이 돼?’ 싶은 요소들 있잖아요? 뮤지컬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 결국 관객 모두에게 뮤지컬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노래마다 숨어있어요.”
1960년대 국가는 ‘북한의 피바다 가극단을 능가하는 공연을 만들라’는 명령을 내린다. 중앙정보부 문화예술혁명분과에 하달된 명령에 거장 연출가와 동명이인인 ‘초짜’ 연출가는 오페라 가수, 무당, 수장구, 트로트 가수를 섭외한다. ‘완전히 새롭고 한 번도 알려진 적 없는 대단한 ’썽띵 뉴 코리안 쇼‘’를 만들기 위해서다. 서울시뮤지컬단의 ‘더 그레잇 퍼스트 쇼’는 장황하고 거창한 제목만큼이나 황당무계한 일들이 끊이지 않는 ‘뮤지컬 탄생기’를 무대에 올린다.
김덕희 서울시뮤지컬단 단장은 “이 작품은 뮤지컬에 대한 뮤지컬”이라며 “64년의 역사를 가진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뮤지컬 단체인 서울시뮤지컬단의 정체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소재로 개발한 작품”이라고 했다.
국내 뮤지컬 사의 첫 장을 이끈 서울시뮤지컬단은 이 작품을 위해 3년의 개발 기간을 거쳤다. 2023년 창작개발에 돌입해 2024년 낭독공연으로 가능성을 살폈고, 오는 29일 본 공연을 올리게 됐다.
극작을 맡은 박해림 작가는 “나라에서 위대한 예술 같은 것을 만들라 해서 어딘가에서 아웃사이더였던 사람들이 모여 좌충우돌하며 무대의 순간들을 만들어낸다”며 “바로 그 위대한 순간을 만들었다는 의미를 담고자 했다. 다양한 캐릭터의 성장담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더 퍼스트 그레잇 쇼’는 국내 최초의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를 모티브로 삼았다. 실제로 처음 뮤지컬을 만들던 사람들의 다양한 에피소드가 어우러졌다. 핀 마이크가 없어 마이크를 묶어두고 무대에 섰던 오래전 시절의 에피소드 역시 뮤지컬이 ‘위대한 쇼’가 되는 과정에서 등장해야 할 필수요소다. 뮤지컬의 본질과 의미를 돌아보는 ‘메타 뮤지컬’인 만큼 창작진은 이 작품을 올리며 뮤지컬이 각자에게 갖는 의미를 돌아봤다.
최종윤 작곡가는 “난 어떻게 뮤지컬을 시작했고, 어떻게 배워왔는지를 돌아보고, 뮤지컬을 처음으로 시작한 사람들은 어떻게 이러한 기법과 양식을 배워왔을까 고민하고 질문했다”며 “특히 그 시대 사람들에게 생소할 수밖에 없는 호흡에 대한 설득 역시 담겨있다”고 말했다.
극 중 넘버 ‘그게 바로 뮤지컬이니까요’에선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형식을 설명한다. 대사와 노래를 통해 뮤지컬의 특징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동시에 이 장르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다.
김 단장은 “예술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지만, 거울 속에 있는 환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장르마다 할 수 있는 역할이 다르다”며 뮤지컬이 갖는 특성 중 하나는 가벼운 오락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해피엔딩을 향하는 뮤지컬은 판타지이면서 행복감을 주는 장르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극에선 ‘현실도 괴로운데 공연까지 보러와서 힘들어야 돼?’, ‘뮤지컬은 이 팍팍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대사를 통해 뮤지컬이 가진 힘과 가치를 이야기한다. 뮤지컬이 ‘어른들의 동화’로 불리는 이유 역시 ‘탄생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더 퍼스트 그레잇 쇼’ [세종문화회관 제공]
연출을 맡은 김동연은 “지금 우리는 뮤지컬의 폭발적 성장의 혜택을 받은 세대”라며 “공연계의 메인이 뮤지컬이고, 티켓 매출도 가장 높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 뮤지컬 역시 지난한 과정의 역사를 지나왔다”고 말했다.
연극 연출을 전공한 그는 대학 재학 당시를 떠올리며 “20여년 전만 해도 뮤지컬은 예술의 한 장르로서 인정받지 못했지만, 지난 긴 시간은 뮤지컬이라는 언어를 우리 사회 전체가 배우는 과정이었다”며 “처음엔 어색했던 뮤지컬 장르가 친숙하게 와닿으며 감동적인 순간이 되는 과정도 담아보려 했다”고 말했다.
‘뮤지컬에 대한 헌사’를 담은 무대인 만큼 ‘더 퍼스트 그레잇 쇼’에는 기존 인기 뮤지컬 안에 담겼던 100여개의 넘버가 ‘숨은그림찾기’처럼 속속 들어있다. 명곡들에서 영감을 받은 테마 10개가 30초 동안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창작진은 “뮤지컬 마니아라면 찾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최종윤 작곡가는 “뮤지컬 장르가 축적해 온 유산을 바라보며 감사했다”며 “저 역시 그 일부로서 선배들에 대한 존경을 담았다”고 말했다. 컨트리, 록, 디스코, 포크. 팝 등 다양한 장르가 무대 위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전망이다.
엄혹했던 시절의 이야기지만, 시대적 배경은 ‘코미디 요소’로 작동한다. 김동연 연출가는 “여러 배경의 요소들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거나 고민하게 하는 작품은 아니다”라면서 “관객들이 거부감 없이 즐기게 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고 말했다.
‘더 퍼스트 그레잇 쇼’는 공공단체인 서울시뮤지컬단이 민간 제작사가 하지 못하는 체계적 창작 환경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시작한 장기 프로젝트가 첫 결실을 맺은 작품이다. 사실 적은 예산으로 무대를 꾸리는 공공 단체가 수백억 원의 제작비, 초호화 창작진과 배우들이 투입되는 뮤지컬과 경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김 단장은 “단원들이 중심이 된 뮤지컬을 올리되 국공립 단체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며 “이 작품을 통해 공공 뮤지컬 단체가 미약할지라도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새로운 관객을 개발하고 새로운 소재에 도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시뮤지컬단의 역사와 브랜딩 쇼 뮤지컬이라는 형식으로 어우러져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며 의의를 부여했다.
뮤지컬은 서울시뮤지컬단 단원들과 뮤지컬 배우 이창용, 조형균이 캐스팅돼 한 무대를 꾸민다. 공연은 29일부터 6월 15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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