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경제
이재명, AI 국민펀드 조성 등 ‘확장 재정’ 기반…김문수, 노동 규제 완화·법인세 인하 ‘보수 정책 계승’
이준석, 외국인 노동자 최저임금 차등 등 감세…권영국, 세율 상향·신설 등 유일하게 ‘증세’ 공약
성장 최우선으로 내세우지만 구체성 떨어져…“성장이 복지 약화로 가선 안 돼” 윤 정부 전철 우려
6·3 대통령 선거의 주요 후보들은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육성을 통한 경제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점은 같았지만 방법론에선 달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재정을 풀어 신성장동력을 확보하는 확장적 재정 정책을 강조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규제 철폐와 감세를 통한 경제성장에 방점을 찍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작은 정부’를,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증세를 통한 불평등 해소’를 내걸었다.
권 후보를 제외한 주요 후보들의 공약은 모두 세수 감소를 어떻게 메우고, 지출 구조조정을 어디서 할지 등 구체적인 계획은 부족했다.
이재명 후보는 1호 공약으로 AI 산업 육성과 자신의 핵심 공약인 기본사회를 결합해 “AI 산업에 100조원을 투자해 AI 기본사회를 열겠다”고 내세웠다. 한국형 챗GPT인 ‘모두의 AI’를 만들어 모든 국민이 선진국 수준의 AI를 무료로 활용하게끔 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AI 육성을 위해 100조원 중 일부는 ‘첨단산업 국민펀드’를 조성해 마련하기로 했다. 국민·기업·정부·국민연금이 참여하는 50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고, 이를 국내 첨단전략산업 기업이 발행하는 주식이나 채권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국민 투자금에 과감한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이른바 한국판 엔비디아(K엔비디아) 국민주 투자 구상이다.
이 후보는 꺼져가는 성장엔진을 재점화하기 위해서는 확장 재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가 재정이 마중물이 되어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되살리겠다”며 “AI나 딥테크 같은 첨단산업과 미래기술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례로 이 후보는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개를 확보해 AI 연구의 물꼬를 트겠다고 약속했다. 정부가 올해 추가경정예산 1조5000억원을 통해 확보하기로 한 1만개의 5배다.
이 후보는 ‘주가지수 5000 시대 개막’도 내걸었다. 주가 조작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고,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와 집중투표제 도입으로 소액주주를 보호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후보는 그러나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을 언급하지 않았다. 일례로 벤처투자업계에서는 ‘AI 100조원 투자’ 등 공약의 실현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대표적 정부 출자사업인 모태펀드가 지난 20년 동안 민간과 함께 조성해온 누적 금액이 약 44조원에 그치기 때문이다.
손종필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 후보 공약 중에는 재원 마련 방안이 없거나 두루뭉술한 공약들이 많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규제 철폐와 감세를 통해 기업 부담을 줄여 경제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자유 주도 성장’을 1호 공약으로 내세웠다.
규제혁신처 신설과 노동 규제 완화를 공약했다. 고소득 전문직 노동자에게는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를 추진한다. ‘메가프리존’을 도입해 최저임금제나 노동시간 규제 등의 특례 적용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부여한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했던 감세 정책도 확대한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4%에서 21%로,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에서 30%로 인하한다. 소득세 물가연동제도 추진한다. 김 후보의 자유 주도 성장론은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 박근혜 정부의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겠다) 등 전통적인 보수정당 정책과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줄어든 세수를 어디에서 메울 것인가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차기 정부는 이미 5년간 100조원의 세수 부족을 떠안고 시작한다. 여기에 더해 김 후보 감세 공약은 추가로 100조원 넘는 세수 공백을 초래한다.
김 후보는 대규모 국가 재정이 드는 사업도 공약했다. 김 후보는 이 후보와 마찬가지로 ‘AI 100조원 펀드’를 공약했다. 임기 내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확장도 약속했다. GTX D·E·F 노선 착공에만 국비 30조원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손 연구위원은 “김 후보가 수십조원 규모의 감세안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대규모 재정이 드는 투자사업, GTX 등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허무맹랑하다”고 지적했다.
이준석 후보도 경제성장을 위한 규제 철폐와 감세를 약속했다. 국무총리 산하 규제심판원을 신설해 신청부터 특례 부여까지 원스톱 규제 완화를 공약했다.
또 외국에서 국내로 돌아온 리쇼어링 기업에는 10년간 외국인 노동자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허용하겠다고 했다. 글로벌 디지털 자산 유치를 위한 ‘데이터 특구’를 도입해 입주 기업에 법인세 감면 등 혜택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권영국 후보는 증세를 통한 불평등 해소를 1호 공약으로 제시했다. 상속증여세·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을 높이고, 부유세를 신설해 무상돌봄·무상간병·전 국민 4대 보험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저임금·불안정 노동을 철폐하고 국가책임 일자리 보장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주요 대선 후보들이 경제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지만 이를 실현할 방법이 단순히 ‘감세’와 ‘규제 완화’로 귀결되는 건 한계다. 당장 인구 고령화 등으로 복지에 들어갈 재정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재명·김문수 후보 모두 어떤 부분에서 지출 구조조정을 해 세수를 메우겠다는 구체성이 떨어진다. 결국 대부분 공약을 이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도 대대적인 감세를 통한 경제성장을 추진했지만 올해 1분기 경제가 역성장하면서 실패했다.
감세는 대기업·고소득층에 유리하기에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규제 완화는 환경 파괴, 불공정 경쟁 등을 불러올 수도 있다. 특히 김 후보와 이준석 후보의 ‘주 52시간제 예외’ ‘최저임금 차등 적용’ 규제 완화는 노동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25일 “각국의 첨단산업 유치 경쟁이 치열한 만큼 AI 산업이나 재생에너지 전환에 대한 국가 투자는 필요하지만, 복지를 줄이거나 분배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가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특히 대책 없이 감세 정책을 추진하다가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 실패를 되풀이할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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