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주제로 이뤄진 첫 대선후보 토론
기후 정책 사라지고 “가짜뉴스·소모적 논쟁”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오른쪽)가 지난 2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방송(K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에 앞서 준비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처음으로 ‘기후’ 주제를 특정한 후보간 토론이 이뤄졌지만, 정작 온실가스 배출을 얼마나 줄일 것이냐 등 핵심적인 기후 정책에 대한 핵심 논의는 사라지고 “가짜뉴스와 소모적 논쟁으로 퇴색”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23일, 이재명(더불어민주당)·김문수(국민의힘)·이준석(개혁신당)·권영국(민주노동당) 네 명의 21대 대선후보가 참여한 2차 티브이(TV) 토론회는 마지막 주제를 ‘기후위기 대응 방안’에 할애했다. 후보들은 1분30초씩 들여 자신의 기후 관련 공약을 발표한 뒤, 서로를 지목하여 6분30초씩 주도권 토론을 벌였다.
■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일언반구도 없어
그러나 총 32분 동안 펼쳐진 이날 ‘기후 토론’에서 어떤 후보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인위적인 온실가스 배출은 지구 온도를 상승시키는 오늘날 기후위기의 핵심 원인으로, 국제사회는 지구 온도의 1.5도 상승을 막기 위한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5년 단위로 제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각 나라 정부는 올해 9월까지 2035년 감축목표를 유엔(UN)에 제출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2030년 감축목표를 ‘2018년 대비 40% 감축’으로 제출했는데, 2023년까지 고작 14% 줄이는 등 실적도 부실하다.
이날 토론회 내내 ‘온실가스’라는 말 자체를 입에 담은 후보는 권영국 후보가 유일했다. 권 후보는 공약 발표 시간에 “기후위기는 온실가스 43%를 배출하는 10대 대기업과 부유층으로부터 발생”하는데 “피해는 가난한 서민과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된다며, “온실가스를 대량배출하는 기업과 부유층에게 ‘기후정의세’를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이밖에는 김문수 후보가 “온실가스를 가장 적게 배출하는 에너지가 바로 원자력 발전”이라며 원전을 비호하는 과정에 ‘온실가스’를 입에 올렸을 뿐이다. 애초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관련 내용을 공약에 담은 후보가 이재명, 권영국 두 명뿐이다. 권 후보는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2018년 대비 70%로 상향”을, 이 후보는 “선진국 책임에 걸맞은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수립”을 약속한 바 있다.
주제가 ‘기후위기 대응 방안’인데, 공약 발표 뒤 주도권 토론에 들어선 뒤엔 아예 ‘기후’라는 말조차 사라졌다. 토론 말미 권영국 후보가 이준석 후보를 지목해 “공약집에 기후 공약이 없다. (…) 청년 대표한다면서 미래세대가 가장 관심을 갖는 기후 공약을 단 하나도 제시하지 않”은 이유를 질문할 때에야 ‘기후’란 말이 다시 등장했다.
23일 저녁 서울 영등포구 한국방송(KBS) 본관 스튜디오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1대 대통령선거 2차 후보자토론회 시작에 앞서 후보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김문수 국민의힘, 권영국 민주노동당, 이준석 개혁신당 대통령 후보. 국회사진기자단
■ “가짜뉴스 유포, 기후·생태 위기 악화 주장” 지적
대신 토론을 채운 것은,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주장과 소모적인 논쟁이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두고 열띤 논쟁이 벌어지긴 했지만, ‘기후 정책’이 아닌 ‘산업 정책’에 더 가까워 경제 분야를 주제로 벌였던 지난 1차 토론회에서 더 나아간 논의가 없었다. 일부 후보들은 아예 이른바 ‘가짜뉴스’에 가까운 주장들을 내놓기도 했다.
김문수 후보가 원전이 안전하다며 “(일본) 후쿠시마(사고)는 폭발한 게 아니”라고 한 주장이 대표적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쓰나미가 발생해 발전소 전력 공급이 끊겼고, 이에 따라 노심용융(1~3호기)과 수소폭발(1·3·4호기)이 일어났다. 김 후보는 1차 토론회 때에도 “나가사키·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자폭탄 떨어져도 (원전에는) 파괴·고장 없다”는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또 김 후보는 “(재생에너지 100% 전력을 쓰겠다는 국제 캠페인인) ‘알이(RE)100’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글로벌 기후총회에서도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원전을 3배 늘리자며 30개국 이상이 동참했다”고도 주장했다. 토론 뒤 국민의힘 쪽은 “알이100은 한물 간 구호”라며 “현재 세계는 알이100을 넘어,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모든 에너지원(CFE)을 포함한 현실적 탄소중립 전략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논평도 냈다. 그러나 알이100은 지난해 기준으로 애플, 구글 등 글로벌 대기업들을 포함해 전세계 420여개 기업들이 참여해 50% 이상의 이행률을 보이고 있다. 김 후보가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 이른바 ‘무탄소 이니셔티브’는 2023년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기후총회(COP28)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이때 가장 주목받았던 이벤트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을 3배로 늘린다는 ‘글로벌 재생에너지 및 에너지 효율 서약’이다. 당시 우리나라를 포함해 123개국이 여기에 합의했다.
이준석 후보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중국과 연관짓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데 집중했는데, 이 과정에서 “중국발 미세먼지가 (…) 일본에 미치는 영향력은 2% 정도”라는 말을 했다. 이 후보가 인용한 한·중·일 공동연구(2019년 발표)는, “2017년 연평균 기준으로 중국 배출원에 대한 우리나라 3개 도시에 대한 평균 영향은 32%, 일본에 대한 영향은 25%로 나타났다”고 밝히고 있다. 이 연구에서 2%는 “일본 배출원의 우리나라에 대한 영향” 수치로 나온다.
이번 기후 토론회에 대해 환경운동연합은 24일 논평을 내고 “기후위기·생태위기 극복과 에너지 전환을 위한 구체적이고 건설적인 제안과 토론은 부실했다. 오히려 노골적인 가짜뉴스 유포와 기후·생태 위기를 악화시킬 우려스러운 주장이 난무하는 장이 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특히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정책, 화석연료 퇴출 정책,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 제시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관련 공약이 없는 김문수, 이준석 후보뿐 아니라 각각 2040년과 2035년 ‘탈석탄’ 공약을 낸 이재명, 권영국 후보도 이에 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며 시민들을 설득하는 작업에 소홀했다”고 평가했다. “생태계 복원과 탄소흡수원에 대한 논의가 빠진 점 역시 매우 유감스럽다”고도 지적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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