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볶행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미국이 왜 미국이 된 줄 알아?”(9기 옥순)
“아니 잘 모르는데...”(남자 4호)
“아메리카, 아메이리카하잖아. 당시 청나라 사람들은 이를 듣고 비슷한 중국어 발음인 ‘메이궈’(美國)라고 표기하였고, 당시 조선인들은 이를 한국어식 한자음으로 읽어 ‘미국’(美國)으로 읽고 표기했어.”(9기 옥순)
“와, 신기하네. 그런 게 있었어. 옥순은 어디서 알았어. 재밌네.”(남자 4호)
만약 23일 방송된 SBS Plus와 ENA의 ‘지지고 볶는 여행’에서 9기 옥순과 남자 4호의 대화가 이렇게 이어졌다면 프라하의 마지막 밤은 로맨틱하게 마무리됐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남자 4호는 “나도 음차 잘 안다”며 9기 옥순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러자 9기 옥순은 갑자기 변해버렸다. 이어 “내가 얘기하는 게 그렇게 재미 없어?” “자기는 모르면서 왜 듣지 않지?”라면서 저녁을 함께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남자 4호는 “이게 그 정도까지 기분이 나쁠 일인가”라고 말했지만, 이미 늦었다. 결국 남자 4호가 사과했지만 타이밍을 놓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
남자 4호는 장점이 많다. 그러나 여성에게 건드리지 말아야 될 게 있다. 그것을 건드리면 관계의 회복이 힘들다. 4호는 그것에 무감각하다. 그것이 남자 4호가 장점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언쟁이 도르마무처럼 반복될 수밖에 없다.
9기 옥순이 가장 좋아할 때가 문화와 역사를 이야기할 때다. 그 순간은 반짝반짝한다. 9기 옥순이 하이킹 가이드와 얘기를 나눌 때, 남자 4호는 “역사 선생님이네” 라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상대가 특히 좋아할 때는 재미가 덜해도 잘 들어주고, 리액션을 해주면 관계가 쉽게 틀어지지 않는다. 이는 남자 4호가 다른 여성을 만날 때에도 새겨들어할 사안이다. ‘지볶행’만으로 판단하면 남자 4호는 그 부분에 관한 한 둔감하다. 상대의 그런 부분을 파악하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9기 옥순도 상대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 가급적 줄여야 한다. 새로운 장소마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거나, 너무 유식한 척(?) 대화하려 해서는 안된다. 그러다 상대가 잘 듣지 않거나 리액션이 없다고 판단되면 혼자 서운하다면서 돌변하는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게 자신도 조심해야 한다.
‘지볶행’에 출연한 세 커플이 싸우다 정들어 연애하기는 힘들 것 같다. ‘지지고 볶는 여행’이 ‘지지고 깨 볶는 여행’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지볶행’의 교훈은 서로 다른 이성을 만날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다소 막장스럽고 반복적인 갈등과 싸움도 100% 리얼이기 때문에, 시청자 입장에서도 뭐가 잘못된 것인지를 볼 수 있다.
한편, 이날 9기 옥순과 남자 4호는 ‘커플룩’ 스타일로 차려입고 야식을 먹으러 갔다. 두 사람은 네포무크의 동판 앞에서 사진을 찍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후 선상 레스토랑에 도착한 이들은 무려 15분간 메뉴판을 공부(?)한 뒤, 스테이크와 와인 등을 주문해 건배를 했다.
화기애애한 식사 중, 9기 옥순은 “여기 너무 낭만적이다. 근데 ‘낭만’이란 단어가 중국어인 거 알아?”라며 자신이 아는 얘기를 꺼냈다. 그러자 남자 4호는 “‘음차’를 중국어라고 하면 안 되지”라고 반박했고, 9기 옥순은 “미국이 왜 미국이 된 줄 알아? 라고 다시 설명해주려 했는데, 남자 4호는 “저도 음차 잘 안다”며 9기 옥순의 말을 끊었다.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었고, 9기 옥순은 “내가 뭐 설명하고 알려주는 건 재미가 없어? 설명은 본인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라며 급발진했다.
남자 4호는 “흥미 있는 건 영역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지. 그렇다고 내가 (네 말을) 안 듣지는 않잖아”라고 맞섰는데, 9기 옥순은 “또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프레임을 씌워 버리는구만”이라며 남자 4호가 과거 ‘나솔사계’ 방송에서 자신을 ‘싸움닭’으로 오해받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남자 4호는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난 앞으로 너한테 아무 말도 못해”라고 당황스러워했고, 이에 더 서운해진 9기 옥순은 “하지 마! 안 해도 돼”라며 입을 닫았다.
냉기류가 두 사람을 감싼 가운데, 메인 요리가 나왔다. 하지만 9기 옥순은 식사도 거부한 채 자신이 불쾌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그는 “솔직히 내일 이후에는 볼 일이 없는데 굳이 이런 얘기를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해”라고 시니컬한 표정을 지었다.
남자 4호는 9기 옥순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계속 말을 걸었지만, 9기 옥순은 “화날 이유도 없다. 나한테는 이 대화가 무의미하다”라며 남자 4호를 외면했다. 그렇지만 9기 옥순은 끝내 참았던 눈물을 쏟았고, 남자 4호는 “이게 그 정도까지 기분이 나쁠 일인가”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고가는 언쟁 속 논점은 사라지고 감정싸움만 남은 가운데, 남자 4호는 “충분히 더 재밌게 못 들어줘서 미안하다. 이 얘기는 꼭 하고 싶었다”며 먼저 사과했다. 9기 옥순은 “내 말을 잘 안 들어 기분이 나빴던 건데”라며 마음을 풀었고, 남자 4호에게 화해의 빵을 건넸다.
그러면서도 9기 옥순은 앞서 하이킹 가이드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얘기를 나눌 때, 남자 4호가 “역사 선생님이네”라고 비꼬았던 말을 언급하면서 섭섭함을 토로했다.
남자 4호는 “내가 공감 능력이 부족했던 거 같다”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러자 9기 옥순은 “그건 내가 제일 부족해”라며 ‘급 자아성찰’을 했고, 이후 두 사람은 긴 시간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식사를 평화롭게 마무리했다.
비슷한 시각, 22기 영수-영숙도 맞은 편 레스토랑에서 차가운 분위기 속 저녁 식사를 했다 각자 주문한 음식을 말없이 먹던 두 사람은 여행 마지막 날인 다음 날 스케줄을 두고 또 다시 대립각을 세웠다.
22기 영숙이 “내일 특별히 찾아 놓은 레스토랑은 없는 거지?”라고 물었는데, 22기 영수가 “한식당 있다”라고 하자, 22기 영숙이 “몇시간 뒤면 한식 먹을 건데 마지막 날에 한식당을 넣었다고?”라며 발끈한 것. (여기서 안타까운 건 22기 영숙이 직접 한식당이 아닌 다른 레스토랑을 찾아 상대 동의하에 예약을 하면 되는데, 꼭 지시한 대로 안된 것에 대한 문제를 찾아 22기 영수에게 훈계하듯이 따진다는 점이다.)
22기 영수는 그런 22기 영숙의 태도에 기분이 상해 고개를 획 돌렸다. 직후, 그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오늘 밥 먹을 때 체할 거 같은 순간이 몇 번 있었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라고 섭섭함을 토로했다.
식당에서 나온 22기 영수는 22기 영숙이 그토록 먹고 싶어 한 슈니첼을 사기 위해 홀로 식당을 찾아갔다. 그러나 이미 주방이 마감돼, 그는 빈손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슈니첼 획득에 실패한 22기 영숙은 냉장고에 있는 설렁탕 국물에 김치, 햄, 고춧가루를 대량 투하해 김치찌개를 만들었고,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22기 영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영숙표’ 김치찌개를 열심히 먹었다.
기분이 풀린 22기 영숙은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내일 구시가지 구경을 하고 싶다. 또 못 가본 식당 중에 아쉬운 곳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22기 영수가 계속 가보고 싶어 했던 ‘존 레논 벽’도 가자고 먼저 제안해 22기 영수의 마음을 풀어줬다.
직후 공개된 예고편에는 남자 4호가 자신을 (메신저에서) 차단했던 9기 옥순에게서 걸려온 듯 한 전화를 받지 않는가 하면, 9기 옥순 역시 프라하 공항에서 남자 4호에게 “따로 가자”고 하면서 자신의 캐리어를 낚아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계속된 ‘도르마무’ 갈등을 예감케 했다.
9기 옥순-남자 4호, 22기 영수-영숙의 프라하 여행의 결말은 30일(금) 밤 8시 40분 SBS Plus와 ENA의 ‘지지고 볶는 여행’에서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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