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하는 숏폼 중독
영유아 노출 경고등
아이를 양육하는 가정에서는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연령층에서 숏폼 콘텐츠 굴레에 빠진 ‘숏폼 중독’ 현상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숏폼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중독이 뇌에 미치는 영향은 성인보다 아이들에게 훨씬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발표한 ‘어린이 미디어 이용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어린이의 하루 평균 미디어 이용 시간은 3시간 6분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기준의 약 3배에 달하는 수준입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세계보건기구가 과학적 연구에 근거해 만 2~4세 유아의 미디어 이용을 1시간 이내로 제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내 어린이의 미디어 이용의 적정성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뇌의 전두엽 부위는 뇌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발달하는 부위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부위는 사춘기 시기에 완성이 되는데 그 전까지는 마치 말랑말랑한 찰흙 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도달하기 전에 숏폼 등에 중독돼 과의존에 빠질 경우, 전두엽이 제대로 성숙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우려입니다.
아이들의 숏폼 중독 문제는 매년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정말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주 <더인플루언서>에서는 어린이들의 숏폼 중독 현상과 이에 대한 문제 의식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스마트폰 손에서 떼지 못하는 아이들
어린이 미디어 이용실태 인포그래픽. 한국언론진흥재단
‘어린이 미디어 이용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어린이의 77.2%가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은 단연 유튜브로 이용률이 무려 97.5%에 달합니다. 어린이 30.8%가 매일, 14.9%는 일주일에 5~6일, 16.6%는 일주일에 3~4일 유튜브를 시청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어린이의 절반은 유튜브 쇼츠,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등 ‘숏폼’ 콘텐츠를 이용하고 있어요.
유튜브를 이용하는 어린이는 하루 평균 1시간 23분을, 숏폼 콘텐츠를 이용하는 어린이는 하루 평균 59분을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어린이 미디어 이용실태 인포그래픽. 한국언론진흥재단
유튜브 콘텐츠를 어린이가 직접 선택하는 비율이 71.6%에 달하는 것도 눈에 띕니다.
자극적인 콘텐츠에 아이들이 반복해서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봐야할 부분입니다. 보호자가 선택하는 비율은 23.9%, 보호자 외 다른 가족이 선택하는 비율은 2.3%에 불과했습니다.
숏폼 콘텐츠는 롱폼에 비해 중독성이 매우 강합니다. 숏폼 콘텐츠를 매일 이용하는 아이들이 15.7%에 달했어요. 이 같은 수치는 매년 높아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보호자들은 미디어의 부정적 영향 중 부적절한 언어(54.7%)와 무분별한 광고(52.2%) 노출에 대해 가장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같은 우려들에도 부모가 현실적으로 아이들의 미디어 이용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보호자들은 ‘아이가 무엇을 이용했는지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아이가 미디어를 이용하는 동안 옆에 있는’ 방식을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고서는 “책임 있는 미디어 이용에 대해 가르쳐주고 미디어 이용 방법에 대해 설명해주는 방식은 상대적으로 덜 사용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보호자들은 주로 인터넷과 아동이 다니는 어린이집, 유치원, 가족 또는 친구에게서 미디어 이용 지도를 위한 정보를 습득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보나 조언을 받은 적이 없다는 비율은 16.2%에 달했습니다.
영유아까지 숏폼에 무분별하게 노출
무엇보다 영유아의 미디어 노출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점이 우려를 자아냅니다.
육아정책연구소가 전국의 0~6세 영유아 부모 1500명을 대상으로 실태를 조사한 ‘가정에서의 영유아 미디어 이용 실태와 정책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아이들은 대부분 영아기 때 주요 미디어를 접했고 하루 평균 1시간 이상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이들이 TV를 시청하기 시작한 연령은 6개월 이상 18개월 미만인 경우가 57.6%로 절반을 훌쩍 넘었습니다. 아이들의 하루 평균 TV 시청 시간은 평일 1시간 18분, 주말 2시간 11분으로 조사됐고요.
스마트폰 등 스마트 기기의 경우 12~18개월 때 이용을 시작했다는 응답이 20.5%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어요. 하루 평균 이용 시간은 평일 55분, 주말 1시간 38분으로 나타났습니다.
어린이 미디어 이용실태 인포그래픽. 한국언론진흥재단
다른 보고서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포착됩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보고서에 따르면 만 3세 미만에 스마트폰을 처음 접한 어린이는 43.5%에 달했습니다.
보고서는 “영유아기 미디어 이용이 언어 발달 등 유아 발달을 지연시킨다는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다. 조사 결과는 생후 24개월 이전 미디어 이용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습니다.
스마트폰이 손쉬운 육아의 ‘툴(도구)’이 되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이 필요한 지점입니다.
3살, 1살 아이를 키우는 이 모씨는 “아이에게 최대한 스마트폰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갖고는 있지만 실천이 쉽진 않다”면서 “솔직히 두 아이를 키우면 너무 정신이 없는데 아이에게 동영상을 틀어주면 잠시라도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육아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육아정책연구소에 따르면 보호자가 영유아에게 미디어를 허용하는 이유로 ‘보호자의 일을 자녀의 방해 없이 하기 위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습니다.
이어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시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했을 때 보상으로 이용 △특별한 이유 없이 아이가 원할 때 허용 등의 응답이 뒤를 이었습니다.
영유아의 미디어 노출은 부모의 배경과도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미국의 커먼센스(Commonsense) 조사에 따르면 2세 미만의 유아는 49분, 2~4세는 2시간 30분, 5~8세는 3시간 5분 이상을 매일 스크린 미디어를 보는데 할애하는 것(2020년 기준)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고소득가구와 백인 가구에서는 애초 미디어 이용시간이 적었으며, 코로나 이후에도 변화가 적었다고 합니다. 반면 저소득 가구와 흑인 및 라틴계 가구의 미디어 이용 시간은 코로나 이후 급격히 늘어났다는 분석입니다.
부모의 스마트폰 의존도와 자녀의 스마트폰 의존도가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매일 유튜브만 보여준 우리 아이 ‘뇌’에 무슨 일이
숏폼 중독 관련 이미지. 매경DB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발달위원회가 작성한 ‘4-7세 아이에게 미치는 디지털미디어의 작용’에 따르면 아이들의 뇌는 사회적 소통을 통해 학습하도록 최적화돼 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미디어는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줄인다고 합니다.
이는 아이들의 수많은 발달 측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입니다. 아이와 함께 디지털미디어를 본다고 하더라도 디지털미디어의 존재는 아아의 놀이를 방해하고, 부모와의 사회적 소통의 양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죠.
발달위원회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성인이 되어서도 늘 변하고 완전히 굳는 일은 없지만, 대체로 만 5~6세 무렵까지 급격하게 성장한다고 합니다.
신생아 시기, 겨우 성인 뇌의 25% 수준이었던 아이의 뇌는, 6년 사이 성인의 90%에 육박하는 용량을 갖게 되죠. 만 12세가 되면 거의 성인 수준으로 성장하고요.
뇌의 용량이 성인의 것과 비슷해진다는 것은 아이의 지각, 인지, 지능, 기억, 창의력, 언어, 정서, 사회성, 도덕성 등 뇌 영역의 여러 가지 발달도 그 만큼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설명입니다.
위원회는 “특히 만 6세 까지는 앞서서 열거한 발달들의 기초가 다져지고 급격하게 발달하는 감수성기가 포함돼 있다. 이 시기 뇌의 각 기능이나 영역을 발달시킬 수 있는 적절한 자극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 평생 해당 기능의 발달이 늦어지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틀어질 수 있다. 순조로운 뇌 발달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라고 깊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16세 전엔 SNS 금지시켜라”
사회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의 저서 ‘불안세대’ 표지. 매경DB
세계적인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 교수는 저서 ‘불안세대’에서 ‘놀이 기반 아동기’가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로 대체된 것이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을 악화시킨 주범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아동과 청소년은 학습과 성장을 위해 유연해진 뇌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시기의 경험과 활동은 뇌 구조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입니다.
하이트 교수는 스마트폰과 SNS가 아동기부터 디지털 세계를 접한 잘파(Z+알파·1996년 이후 태생)세대의 정신 건강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를 낱낱히 파헤쳤습니다.
그에 따르면 1996년 이후 태어난 이들이 불안 세대가 된 근본 원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아동의 일상과 마음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술의 등장이고, 다른 하나는 부모들이 현실 세계에서는 아이를 과잉보호하고 아이의 자율성을 제약하면서도 가상 세계에서는 과소보호한다는 것입니다.
부모 세대는 정작 가상 세계에서는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그래서 제대로 된 보호 조치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우리는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요.
하이트 교수는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는 스마트폰 금지 △만16세가 되기 전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금지 △학교에서 휴대폰 사용 금지 △감독하지 않는 놀이와 독립적 행동을 더 많이 보장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영국 대형 이동통신사 EE은 지난해 16세 미만 청소년에 대해서는 부모가 스마트폰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고, 13세 미만에게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을 제한하도록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하이트 교수는 가상 세계를 화성(火星)에 비유하면서 부모와 사회, 정부와 정보기술(IT) 기업이 다함께 협력해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했죠. 엄마가 쥐여준 스마트폰이 ‘화성 아이’를 키웠다는 주장입니다.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아이를 양육하고 있다면 그의 경고를 한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만약 어린이가 화성에서 성장 급증 시기를 겪는다면, 어른이 된 뒤 도착한 사람과는 달리 신체가 영구적으로 화성의 조건에 적응한 상태로 발달할 것이다.
화성에 적응한 어린이가 지구로 다시 돌아올지는 알 수 없다. (돌아온다 해도) 화성의 저중력 환경에서 자란 어린이는 골격과 심장, 눈, 뇌가 변형될 위험이 높다.
어떤 회사도 부모의 동의 없이 어린이를 화성으로 데려가 위험에 처하게 해서는 안 된다. ”
-조너선 하이트
<황순민 기자의 ‘더인플루언서’> 연재를 시작합니다. 바야흐로 누구나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열렸습니다.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를 구축하고 신선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인플루언서 생태계를 소개하겠습니다. 네이버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다음 기사를 쉽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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