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첫 TV 토론 다음 날 "언제나 일에는 우선순위... 가치지향적 문제는 충분히 심사숙고해야"
[복건우, 이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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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19일 오전 서울 용산구 김구 묘역 참배를 마치고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 이희훈 |
"언제나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가치지향적인 문제들에 대해선 중요한 얘기이긴 한데 당장 생존의 문제가 급하기 때문에 충분히 논의하고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민생 문제와 분리하며 거듭 유보적 태도를 취했다. 대선 첫 TV 토론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영원히 못할 것 같다"라는 비판이 나왔음에도 이 후보는 민생과 경제 회복을 강조하며 차별금지법 논의를 사실상 뒤로 미뤘다.
이 후보는 1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 기념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서서 당장 할 일이 무엇이라고 보나', '이 후보가 말한 사회적 합의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라는 <오마이뉴스> 질문에 "지금은 민생을 회복하는 것, 경제를 다시 회복해서 지속적인 성장의 길로 가게 하는 것이 가장 급하다"라고 운을 뗐다.
이 후보는 "우리 사회가 갈등이 지나치게 심하고 그 갈등이 합리적으로 처리되거나 해소되는 게 아니라 극단적 대립으로 치달아서 서로 상대를 절멸하고 싶어 하는 상황까지 이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과제 중 하나가 사회통합"이라며 "언제나 일에는 우선순위라는 게 있기 때문에 지금은 국민 통합에 방점을 두고 가치지향적인 문제들에 대해선 중요한 얘기이긴 한데 당장 생존의 문제가 급하기 때문에 충분히 논의하고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 후보는 지난 18일 SBS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대선 첫 TV 토론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의하나"라는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 질문에 "차별금지법과 관련해선 차별이 어떤 특정 요소에 의해 생기는 걸 방치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긴 하다"라며 "방향은 맞다고 보지만 현재는 너무 현안들이 복잡한 게 많이 얽혀 있어서 이걸로 새롭게 논쟁과 갈등이 심화되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들을 하기 어렵다"라고 답했다. 권 후보는 "영원히 (입법을) 못할 것 같다"라고 비판했다.
권 후보는 "이번 광장에서 2030 청년들이 가장 많이 요구한 게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며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 총재 시절 앞으로 이 땅에서 영원히 차별을 없애겠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했다. 2007년 노무현 정부도 차별금지법을 발의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도 2013년 국회의원 시절 법안을 발의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를 향해 "사회적 합의 얘길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28년이다. 김대중 총재 시절 얘기를 했고 강산이 세 번 변했다. 이게 과연 사회적 합의의 문제냐. 결단의 문제다"라면서 "이 후보가 광장에서 멀어지시면 안 된다. '지금은 이재명'이라고 현수막에 쓰여 있지 않느냐. 나중이 아니라 지금 하겠다고 말씀하셔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민주당 "사회적 합의 이루면 추진한다는 방침"
차제연 "차별금지법 우선순위 문제로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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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19일 오전 서울 용산구 김구 묘역 참배를 마치고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 이희훈 |
이 후보는 앞서 당내 경선 기간 차별금지법 제정을 두고 '사회적 합의'를 얘기한 바 있다. 이 후보는 지난 4월 26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3차 합동연설회가 끝나고 '대통령에 당선되면 임기 5년 내에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할 생각이 있나'라는 <오마이뉴스> 질문에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논쟁들과 오해들이 있다"라며 "더 많은 대화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관련 기사: 대통령 임기 내 차별금지법? 이재명 "사회적 합의 필요" https://omn.kr/2d8is).
민주당도 차별금지법 제정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진성준 민주당 선대위 정책본부장은 지난 12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이 후보 10대 공약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문제는 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고 전제돼야 한다"라며 "사회적 공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면 추진한다는 것이 당의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차별금지법 제정은 '사회적 합의' 단계를 넘어섰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2년 4월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평등에 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7.2%가 당시 21대 국회에 계류 중이던 차별금지법 제정 필요성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진보정책연구원·한국사람연구원·한국리서치가 2024년 10월 한국리서치 패널 1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내셔널어젠다 2024' 온라인 웹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3.4%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의했다.
현재 출마한 대선 후보 중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한 후보는 권영국 후보뿐이다. 권 후보는 지난 16일 성명을 내고 "지난 7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대한민국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권고를 담은 견해를 발표했다"라며 "유엔 조약기구들의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는 2007년부터 시작돼 반복됐고 이번엔 벌써 14번째 권고"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우리 사회의 심화되는 불평등을 해소하고 평등으로 나아갈 출발점"이라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더는 국민적 합의나 나중에로 미뤄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관련 기사: 권영국 민노당 후보 "차별금지법, '나중에' 안 된다" https://omn.kr/2dkwi).
대선 첫 TV 토론회가 끝나고 다음 날인 19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입장문을 내고 "차별을 방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차별금지법은 현안과 분리됐다"라며 "이재명 후보는 새로운 논쟁과 갈등이 심화되면 당장 해야 할 일들을 하기 어렵다며 다시금 차별금지법을 우선순위의 문제로 만들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광장의 시민들은 차별금지와 인권 실현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그 대안으로 제시했다"라며 "차별금지법은 더 이상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핑계로 미룰 수도, 치워버릴 수 있는 의제도 아니다. 각 정당 및 후보들은 이제라도 차별금지법을 대선 공약으로 설정하고 새 정부 국정운영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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