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으로 가야 살아있는 기술"
김남균 한국전기연구원장이 4월 28일 경남 창원 전기연 본원에서 동아사이언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전기연 제공
"부끄러운 얘기지만 우리 연구원이 그동안 '특허를 위한 특허'도 내 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작년에 왜 9월, 10월만 되면 갑자기 특허 출원이 많아지냐, 평가를 앞두면 갑자기 특허 아이디어가 샘솟냐며 연구원들이랑 눈 마주치면서 물어봤습니다. 솔직히 평가를 위한 것 아니냐고 했는데 부인을 못하더라고요. 지금부터 전기연에서 특허 건수에 대해서는 인정을 안하겠다, 낼 거면 확실한 영향력을 가진 '강한 특허'를 내라고 선언했습니다."
지난달 말 경남 창원 한국전기연구원 본원에서 만난 김남균 한국전기연구원장은 "기술이 실험실에 머물면 죽은 기술이라고 본다"며 "산업으로, 제조 현장으로 가는 게 살아있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기술사업화에 대한 진심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기술사업화는 연구와 또 다른 '창조'라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예전에는 기술만 좋으면 사업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기관장이 되고 보니 기술을 어필하고 큰 그림을 그리는 기술사업화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3월 4일부터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소(출연연) 운영규정 개정을 통해 출연연이 필요에 따라 우수 연구자를 국가특임연구원으로 특별 채용하거나 정원 외 인력을 자체 예산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한국화학연구원에서는 1호 국가특임연구원으로 김명환 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을 임용하기도 했다.
전기연은 연구자가 아닌 기술사업화 전문 인력 2명을 정원 외로 뽑는 프로세스가 마무리 중이다. 1년 가량 준비한 기술사업화본부는 지난해 11월 출범했다. 2명 중 1명은 기술사업화 기획 전문가, 1명은 특허 전문가라는 설명이다.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으로 시급해진 전력 수급 방안에 대해서는 발전이 아닌 송전을 문제로 지목했다. 지방에 발전소를 지어 봤자 수요가 큰 수도권까지 끌어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진행된 경남 밀양 고압 송전탑 사건 이후 송전망 건설 사업에 사회적 수용성 문제가 얽히며 완공 시기를 가늠하기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전력 수급 문제 해결법으로는 반도체 공장, 데이터센터 등 전력 수요처 옆에서 바로 '로컬 푸드' 개념으로 전력을 수급하는 마이크로그리드 방식과 반도체 칩의 소모 전력을 줄이는 기술 개발을 제시했다.
김 원장은 "현재는 반도체의 컴퓨팅 성능을 높이는 데 연구가 집중됐지만 유럽 등에서 규제로 제약을 걸기 시작하면 소모 전력을 줄이는 데 연구 자원이 몰려 전력 효율이 금방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3년 1월 13일 취임한 김 원장의 임기는 2026년 1월 12일까지로 약 8개월 남은 상황이다. 취임 전 원장 직무대행을 7개월간 맡아 실제로 전기연을 이끈 기간은 만 3년이다.
김남균 한국전기연구원장이 4월 28일 경남 창원 전기연 본원에서 동아사이언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전기연 제공
다음은 김 원장과의 일문일답.
Q. '강한 특허'와 연구원의 기술사업화 노력에 대해 더 설명한다면.
"확보한 기술이 재산화돼서 물샐틈없는 영향력을 가진 튼실한 특허를 말한다. 범위가 좁든 넓든 확실한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 제가 작년에 과제 제안을 하든 과제 평가를 하든 특허 건수에 대해서는 일체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현재 연구원에서 특허의 양적 목표는 전혀 없는 상태라고 보시면 된다.
올해 초 과기정통부에 직접 찾아가서 정원 외 인원을 2명 뽑아 기술사업화로 배정했다고 이야기하고 예산을 좀 지원해 달라고 했다. 우리가 여력이 되는 데까지 하고 손을 벌린 셈이다. 그때 담당자가 자체 정원 늘리는 곳들은 있는데 연구본부가 아닌 데서 늘리는 건 처음 봤다고 놀랐다.
연구원에서는 기술이전 성과도 높게 쳐 준다. 민간에서 자금을 내놓는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창업에서는 기술 가치평가가 필수적으로 이뤄진다. 상장 목표도 세워 보자고 말한다. 미국 나스닥 상장 10년 안에 해 보자고 창업 담당하는 부서에 이야기했다."
Q. 과기정통부의 출연연 운영규정 개정으로 자율성이 확대됐다고 하는데 체감하는지.
"환영할 일이다. 인력 채용뿐 아니라 기본사업을 꾸릴 때도 자유도가 높아졌다. 연구원 기본사업은 큰 목표인 대과제가 있고 대과제 아래에 세부 목표인 중과제들이 있다. 기존에는 사업을 시작할 때 대과제와 중과제의 예산이 각각 고정돼 있어 나중에 필요에 따라 조정하기가 어려웠다. 이제 운영규정 개정을 통해 중과제끼리 예산을 옮길 수 있게 되면서 상황 변화에 따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우리 연구원에서는 서로 아이디어 경쟁을 해서 기본사업을 따는 식으로 운영해 왔다. 좋은 아이디어가 없는 사람들은 기본사업을 못하는 구조다. 훌륭한 과제를 낸 사람부터 순서대로 연구비를 가져간다. 운영규정 개정으로 융통성을 갖고 경쟁을 촉진할 수 있게 됐다. 아이디어가 좋고 중요하면 우선적으로, 집중적으로 밀어줄 수 있다."
Q. AI로 인한 데이터센터 전력 문제를 낙관적으로 봤는데.
"데이터센터는 컴퓨팅에 쓰이는 반도체 칩 소모 전력이 문제다. 지금은 전세계 연구자들의 우선순위가 칩의 컴퓨팅 능력을 올리는 데 집중돼 있다. 연구자들이 어느 쪽에 신경 쓰냐에 따라 발전은 빠르게 이뤄진다. 유럽 등에서 반도체 전력 소모에 대한 규제를 제시하고 연구자들이 마음 먹기 시작하면 칩 소모 전력을 금방 줄일 것으로 예상한다. 앞으로 AI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겠지만 전력 사용량도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Q. 연구원이 지방에 있어 인력 확보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 같다.
"연구원에 26개 연구센터가 있는데 3~4개 연구센터에서는 이미 인력 수급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 농담 같은 얘기지만 서울과의 거리에 비례해서 인센티브를 줬으면 좋겠다. 연구원 자체적으로는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내에 전기연과 맞는 전공을 개설하거나 학연프로그램을 활용해 우리 스스로 인재들을 찾아 적극적으로 키우고 데려올 수 있게끔 노력하고 있다."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