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영화] ② OTT에 주도권 내준 영화계
영화감독이 OTT로 창작 무대를 옮기는 건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됐다.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은 2022년 티빙 ‘욘더’(왼쪽), ‘신세계’ 박훈정 감독은 2024년 디즈니플러스 ‘폭군’(가운데),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은 2024년 HBO ‘동조자’로 OTT에 발을 내디뎠다. 티빙·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쿠팡플레이 제공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로 불리는 2000년대부터 팬데믹 이전까지, 여가 시간에 극장을 찾는 건 일상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의 활성화와 코로나19 위기는 극장과 대중의 심리적 거리를 크게 벌여놓았다.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는 게 당연하지 않은 시대가 되면서 극장 관객 수는 줄어든 반면 OTT 이용률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연도별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2017년 36.2%에 불과했던 한국의 OTT 이용률은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66.3%로 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엔 국민 10명 중 8명이 OTT로 콘텐츠를 본다는 결과가 나왔다.
주말 성인 기준 영화 티켓값이 1만5000원을 찍으면서, 그리고 OTT를 통해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전 세계의 웰메이드 작품들을 접하면서 극장에서 보는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눈은 더 깐깐해졌다. 극장에서 철 지난 ‘창고 영화’가 개봉될 때 대중은 OTT를 통해 신선한 작품들을 감상한다. 원하는 시간에 집에 편히 누워서 볼 수 있는 OTT와 비교했을 때 영화관의 가성비 또는 가심비가 떨어진다는 경험이 누적되며 영화관을 찾는 발길은 뜸해지고 있다.
OTT에 다양한 콘텐츠가 쏟아지면서, 기존의 영화 ‘흥행공식’도 더는 유효하지 않게 됐다. 공들인 대작은 실패하고, 예기치 못한 요인으로 입소문을 탄 영화들이 1000만 관객을 넘기는 사례들이 발생했다. 팬데믹 이후 1000만 관객을 달성한 대표작 ‘서울의 봄’(2023)과 ‘파묘’(2024)는 모두 흥행공식에서 벗어났다.
시기적으로 두 작품은 과거 비수기로 여겨졌던 11월과 2월에 각각 개봉했다. 소재·장르적 특성의 경우 ‘서울의 봄’은 젊은 세대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던 역사물이었고, ‘파묘’는 대규모 흥행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여겨져 온 오컬트물이었다.
크게 투자한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는 사례가 줄을 잇자 투자는 점점 줄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해 순제작비 30억원 이상으로 제작·개봉한 상업영화 37편의 평균 추정수익률을 16.44%로 잠정 집계했다. 코로나19 이후 꾸준히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쇼박스 관계자는 7일 “팬데믹 전에 개봉했더라면 200만~500만 관객을 달성할 수 있었던 영화 상당수가 이제는 100만을 넘기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극장 산업이 위축돼 투자금 회수가 안 되니까 재투자를 못하고, 재투자를 안 하니까 개봉작이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들어섰다”고 말했다.
극장용 영화 작업을 고집하던 창작자들이 OTT로 넘어간 것도 극장 영화가 줄게 만든 요인이라고 업계는 분석한다. 박찬욱, 연상호, 이준익, 박훈정, 황동혁 등 흥행작을 만들어 온 감독들이 최근 OTT 영화나 시리즈물로 대중을 만나고 있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시나리오 자체가 줄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극장에 걸 영화를 꾸준히 작업하던 감독들이 OTT 작품에 참여하면서 영화 기획도 줄었다”며 “이 사람들이 다시 영화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 올해와 내년이 그 공백기인 셈”이라고 짚었다.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최근 진행한 내한 인터뷰에서 “일본도 영화가 쭉 위기였지만, 극장 영화를 고집하는 감독이 남아있는 듯하다”면서 “(한국의 경우) 창작자들이 OTT로 이동한 것도 영화관을 찾는 발걸음을 줄게 한 원인 아닌가 싶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임세정 정진영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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