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내성 암호’ 상용화 본격 시작

그래픽=이진영

최근 보안 업계의 화두는 ‘대(對)양자컴퓨터’ 암호 개발이다. 기존 수퍼컴퓨터보다 30조배 이상 빠른 압도적 연산 속도를 발휘할 것으로 예상되는 양자컴퓨터가 도입되면 기존 암호 체계는 순식간에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양자컴퓨터가 상용화 단계는 아니지만, 이를 대비한 암호 체계를 미리 마련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양자컴퓨터를 이용한 해킹 시도에 대비한 ‘양자 내성 암호(PQC·Post-Quantum Cryptography)’를 여러 기업에서 속속 도입하고 있다. 양자 내성 암호는 양자컴퓨터로도 해독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리는 복잡한 연산 과정을 통해 암호를 생성하는 방식이다. 종전 보안 기술에 비해 별도 장비가 필요하지 않고, 소프트웨어를 통해 적용할 수 있어 범용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국내 기업들이 최근 자체 보안 기술에 PQC를 접목한 서비스를 속속 내놓는 등 상용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단계다. 정부 역시 2035년까지 국내 암호 체계를 PQC 기반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상용화 수준까지 올라온 PQC 기술

삼성전자는 올해 들어 스마트폰과 반도체 등 주력 제품에 PQC 기반 보안 체계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지난 2월 초 출시한 최신 스마트폰 갤럭시S25는 삼성전자의 보안 시스템 ‘녹스(KNOX)’에 PQC 기술을 접목한 최초 제품이다. 또 2월 말에는 “PQC 기술을 적용한 보안 칩 개발을 마쳤고, 샘플 출하 준비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그래픽=이진영

LG유플러스는 지난 1월 말 PQC 기술을 활용한 계정 관리 서비스 ‘알파키’를 정식 출시해 금융·의료·공공 기관 등 다양한 산업군의 고객사에 보급한다고 밝혔다. 알파키는 임직원의 업무 계정 권한을 자동으로 관리하는 한편 PQC를 통해 보안을 강화한 서비스다.

서울대 수리과학부 천정희 교수가 설립한 스타트업 ‘크립토랩’은 올해 초 정부가 주관한 한국형 양자 내성 암호 공모전에서 최종 알고리즘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크립토랩의 수석 과학자 다미앙 스텔레 교수는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의 PQC 표준 기술을 개발한 전문가다.

◇종전 기술 대비 범용성 뛰어나

통신사 등 기존 국내 기업들이 양자컴퓨터 시대에 대비해 투자한 보안 체계는 QKD였다. QKD는 양자역학을 응용한 보안 기술이다. 빛의 알갱이인 양자가 무작위적으로 흩뿌려져 있는 모습을 자체 장비를 통해 패턴으로 바꿔 암호로 만든다. 양자 특성상 무작위성이 뛰어나 암호를 유추하기 어렵고, 외부 해킹으로 이 암호를 탈취하는 순간 암호가 양자 상태로 바뀌어 버리기 때문에 해독도 어려워 보안성은 더 뛰어나다. 이 때문에 SK텔레콤과 KT는 2010년대부터 QKD 위주로 보안 기술을 개발해 왔다. 다만 최근 해킹 사고로 유출된 SK텔레콤의 유심 정보를 보관하는 서버에는 이런 암호화 조치가 적용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QKD 암호 생성을 위해선 별도 장비와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해 초기 도입 비용이 높고, 사이버 공격을 막는 데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미국 국방부 산하 정보기관인 국가안보국(NSA)은 2020년부터 QKD를 공공기관에서 사용하지 말라는 보안 지침을 이어오고 있다. 민간 기업에선 QKD를 활용하는 사례도 있지만, 공공 분야에선 PQC 위주의 보안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SK텔레콤과 KT를 포함해 여러 기업이 최근 PQC 기술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고, 정부 역시 PQC 암호 체계 수립을 위한 지원을 늘리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국내 암호 체계 PQC 전환을 위한 시범 사업자 3곳을 선정했다. 한전 KDN(에너지), 라온시큐어(의료), LG유플러스(행정) 등 세 분야에서 사업자를 선정하고, 이들에게 올해 예산을 9억원씩 지원해 PQC 암호 체계 전환을 돕는다는 계획이다.

☞양자 내성 암호(PQC)

압도적 연산 능력을 지닌 양자 컴퓨터로도 해독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리는 암호 체계. 양자역학을 활용한 보안 기술 ‘양자 키 분배(QKD·Quantum Key Distribution)’보다 범용성이 뛰어나고 장비가 따로 필요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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