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방송·문화]
전주영화제 코리안시네마 부문 선정
참사 다루는 새로운 시선·촬영법 눈길
“돈 없이도 영화 만들 용기 주고싶어”
영화 ‘바다호랑이’ 스틸사진. 영화는 참사 장면을 사실적으로 그리기보다 인물들의 감정에 집중했다. 영화로운형제 제공
예고 없이 벌어진 참사는 많은 이의 가슴에 상처를 남긴다. 11년 전 세월호 참사도 그랬다. 추모만 하기에도 벅찬데 진실 규명 과정에서 벌어진 책임 회피와 외면, 갖은 다툼은 없었어야 할 희생과 상처까지 만들고 말았다.
다음 달 25일 개봉하는 정윤철 감독의 영화 ‘바다호랑이’는 세월호 피해자 구조에 나섰던 잠수사들의 이야기다. 그간 많은 영화가 세월호 피해자 및 유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것과는 다른 시선이다. 김탁환 작가의 소설 ‘거짓말이다’를 원작으로 각색한 ‘바다호랑이’는 참사에 주목하는 시선뿐 아니라 이를 영화로 옮기는 방식도 새롭게 시도했다.
정윤철 감독은 "타인을 돕는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상처와 트라우마를 조명하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로운형제 제공
영화가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부문에 선정돼 전주를 찾은 정 감독을 지난 1일 만났다. 정 감독은 “새로운 형식의 영화라 사람들에게 얼마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기대가 많이 됐다”며 “‘형식이 독특해도 볼만하다’ ‘이렇게도 영화가 만들어지구나’ 하는 반응”이라고 만족스러워했다.
총 3억원 가량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일반적인 극영화와 달리 연극 같은 형식으로 제작됐다. 모든 장면은 실내 연기 연습실에서 촬영됐다. 바닷속에 잠수하는 장면은 배우의 마임과 푸른 조명 등을 활용해 관객이 빈틈을 상상으로 채우게끔 했다.
‘바다호랑이’는 공우영, 고(故) 김관홍 민간 잠수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실화를 스크린에 옮겨 담으며 이처럼 독특한 방식을 시도한 이유를 물었다.
영화 포스터. 영화로운형제 제공
정 감독은 “(기획 당시가) 코로나 기간이기도 했고, 소재도 세월호 참사라 그런지 투자 유치가 쉽지 않았다”며 “창의적인 방법으로, 돈에서 자유롭게 찍어보기로 했다. 배우의 연기를 최대한 돋보이게 하고 사운드 효과를 실제처럼 만들어내 관객이 그 공간에 있는 것처럼 상상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민간 잠수사 나경수(이지훈)가 카메라 앞에서 눈을 감으며 시작한다. 배우가 눈을 감고 상황에 몰입함과 동시에 관객 역시 이야기 속 공간을 상상한다. 경수가 피해자들을 구조하는 장면에선 선체 내부가 아니라 경수의 얼굴과 몸짓만 카메라에 담긴다.
정 감독은 “발생한 지 10년밖에 지나지 않은 참사라 구조 장면을 정밀하게 묘사하기보다 추상화처럼 보여주는 게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참혹한 장면보다 감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바다호랑이’가 관객과 만나기까지는 시나리오 기획 단계부터 8년이 걸렸다. 제작을 포기하지 않은 건 ‘해야 할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정 감독은 “민간 잠수사들은 남을 돕기 위해 나섰다가 오히려 범법자로 몰려 재판에 섰다. 그 현실이 어이없고 황당해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타인을 돕는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상처와 트라우마도 조명하고 싶었다”고 했다.
정 감독은 ‘바다호랑이’의 새로운 시도가 침체에 빠진 한국 영화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돈이 없어도 배우의 연기만 잘 끌어낸다면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용기를 연출자들에게 줄 수 있으면 좋겠다”며 “무대와 공간을 비우고 그 틈을 관객이 상상으로 메우도록 했더니 관객의 머릿속에 100억짜리 못지않은 바닷물과 세트가 채워졌다. 물 한 방울 없이 잠수 장면도 찍었으니 이런 방식으로 외계인 침공 영화도, 사극도 찍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전주=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