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실험에서 망막 손상 가능성 입증
무조건 혈당 낮추기보다 안정적 유지가 중요
혈당 변동 자체가 망막에서 저산소유도인자(HIF) 축적을 유도하고, 이로 인해 당뇨병성 망막병증 초기와 후기 병태에 관여하는 다양한 유전자들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미국 연구진이 밝혔다. /픽사베이
심하면 실명까지 이르는 당뇨병성 망막병증은 그동안 고혈당이 원인으로 지목됐는데, 반대로 저혈당도 병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혈당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합병증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아크릿 소디(Akrit Sodhi)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교수 연구진은 “저혈당이 당뇨병성 망막병증을 악화시킨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혀냈다”고 1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이날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저혈당이 ‘저산소유도인자(HIFs, Hypoxia-Inducible Factors)’를 활성화해 망막 손상을 일으킨다고 설명했다.HIF는 일반적으로 산소가 부족할 때 작동하는 유전자 조절 단백질로, VEGF(혈관내피생성인자) 같이 혈관 생성과 염증 반응에 관여하는 물질이 생기도록 한다.
그동안 의학계는 당뇨병성 망막병증이 당이 높은 피가 미세 혈관을 타고 흐르면서 순환 장애를 일으켜 망막을 손상시키고 시력 저하를 유발한다고 봤다. 이번에 산소가 충분한 상태에서도 혈당이 급격히 떨어지면 HIF가 활성화되면서 망막에 손상을 준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보여줬다.
연구진은 당뇨병이 있는 실험 쥐에게 인슐린을 주사해 갑자기 저혈당 상태를 유도하면 망막에서 HIF 수치가 증가하고 혈관 누출이 심화하는 것을 확인했다. 혈관 누출은 혈관 안에 있어야 할 액체 성분인 혈장이 밖으로 새는 현상이다.
이는 혈당의 급격한 변화 자체가 망막에 스트레스를 준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HIF가 강하게 작동하면 혈관벽이 느슨해지고 혈장이 밖으로 새면서 망막 부종과 염증을 일으킨다.
실제 이전 대규모 임상시험에서도 혈당을 빠르게 낮추는 집중 치료를 받은 환자군에서 초기 1년간 망막병증이 악화하는 사례가 더 많았다는 보고가 있었다. 당뇨병 환자는 혈당 수치를 낮추는 것이 중요하지만 너무 갑작스럽거나 과도하게 낮추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고혈당과 저혈당이 망막에서 HIF(저산소 유도 인자)의 축적을 유도하고, 그 결과로 VEGF(혈관내피성장인자)와 같은 혈관작용 인자들이 발현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과정은 허혈(혈류 부족)과는 무관하게 발생한다. /사이언스 중개의학
연구진은 ‘32-134D’라는 신약 후보물질의 가능성도 제시했다. 이 물질은 HIF-1α와 HIF-2α를 동시에 억제해 비정상적인 혈관 생성과 혈관 누출을 효과적으로 막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존 항VEGF 치료제인 애플리버셉트(제품명 아일리아)보다 더 나은 치료 효과를 보였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당뇨병 환자의 혈당은 단순히 낮추기 보다는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소디 교수는 “고혈당과 저혈당 모두 망막 손상을 유발할 수 있고 이 과정에 HIF가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향후 치료 전략에도 혈당 변화 폭과 속도 조절이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당뇨병 합병증을 예방할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결과로 평가했다. 다만 HIF는 생체 항상성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이를 조절하는 방법은 장기적인 안전성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참고 자료
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2025), DOI: https://doi.org/10.1126/scitranslmed.adq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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