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과'로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 초청되며, 액션과 감성을 절묘하게 엮어냈다는 찬사를 받고 있는 민규동 감독을 만났다. 구병모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처리하는 조직에서 40년을 보낸 킬러 '조각'과 평생 그를 쫓아온 또 다른 킬러 '투우'의 대결을 그리는 액션 드라마다. 그러나 민 감독은 단지 액션의 스펙터클에 머물지 않고, "이야기의 본질은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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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은 거의 실존주의적 영웅이에요. 목에 칼이 들어와도 흔들리지 않는 기계 같은 인물이죠. 그건 다 잃어봤기 때문에 나오는 용기라고 생각해요. 그런 그가 마지막에 보여주는 인사는, 인간 세계에 마지막으로 발을 딛는 성장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민 감독은 조각, 투우, 그리고 강 선생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삼각관계에 특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들은 전통적 의미의 멜로 관계가 아니라, 각기 다른 삶의 궤적과 감정을 지닌 채 서로 엇갈리는 긴장감을 형성한다.
"강 선생은 신고해야 한다는 양심과 조각과의 유대 사이에서 흔들려요. 그게 이 환타지 같은 설정을 관객이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지점입니다. 이 인물들은 정념에 빠질 여유도 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오히려 그 관계에서 나오는 텐션이 흥미롭죠."
영화 연출을 향한 의지는 질문에서 시작된다고 그는 말한다. "결국은 질문이에요. 이 이야기의 필요는 무엇인가, 왜 지금이어야 하는가,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 질문을 끝없이 던지면서 작품을 만듭니다. 매일 촬영장에서 이런 질문을 던지고 메모를 작성하는데 시나리오보다 더 두꺼운 질문 메모가 쌓이더라구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매번 작품을 만듭니다."
민 감독은 지금까지 13편의 시나리오를 썼지만, 모두 영화화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첫 작품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당시에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 작품이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절박함"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했다.
"'여고괴담' 개봉했을 때, 중학생 관객한테 '공포 영화의 기역도 모르는 민규동은 자폭하라'는 메시지를 받았어요. 첫 작품부터 죽으라는 소리를 들은 셈이죠. 그 후로도 계속 막다른 골목에 몰린 느낌이었지만, 결국은 안 죽고 잘 만들자는 각오로 버텼어요."
영화 속 인물들의 명명 방식도 눈길을 끈다. 특히 연우진 배우의 실명이 그대로 캐릭터명으로 쓰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연우진이라는 이름이 너무 멋있잖아요. 그런데 실제 이름이 '봉회'인 걸 알고 너무 웃겼어요. 그 이름을 커밍아웃하듯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이고 싶었어요. 또 손 실장, 강 선생 같은 인물들도 원래는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데, 조각이 '강보현'이라고 이름을 부르는 장면을 꼭 넣었죠.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의 감정이 있으니까요."
영화 속 현실성에 대한 세밀한 고증 역시 민 감독의 철저한 준비 과정을 엿보게 한다. 조각이 60대 할머니인데도 클럽에 자연스럽게 입장할 수 있었던 장면에 대한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당연히 가능한 설정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이힐, 스모키 메이크업, 실버 염색 등으로 분장을 하고 등장했죠. 실제 촬영 당시 클럽 안에는 실버 모자나 흰 셔츠를 입고 실버 헤어로 염색한 손님도 여럿 있었어요. 입장 장면에서 가드가 돌아보는 순간 조각이 고개를 숙이는 디테일까지 다 넣었죠. 그리고 그 클럽이 청담동이 아니라 인천 석바위라는 지역 클럽이라는 점도 맥락 안에 포함됐어요. 인천 석바위는 제가 나고 자란 고향입니다. 그 지역의 클럽이라면 이런 손님이 들어도 괜찮을거라는 생각, 그리고 인물이 정문이 아닌 뒷문으로 들어간다는 설정이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민 감독은 '파과'가 단지 액션 영화로만 소비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새로운 걸 도전하려는 영화였어요. 처음으로 본격적인 액션 연출에 도전했고, 동시에 인간에 대한 예의를 이야기하고 싶었죠. 그 예의가 결국 이 세계를 지탱하는 마지막 남은 감정 아닐까요."
영화 '파과'는 4월 30일, 오늘 개봉했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출처 NEW, 수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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