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선 세종대학교 국방시스템공학과 교수(한국전자파학회 논문지 집행이사)
최신 인공지능(AI) 전자레인지를 샀다. 새로 산 기념으로 음식을 해먹기로 하고 아들에게 물어봤다. “우리 어떤 음식을 해볼까.” 아들이 대답했다. “양념치킨 해주세요.” 지금 닭이 없어서 안된다고 하자 아들이 놀라며 되물었다. “왜 안돼요? AI 전자레인지인데.”
우리는 지금 AI 만능의 시대에 살고 있다. 마치 AI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처럼 여기고 닥치는 대로 AI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한때 우리나라 축구를 폄하하는 속된 말로 '해줘 축구'라고 부른 적이 있다. 특별한 전략이나 전술 없이 스타플레이어에게 알아서 해달라고 한다는 의미에서다.
요즘 우리는 '해줘 AI'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작 필수적인 재료(닭)는 없는 상황에서 AI 전자레인지라는 이름만 보고 당연히 양념치킨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맹목적인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맛있는 양념치킨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자레인지뿐만 아니라 닭, 그리고 요리할 사람이 모두 필요하다. AI 기술 발전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성과를 위해서는 세심한 연구비 투자와 더불어 무엇이 정말 필요한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러한 파악에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옆집에서 최신 전자레인지 10대를 들여놓고 양념치킨이 쏟아져 나온다고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AI 만능'이라는 뜻은 다른 의미에서도 쓰이는데 연구과제의 매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제목에 'AI'라는 단어만 넣으면 된다는 인식이다. 모든 연구가 억지로라도 AI와 연결돼야만 채택이 쉬워지는 현실은 자칫 쓸모없이 먼지만 쌓인 AI 전자레인지 100대를 마주하게 될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AI가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보다 먼저 정말 AI가 필요한 상황인지 아닌지를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요즘처럼 AI가 없으면 뒤처지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도 필자는 반드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 1+1을 계산하기 위해 엑셀을 실행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는데 이제는 1+1을 계산하기 위해 챗GPT를 실행하고 고성능 GPU를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제한된 자원으로 단순 계산에 과도한 리소스를 낭비하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일은 없다.
데이터가 부족해 AI로 처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과감하게 AI 적용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오히려 데이터 부족으로 인해 기존 기술보다 성능이 떨어지는데도 억지로 AI를 적용하며 데이터 부족 탓만 하거나, AI 관련 연구에 밀려 기존 기술 개발이 방치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이는 기존에 보유했던 기술마저 퇴보시켜 향후 회복 불능의 상태로 이어질 수 있다.
동시에 데이터 보유는 이제 하나의 중요한 기술이자 자산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구글이나 네이버가 AI 분야에서 앞서나가는 이유는 방대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많은 부분에서 '데이터 보유 및 이를 통한 학습'에 대한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데이터 부족'을 외치지만, 데이터 확보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부족한 것은 그 가치가 낮게 인식되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부터 무형의 소프트웨어·데이터보다는 유형의 하드웨어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했던 인식 또한 AI 기술의 본격적인 발전에 또 다른 걸림돌이 되고 있다.
AI의 발전과 이를 통한 국가 경쟁력의 강화를 위해서는 우선 AI 전자레인지를 구입하는 것만큼이나 닭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고 없다면 닭을 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거나 다른 메뉴를 선택하는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닭이 없다고 불평만 하며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구입한 전자레인지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숙련된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맛있는 양념치킨을 맛볼 수 없듯이 'AI 만능'이라는 피상적인 흐름에 휩쓸려 겉모습만 쫓거나 남들이 한다고 따라 하기만 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윤여선 세종대 국방시스템공학과 교수·한국전자파학회 논문지 집행이사 ysyoon@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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