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렉에는 “불칸인(Vulcan)”이라는 외계 종족이 등장한다. 인간과의 혼혈로 태어나, 감정을 지니고 있지만, 이를 철저히 억제하며 논리와 이성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철학을 따른다. 하지만 정신 교류(Mind Meld)라는 능력을 통해 타인의 기억이나 감정을 알아낼 수 있다. 평균 인간보다 높은 지능을 지니며, 뛰어난 수학적 사고력과 기술적 역량을 바탕으로 주로 과학자, 의사, 철학자로 활동한다.
필자가 MS 코파일럿으로 생성한 불칸인
오늘날 AI는 불칸인처럼 인간의 언어를 학습한 결과, 우리의 일상 전반에 깊이 스며들고 있다. 이 ‘불칸인 AI’는 블랙박스처럼 속을 알 수 없지만, 이제는 숙명처럼 인간과 함께 공존·협업하는 존재다. 그중 가장 영향력 있는 맏형의 이름은 바로 ‘LLM(대규모 언어 모델)’이다. 이 종족은 알고리즘으로 학습되고, ‘토큰’(단어의 조각)을 기반으로 다음 단어를 예측하며, 무작위 확률에 따라 응답하기에 ‘확률적 앵무새’로 불린다. 하지만 AI는 인간보다 더 빠르게, 더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어 업무 성과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글쓰기·그림·작곡 등 창작 분야나 심지어 의료·법률·창작·시험 등 전문 영역에서도 탁월한 성능을 보인다. 가령, 암 진단의 경우, 인간 의사는 조금이라도 증상이 나타나야 인지하지만, AI는 무증상 단계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필자는 AI를 ‘불칸인’에 비유하지만, AI를 ‘외계 지능’에 비유한 에단 몰릭(Ethan Mollick)의 시각도 흥미롭다. 와튼스쿨 교수인 몰릭이 저술한 『공동의 지능: 인공지능과 함께 일하며 살아가기(Co-Intelligence: Living and Working with AI)』는 필자의 저서 『AI 싱킹과 협업지성』(AI Thinking and CQ)과 거의 같은 시기에 출간되었다. 지구 반대편에 살며 한 번도 교류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둘 다 AI의 본질을 ‘협업 지능’과 ‘공동의 지능’으로 규정하고 그 특성을 분석하고 협력 전략을 제안한 점은 매우 흥미롭다. 몰릭은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협업과 공동 지능의 파트너로 보자고 제안한다. 그는 AI를 코치, 교사, 동료처럼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생산성과 창의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첫째, ‘AI를 사람처럼 활용하기(AI as a Person)’. 우리가 일상적으로 작업할 때 AI를 지속적으로 참여시키면, AI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교육, 업무, 창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 능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I를 개인 튜터, 코치, 창작 또는 업무의 효율을 높이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AI는 지치지 않는 인턴처럼 일하지만, 때로는 어설픈 오류(hallucination)를 범하기도 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활용해야 한다.
필자가 MS 코파일럿으로 생성한 AI 동료
둘째, 동료로서의 AI(AI as a Coworker). AI를 동료처럼 대하되, 각자의 역할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직업에서 ‘인간의 일’과 ‘AI의 일’은 겹치기 시작했으며, AI로 작동하는 로봇이 도입되면 인간이 맡던 업무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고임금, 고학력, 창의적인 직업도 AI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않다. 앞으로의 업무는 ① AI가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일, ②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일, ③ AI에 맡기되 인간의 검토가 필요한 일로 분류될 수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직장에서 AI의 역할과 관점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명확한 프롬프트를 제공할수록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셋째, 코치로서의 AI(AI as a Coach)는 숙련도가 낮은 사람에게는 멘토가 되고, 전문가에게는 더 높은 성과를 유도하는 파트너가 된다. AI가 전문적인 결과를 제공할 수 있다면, 기본적인 업무와 반복적인 일은 AI에 맡기고, 인간은 창의력과 문제해결 능력 향상에 집중할 수 있다. AI 코치는 의사, 건축가, 작곡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생산성과 창의성을 증진하는 유능한 조력자가 될 수 있다. AI 코치 중 AI 튜터(AI Tutor)는 과거와 달리 낮은 비용으로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이용이 가능한 1:1 과외 교사다. 인간의 수준에 맞춰 개인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고, 실시간 피드백도 가능하다. AI의 즉시성과 용이성으로 인해 ‘숙제 종말’이 예상된다. AI 튜터는 기존 교수법을 개선하고 ‘거꾸로 학습(Flipped Classroom)’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즉 먼저 학습하고 학교에서는 문제해결에 집중하므로 능동적 학습이 구현될 것이다.
넷째, 창의적인 AI(AI as a Creative)는 사용자 입력을 바탕으로 나름 창의적인 컨텐츠를 생성한다. 특히 LLM은 비연관된 개념을 무작위로 연결하거나, 다음에 등장할 확률이 높은 토큰을 예측하는 방식으로 응답을 생성한다. 그런 이유로 종종 오류를 의미하는 환각(hallucination) 현상을 낳기도 한다.
필자가 MS 코파일럿으로 생성한 창조의적 AI
그럼에도 불구하고 AI는 인간이 1분 안에 장미꽃의 용도를 다섯 가지 정도 떠올릴 때, 100가지가 넘는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다. AI라는 ‘버튼’은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역량을 강화해 일자리를 유지하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현재의 기술 발전 속도를 고려할 때, AI는 장차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AGI(범용 인공지능)로 진화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인간-AI 협업이 필수다. 인간-AI 협업 방식에 따라 공동 지능은 ‘켄타우로스’ 유형 또는 ‘사이보그’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켄타우로스 유형은 그리스 신화의 반인반마(半人半馬)처럼, 인간과 AI 각각의 역할을 하면서도 상호 도움을 주는 협력 모델이다. 사이보그 유형은 인간과 AI가 실시간으로 완전히 통합된 형태다. 가령, 의사가 AI 진단 도구를 참고하여 최종 진단을 내리는 유형이 전자라면, 환자의 신체에 이식된 인공 심장이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처럼 하나로 통합된 유형은 후자에 속한다.
필자가 MS 코파일럿으로 생성한 켄타우로스
‘외계인 AI’는 이제 우리의 삶에 깊이 들어와 있다. 이제 AI는 인간의 동료일까? 코치일까? 혹은 창조의 조력자일까? 문제상황에 맞는 협력의 유형을 생각하고 협업의 지혜를 모색할 때다. 앞으로 인간은 AI와 ‘협업’하여 ‘공존’ 전략을 모색함으로써 더욱 유능한 존재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여현덕 카이스트 G-School 원장/기술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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