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국립수목원 과학미디어세미나
지난 3월 김해 상동 강변 매화축제를 하루 앞둔 7일 오후 김해 용당나루 매화공원의 개화하지 못한 매화 사이로 축제 무대가 설치돼 있다./뉴스1
올봄, 이상 저온 현상으로 전국 곳곳에서 봄꽃 축제가 ‘꽃 없는 꽃 축제’로 치러졌다. 광양 매화축제, 양산 원동매화축제 등은 행사일에 꽃이 제대로 피지 않아 비상이 걸렸고, 서울을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들도 축제 일정을 잡는 데 애를 먹었다.
국립수목원은 기후변화로 식물의 변화가 뚜렷해지자 전국 단위로 식물 계절현상 관측을 강화하고, 미래 변화를 예측하기 위한 연구를 본격화하고 있다. 꽃 피는 시기를 정확히 예측하면 꽃 축제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8일 국립수목원은 과학미디어세미나를 열고 식물의 계절 변화 모니터링 결과와 기후변화에 따른 식물 분포의 변화를 예측한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계절현상은 꽃이 피고 지거나 나뭇잎이 물드는 것처럼 식물이 계절에 따라 보이는 변화를 말한다. 국립수목원은 다양한 기관과 협력해 전국 47개 지역에서 식물 219종을 대상으로 계절 변화를 관측하고 있다.
모니터링 결과, 대표적인 봄꽃인 왕벚나무의 개화 시기는 매년 평균 0.8일씩 빨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여 년 전만 해도 벚꽃은 4월 11일께 피었지만, 최근에는 4월 3일로 일주일 이상 앞당겨졌다. 진달래도 매년 1.2일씩, 생강나무는 매년 1일씩 개화 시기가 빨라지는 추세다.
국립수목원은 관찰 데이터를 기반으로 2020년부터 봄꽃 개화와 가을 단풍의 변화를 예측하는 지도를 발간했다. 단풍 예측은 처음에는 단풍나무 1종만 대상으로 했지만, 현재는 졸참나무, 은행나무 등 다양한 수종으로 확대됐다. 봄꽃 모니터링도 다양한 종을 추가해 관찰 범위를 넓히고 있다.
임영석 국립수목원장은 “여러 데이터를 축적한 다음에 딥러닝을 통해서 예측 결과와 실제 개화 시기의 오차를 점점 줄일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딥러닝은 인공지능(AI)이 대규모 정보를 학습해 스스로 패턴을 파악하는 기계학습법이다. 김동학 국립수목원 연구사는 “현재도 예측 모델과 관측 결과 간 오차가 해마다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28일 열린 국립수목원 과학미디어세미나에서 김동학 국립수목원 연구사가 발표하고 있다./한국과학기자협회
관측 방법의 고도화도 추진되고 있다. 기존에는 조사원이 직접 현장을 방문해 식물의 변화를 확인했지만, 앞으로는 드론과 AI 기술을 활용해 사진만으로 개화 진행 정도를 분석하는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다. 김 연구사는 “향후에는 해외처럼 관측용 타워를 설치해 보다 객관적이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신 생명과학 기법도 활용한다. 임영석 원장도 “꽃 개화 시기를 리보핵산(RNA), 단백질 변화를 기반으로 예측할 수 있는지 살피는 연구도 최근 시작했다”고 밝혔다. RNA는 DNA 정보를 복사해 단백질 합성에 쓰는 유전물질이다.
국립수목원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식물 계절 관측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김동학 연구사는 “시민들이 전국 어디서나 나무의 개화와 단풍 시기를 쉽게 보고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빠르면 올해 하반기 서비스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목포대, 경북대, 충북대 등과 협력해 대학 교육 과정에도 활용될 계획이다.
국립수목원은 기후변화로 인한 식물 분포 변화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조용찬 국립수목원 연구사는 “한라산, 지리산의 구상나무 군락이 지난 10여 년간 크게 줄어드는 것을 포함해 기후 변화에 따른 피해가 가시화되고 있다”며 “현재 다양한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라 식물의 분포 변화를 예측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반도에 서식하는 식물 180여 종을 대상으로 모델링한 결과, 기후변화로 인해 남부 연안과 호남 내륙 지대, 동해 연안에서 식물 다양성이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조 연구사는 “다양성이 감소하는 지역은 새로운 종의 유입이 필요한데, 남해안처럼 바다에 접한 지역은 그마저도 쉽지 않아 세밀한 관리가 필요하다”며 “매미꽃과 같은 일부 종은 기후변화로 서식지가 붕괴되고 멸종 위기에 처할 수 있어 내성 품종을 개발해 보존하는 것과 같은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립수목원은 현재 국내 자생 수종 450종 중 기후변화로 인해 멸종 위험이 높은 종을 찾고 있다. 앞으로는 식물 군집 단위의 분포 변화를 파악해 더욱 정밀한 대응 전략을 마련할 계획이다.
임영석 원장은 “기후변화로 인한 식물 생태계의 변화가 점진적이 아니라 급격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며 “국립수목원은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딥러닝 기술과 산림 위성 등을 활용해 예측 정확도를 높이고, 미래 생태계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연구를 적극적으로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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