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개헌’ 전문가 대담
지난 21일 서울 중구 조선일보사에서 헌법·행정 전문가들이 지방분권과 개헌을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민호 세종시장, 정대철 헌정회장,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 우동기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 /박성원 기자
6월 3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개헌(改憲)’이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헌법·행정 전문가 4명이 22일 조선일보사에서 지방 분권과 개헌을 주제로 대담했다. 정대철 헌정회장과 우동기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 최민호 세종시장,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이다. 이들은 “이번 대선이 1987년에 만든 낡은 헌법을 뜯어고칠 적기”라며 “대선 때 개헌안을 놓고 국민들이 선택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개헌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정 회장은 “작년 12월 3일 비상계엄의 교훈”이라고 했다. 그는 “제왕적 대통령이 한순간에 민주 질서를 망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지 않았느냐”며 “대통령이 쥔 권한을 나눠야 한다”고 했다. 정 회장은 “국민 67%가 개헌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면서 “개헌은 국민의 요구”라고 했다.
최 시장은 “지금은 지방 소멸, 저출생·고령화, 정치 양극화 등 새로운 ‘삼각 파도’가 밀려오는 상황”이라며 “1987년에 제정한 현행 헌법으로는 대응하기 불가능하다.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성 전 총장은 “지금 우리 헌법에는 군인과 경찰은 훈련 중에 다쳐도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조항(헌법 29조 2항)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했다.
이들은 “1987년 이후 대통령 8명 중 6명이 비극적인 말로를 맞았다”며 “이건 우리의 헌법 시스템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대선 때마다 개헌 얘기가 나왔지만 그때뿐이었다. 정 회장은 “정치권이 개헌을 (당선을 위한) 정치적 도구로만 쓸 뿐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성 전 총장은 “이번에는 각계각층이 대선 후보들에게 개헌 약속을 지키도록 압력을 넣자”고 했다. 그는 올해 안에 개헌안을 만들어 내년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정 회장은 “지금 정치 지도자 중 개헌에 가장 부정적인 사람이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라며 “이 전 대표가 결심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지난 23일 열린 민주당 경선 후보 토론회에서 “개헌 문제를 그렇게 시급하게 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개헌을 통해 ‘지방 분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작은 지자체들을 통합해 규모를 키우고 지방세 징수 등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얘기다.
우 위원장은 “국민의 삶을 바꾸는 건 우리 동네 시청과 군청”이라며 “그동안 중앙의 권력 구조 개편만 논의하니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한 것 아니냐”고 했다.
성 전 총장은 “프랑스는 2003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지방 분권을 대폭 강화했다”며 “우리도 지나치게 중앙집권적인 국가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1995년 지방자치를 시작했지만 1987년 제정된 현행 헌법엔 그러한 내용이 반영돼 있지 않다는 게 성 전 총장의 지적이다.
최근 여야 대선 후보들이 국회나 대통령실을 세종시로 옮기겠다는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성 전 총장은 “수도는 서울로 하고 세종은 제2의 수도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는 “대검찰청, 감사원은 왜 서울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이런 기구들을 세종으로 옮기면 자연스럽게 제2의 수도가 될 것”이라고 했다.
최 시장은 “우리 역사를 보면 고려는 개경, 서경, 동경을 수도로 삼았다”며 “꼭 서울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개헌을 통해 양원제를 도입하면서 상원과 외교·국방 등 기능은 서울에, 하원과 내치(內治) 기능은 세종에 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다만 “지자체들이 권한을 넘겨받을 준비가 돼 있느냐”는 시각도 적잖다. 일부 지자체들의 예산 낭비나 지방의회의 도덕적 해이 사례 때문이다.
성 전 총장은 “프랑스에 있는 ‘지방 감사원’ 제도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자체를 감사하는 독립 기구를 만들어 지자체의 예산 집행 등을 따져보자는 것이다.
우 위원장은 “지방자치를 도입한 지 올해 30년이 됐다”며 “지자체가 부패할까 봐 권한을 못 준다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 아니겠느냐”고 했다.
김동연 경기지사,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등이 주장하고 있는 4년 중임제 개헌에 대해 정 회장은 “책임총리제나 양원제, 지방 분권 등 대통령의 권한을 나누는 게 핵심이 돼야 한다”며 “4년 중임제만 도입하면 개악(改惡)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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