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삭감 없는 근로시간 단축 공약
“포괄임금제 근본적으로 재검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30일 노동시간 단축 공약으로 포괄임금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주 4.5일제를 거쳐 장기적으로 주 4일제를 추진해 노동시간을 단축하겠다고도 했다.
이 후보는 이날 오전 페이스북을 통해 “장시간 노동과 ‘공짜 노동’의 원인으로 지목돼 온 포괄임금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하겠다”며 “사용자에게 근로자의 실근로시간을 측정, 기록하도록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포괄임금제는 시간 외 근로수당을 실제 근로시간에 관계없이 급여에 미리 포함해 지급하는 방식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주 4.5일제를 당장 강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니 우선 포괄임금제를 재검토하고 실근로시간 기록을 법적으로 의무화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또 주 4.5일제를 도입해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기업에 대한 지원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그는 “평균 노동시간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하로 단축하겠다”며 “주 4.5일제를 도입하는 기업에 대해 확실한 지원 방안을 만들고, 장기적으로는 주 4일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2022년 기준 한국의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1901시간으로 OECD 회원국 평균 연간 근로시간인 1752시간보다 149시간 더 길다.
이재명 “포괄임금제, 공짜 야근 불러”… 폐지 가능성도 열어둬
[6·3 대선 레이스]
임금 삭감없는 근로시간 단축 공약
“使측에 실근로시간 기록 의무화”… 2040직장인 간담회선 “소득세 개편”
전문가들 “시간당 고용비용 증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수도” 우려
30일 오후 서울 구로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열린 ‘슬기로운 퇴근생활’ 직장인 간담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퇴근길 직장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근로자의 날’을 하루 앞둔 이날 이 후보는 “주 4.5일제를 거쳐 장기적으로 주 4일제를 추진해 노동 시간을 단축하겠다”고 밝혔다. 사진공동취재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30일 노동 분야 공약으로 ‘포괄임금제 재검토’를 내놓은 것은 그간 여러 차례 내놓은 ‘주 4일제’ 도입이 당장 추진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단계적 근로 시간 단축 카드를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추진 과정에서 “임금 등 근로 조건이 나빠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한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임금 삭감 없는 근로 시간 단축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기업의 고용 비용을 높이는 정책으로,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했다.
● 전문가들 “임금 삭감 없는 근로 시간 단축은 비현실적”
이 후보가 “근본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포괄임금제는 노동계에서 정해진 시간을 넘겨 일해도 별도 수당을 받을 수 없는 ‘공짜 야근’의 원인으로 지목되던 제도다. 현행법상 야근이나 휴일 근무 시 추가로 시간 외 근로수당을 줘야 하지만 포괄임금제는 이를 실제 근로 시간과 관계없이 급여에 미리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 후보 측은 포괄임금제 폐지 가능성도 열어둔다는 방침이다. 선거대책위원회 관계자는 “포괄임금제는 근무 시간 측정이 어려울 때 예외적으로 인정돼야 하는 제도인데 현재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적용돼 있다는 문제 의식이 있다”며 “포괄임금제 축소 또는 폐지의 전 단계로 실제 근로 시간 측정에 따라 임금 산정 체계를 세분화하는 등 중간 보완 과정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 측은 주 4일제 도입을 위한 선결 과제로 포괄임금제 전면 재검토와 함께 실근로시간 측정 의무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후보 선대위 관계자는 “현재는 근로자의 실질 노동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른다”며 “노동 시간에 맞게 임금을 주고, 연차를 확대해서 노동 시간을 줄이는 과정을 거쳐야 주 4일제로 갈 수 있다”고 했다.
이 후보는 포괄임금제 재검토를 언급하며 “기존 임금 등 근로 조건이 나빠지지 않도록 철저하게 보완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시간당 고용 비용이 증가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생산량을 유지하면서 근로 시간을 줄이려면 효율을 높이기 위한 자동화가 필수적인데, 기술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비용만 늘고 생산성은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콘텐츠 산업 등 일부 분야에선 포괄임금제가 꼭 필요하단 지적도 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영화나 드라마, 게임 등 창의성을 요하는 산업은 일과 휴식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다”며 “포괄임금제를 폐지할 경우 많은 관련 기업이 해외로 이탈하는 등 손실이 클 것”이라고 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노사 합의가 어려울 경우 노동중재위원회나 노동부 등 공공 영역에서 개입하는 등 방법이 제시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노동계에서는 포괄임금제를 즉시 폐지하고 주 4일제를 도입하라는 등 요구가 많은데 오늘 공약에선 ‘검토’ 수준으로 언급돼 절충안이 제시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 근로소득세 개편 시사하며 직장인 표심 공략
이 후보는 이날 주거비와 자녀 교육비, 교통·통신비 지원 등 직장인 대상 공약들도 내놨다. 월세 세액공제의 소득 기준을 높여 혜택 대상을 늘리고, 전세자금 대출 이자 중 일부를 주택도시기금으로 지원해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교육비 세액 공제 대상을 예체능 부문으로 확대하고 자녀 수에 따른 신용카드 세금 공제한도 상향 등 맞벌이 부모 대상 공약도 내놨다.
이 후보는 이날 퇴근 시간인 오후 7시 20∼40대 직장인 5명과 서울 구로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간담회를 진행했다. 간담회에서 이 후보는 앞서 여러 차례 언급해 온 근로소득세 개편을 재차 시사했다. 그는 “국가 세수 중 근로소득세 비중이 계속 늘고 있다”며 “명목임금이 오르니까 과표가 오르면서 세금은 느는데 물가 상승 때문에 실제 월급은 안 오르니 직장인들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고 했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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