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바라본 여성 이야기] 영화 마리아>
[장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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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마리아> 스틸컷 |
ⓒ 판씨네바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마리아>의 오프닝은 주인공의 사망으로 시작된다. 시간을 역행해 일주일 전으로 거슬러 가며, 과거 화려했던 무대 위 모습, 연인과의 추억, 어머니와 언니와의 기억 등 총 4막에 걸쳐 진행된다. 과거와 현재, 환상이 비정기적 등장하는데 컬러 화면은 대부분 현재, 흑백은 과거를 상징한다.
천상의 목소리라 불리는 소리를 잃어버리고 간과 심장이 좋지 못해 치료가 시급했던 마리아(안젤리나 졸리)는 검증되지 않은 약으로 버티며 복귀를 꿈꿨다. 점심마다 지휘자를 찾아 목소리를 검증받는 일을 반복한다. 느지막이 일어나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은 채 치장을 하고 거리로 나서는 똑같은 일상이 계속된다. 파리의 호화로운 집은 적막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노년의 오페라 가수의 말년은 호사스럽지 않았다. 가정부 브르나(알바 로르와처)와 집사 페루치오(피에르프란체스코 파비노) 그리고 두 마리의 강아지와 가족처럼 지내는 날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마리아는 약의 부작용으로 환상과 실재를 구분하지 못하고 잦은 섬망을 경험한다. 온전치 못한 정신은 환상 속의 인터뷰어 맨드랙스(코디 스밋 맥피)를 불러 <라 칼라스: 마지막 나날들>이란 영상 자서전을 남기는 과정을 이어간다. 그와 나누는 인터뷰는 아픈 기억과 기쁜 기억을 바쁘게 오가며 완성된다.
음악이 곧 삶 자체
마리아 칼라스는 뉴욕의 그리스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의 갈등은 잦았고 결국 언니, 어머니와 그리스로 돌아오게 된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딸에게 투영한 어머니는 오페라 가수 엘비라 데 이달고의 가르침을 통해 마리아를 아테네 음악원에 입학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로써 마리아는 17세에 아테네 왕립 오페라단의 공연에서 작은 역할로 데뷔하게 된다. 이후 '라 칼라스', '라 디비나'라 불리며 최고의 오페라 가수로 성장해 명성을 알렸다.
영화는 1970년대 전성기를 지나 53세로 갑자기 사망하기 전 마지막 일주일을 담았다. 일생 중 선박왕 오나시스와 깊은 관계를 중요하게 다룬다. 어릴 때는 생계 수단이자 어머니의 강요로 노래를 불러야 했던 강압이 멍에가 되었지만, 세계적인 소프라노로 성공한 후 오나시스와 만났을 때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무대에 서지 않았다.
극의 흐름상 오나시스와의 관계 때문인 것으로 전개된다. 그는 '날 위해 노래해'라며 대중 앞에 서는 것을 금지했다. 세상이 알아주는 뜨거운 연애를 했지만 결코 결혼하지 않았고, 오나시스가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했을 때도 내연 관계로만 남았다. 이 둘의 관계는 사랑인지, 애증인지 알기 힘든 미묘함으로 남아 영화의 몽환적 분위기와 어울린다.
마리아는 오래 갇혀 있어 새장 문이 열려 있어도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새처럼 타인을 위해 평생 노래를 불렀다. 그 애환이 고장 난 목소리에 스며들어 가 있어 가슴 아프다. 어머니, 연인, 대중에게 구속된 삶은 말년이 돼서야 자유의지로 발현된다. 짐을 내려놓고 '이제는 날 위해 노래할 것'이라며 굳게 다짐한다.
그러나 노래하려고 압박하면 죽음에 이를 것이란 의사의 경고는 현실이 된다. 짧은 생을 빛나게 살다간 마리아의 일대기는 상당수 비극을 다룬 오페라와 닮아 아련하다. 누군가의 강요와 속박이 아닌 자신을 통제할 주도권을 찾았지만 야속한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영화는 수미상관의 형식으로 끝나며 유종의 미를 갖는다.
여성 3부작의 마지막 작품
영화 <마리아>는 20세기 위대한 디바 마리아 칼라스의 전기 영화이자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여성 3부작의 피날레다. 세상에 영향력을 끼친 여성 중 첫 예술인을 다룬 작품이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전기 영화는 독특한 관점에서 재해석 된다. 인물의 내면을 환상과 접목해 경계를 허물며 가까운 주변인의 관점에서 인물을 바라본다. 잦은 플래시 백은 인물의 생을 압축하는 데 기인하고 클래식한 미장센은 인물을 돋보이게 만들어 준다.
앞서 <재키>(2016)에서 재클린 케네디로 분한 나탈리 포트만, <스펜서>(2022)에서 다이애나 왕세자비로 분한 크리스틴 스튜어트 모두 내면 연기로 극찬을 받았다. 세기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또한 안젤리나 졸리의 혼신의 연기가 주요 포인트다. 반년 동안의 트레이닝으로 마리아 칼라스에 빙의한 듯 자세, 호흡, 동작, 억양, 존재감, 대중과의 소통까지 완벽히 모사했다고 전해진다.
40년 동안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마리아는 각종 가십과 스캔들로도 유명했다. 16세기 구전 민속 음악이 시초인 오페라의 대중적인 형식 정립에 기여했으나, 이 또한 고급 예술의 위상을 떨어트린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하고 폄하됐다. 또한 남성 가수, 지휘자 폰 카라얀과 동등한 출연료를 줘야 한다는 발언을 해 음악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논란의 중심에 선 마리아는 커리어에 타격을 입게 된다. 급기야 컨디션이 좋지 못해 공연을 취소하는 일이 잦아지자 대중의 질타를 받으며 시들어 갔다.
미국에서는 넷플릭스로 지난해 12월 스트리밍 됐지만 한국에서는 극장에서 개봉했다. 천상의 목소리와 매혹적인 미장센, 마리아의 패션 감각을 스크린으로 확인하는 호사를 누리게 됐다. 영화를 본 후 깊은 여운을 즐기고 싶거나 마리아 칼라스의 삶에 더욱 관심이 간다면 다큐멘터리 <마리아 칼라스: 세기의 디바>(2019>를 추천한다. 세기의 디바의 진짜 모습을 만나볼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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