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업계 ‘실력주의 채용’ 바람
그래픽=양인성
“실력주의가 없는 대학을 다니느라 빚을 내지 말고, ‘팰런티어 학위’를 취득하세요.”
이달 글로벌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기업인 팰런티어는 이런 슬로건을 내걸고 인턴을 모집하고 있다. 인턴십의 이름은 ‘실력주의(Meritocracy) 펠로십’. 대학에 입학하지 않은 고졸 학생을 대상으로 한다. 약 4개월간 월 5400달러(약 767만원)를 받으며 일을 한 뒤에는 정규직 면접과 취업 기회가 주어진다.
팰런티어는 방대한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설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전장에서 지형·날씨·무기 등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에 맞는 전략을 수립해 주목받고 있다. 직원 수는 3700여 명에 불과하지만, 11만명의 록히드 마틴을 뛰어넘어 시가총액 1위(약 300조원)의 방산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인재가 회사 경쟁력의 원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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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최첨단 분야에서 대학 교육에 대한 불신이 바탕에 깔려 있다. 팰런티어는 “미국 대학은 입학 기준이 불투명하고, 극단주의와 혼란의 온상이 됐다”며 “오직 성적과 우수성만으로 뽑는 팰런티어로 오라”고 했다. 미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명문대 입시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며 우수한 고등학생을 선점하려는 반(反)대학 인턴십”이라고 보도했다.
◇테크 업계, 실력주의 열풍
글로벌 테크 업계에서 ‘실력주의 열풍’이 거세다. 원래도 빅테크들은 엔지니어를 뽑을 때 학벌보단 실력을 중시했다. 최근엔 더 나아가 “대학이 실력을 키우는 데에 도움이 안 된다” “대학 교육은 필요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첨단 기술 경쟁에서 더 빠르게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선 이론 위주의 대학 교육은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테크 업계에 널리 퍼지고 있다. 챗GPT를 만든 오픈AI도 채용 때 학력을 보지 않는다. IBM·애플 등 타 빅테크 기업도 매년 채용 시 학력 요건을 고려하지 않는 직무를 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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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 기업들이 단순한 ‘블라인드 채용’을 채택하는 것은 아니다. 팰런티어는 미 대학 시험인 SAT 1460점 이상(상위 5%) 점수를 요구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월 테슬라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채용 소식을 알리며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지원자의 학력이나 전 직장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오직 너의 코드(컴퓨터 프로그램)를 보내달라”고 했다. 기본 실력은 철저하게 검증하겠다는 것이다.
실력주의 열풍의 가장 큰 이유는 대학 기술 교육에 대한 불신이다. 매일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산업계는 크게 변하고 있는데 대학에선 흘러간 이론과 기술 위주로 교육한다는 것이다. 우수 인재는 높은 임금을 받고 기업에 가기 때문에, 실력 있는 교수도 대학에 부족하다.
대학은 예산 부족 문제 등으로 GPU(그래픽 처리 장치)와 같은 장비나 전력 등 인프라도 부족하다. 지난해 세계적 AI 석학 페이페이 리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스탠퍼드AI연구소 행사에서 “GPU의 부족은 우리 대학 연구자들이 경험하는 가장 큰 어려움”이라면서 “우리 AI 연구소조차 최신 GPU를 하나도 갖고 있지 못하고, 미국의 모든 대학을 합쳐도 챗GPT 같은 대형 언어 모델을 개발할 수 있는 자원이 없다”고 했다.
또 오픈 소스 생태계가 활성화되면서 꼭 대학에 가지 않아도 실력자들은 스스로 공부하고, 코드를 짜고, 실력을 키우는 것이 가능해졌다.
◇대학, 빠른 기술 변화 못 따라가
빅테크는 대학 교육 대신 철저한 실무 교육으로 인력을 키워내고 있다. 아마존은 ‘견습 제도’를 만들어 지원자를 모집 중이다. 엔지니어링 분야뿐 아니라 사이버 보안, 데이터 과학, 마케팅 등 40여 분야에서 글로벌 인재를 모집한다. 구글의 ‘부트캠프’와 ‘클라우드 커리어 트레이닝’, 메타의 ‘메타블루프린트’, 테슬라의 ‘테슬라스타트’ 등도 비슷한 ‘실전 채용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빅테크들이 인재 확보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오히려 대학을 나온 평범한 인력은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맞고 있다. 빅테크들이 데이터센터 투자금 등을 확보하기 위해 실력이 부족한 직원은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테크 기업들의 정리 해고 동향을 추적하는 웹사이트(layoffs.fyi)에 따르면 지난해 15만7214명이 해고됐다. 메타는 올 초 성과가 낮은 직원을 대상으로 5% 인력 감축에 나선다고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당분간 컨설팅 등 일부 부서에서 신규 채용과 충원을 중단한다. 단순 프로그램 개발 등 이들의 업무는 AI가 대체하고 있다. 케빈 스콧 MS 최고기술책임자(CTO)는 “5년 내에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코드의 95%는 AI가 만들 게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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