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를 음이온 상태로 만들어 고체 속에서 마치 액체처럼 빠르게 이동시키는 기술을 개발한 광주과학기술원(GIST) 연구진. 왼쪽부터 김상륜 교수, 김태현·김태승·이태경 석박사통합과정 학생. GIST 제공
한일 국제공동연구팀이 수소를 음이온 상태로 만들어 고체 속에서 마치 액체처럼 빠르게 이동시키는 기술을 개발했다. 수소 음이온의 전도도를 1000배 향상하는 데 성공했다. 차세대 수소 에너지 기술 실현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은 김상륜 화학과 교수 연구팀이 한국원자력연구원 및 일본 도쿄과학대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분자성 착이온을 활용해 고체 내 수소음이온의 전도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21일 밝혔다.
연구팀은 기존의 리튬이온전지나 전고체전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에너지 이동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일반적으로 고체 상태에서는 이온이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렵다"며 "특정 이온이 고체 내에서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면 리튬이온 전고체전지와 같은 에너지 저장·변환 기술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수소를 음이온(H⁻) 형태로 안정화하고 고체 내에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분자성 착이온을 활용해 새로운 구조를 설계했다. 페로브스카이트 구조의 결정 내에 수소화붕소이온(BH4⁻)과 수소음이온을 함께 배치하는 독자적인 설계 원리를 제안했다. 착이온은 중심 원자에 여러 개의 분자 또는 이온이 붙어 있는 구조다.
원자 수준에서 분자와 이온의 상호작용을 분석한 결과 착이온의 고환원성(전자를 내주는 성질)에 의해 수소 음이온이 안정화됐다. 착이온의 정전기적 상호작용이 약한 영역에서는 낮은 에너지 장벽(이온이 이동할 때 넘어야 하는 에너지)이 형성돼 수소음이온이 보다 쉽게 이동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BH4⁻와 수소 음이온이 공존하는 새로운 물질(Sr0.925Na0.075LiH2.625(BH4)0.3)을 단일상(균일한 결정 구조)으로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분석 결과 페로브스카이트 격자 안에서 착이온과 수소음이온이 무질서하게 섞여 있는 상태임이확인됐다. 무질서한 배열(높은 엔트로피) 덕분에 단일상 구조가 더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팀은 또 착이온이 주변 이온들과 비대칭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제자리에 고정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비대칭적 착이온이 만든 정전기적 상호작용이 약한 경로를 따라 수소음이온이 훨씬 더 빠르게 이동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착이온이 없는 기존 구조와 비교했을 때 수소음이온의 이온전도도가 무려 1000배 이상 증가했다.
김상륜 교수는 “이번 연구는 세계 최초로 착이온에 의한 수소음이온 전도를 구현한 사례로 앞으로 수소 기반의 새로운 친환경 에너지 기술 개발에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미국화학회지’에 17일 온라인 게재됐다.
<참고 자료>
- doi.org/10.1021/jacs.4c17532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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