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엔 ‘4차 산업혁명’... 22년엔 ‘컨트롤타워 도입’
李 “100조” 韓 “200조”... AI 이슈 선점 각축
업계 “투자는 환영... 구체성·방향성 고심無”
그래픽=정서희
6·3 조기대선을 앞두고 대권주자들이 ‘AI(인공지능) 공약’을 앞다퉈 내걸고 있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속 빈 강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구체성·방향성이 결여된 보여주기식 선언문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재원 마련 방안도 없이 ‘수십에서 수백조 단위’를 위시해 투자 규모를 두고 경쟁하는 상황이라 선심성 공약으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강 당의 대선 경선 후보들은 AI 투자 ‘규모’를 두고 각축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는 “AI 투자 100조원 시대를 열겠다”며 “핵심 자산인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최소 5만개 이상 확보하고 AI 전용 신경망처리장치(NPU) 개발과 실증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다.
김경수 민주당 경선 후보도 100조원을 제시했다. 다만 “향후 5년간 민관 공동투자를 이뤄내겠다”며 차별화에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한동훈 후보가 AI 생태계 조성까지 포함한 200조원 투자 구상을 꺼내들었다. 그는 ”의료 AI, 로보틱스, 국방 AI, 드론, 자율주행 등 실제 응용 분야에 전략적으로 투자하겠다”고 했다.
홍준표 후보는 AI 분야를 포함한 초격차 기술에 50조원 이상 투자하겠다고 했다. 이공계 출신인 안철수 후보는 20조원 규모의 스타트업 펀드를 조성해 ‘창업국가’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냈다. 나경원 후보도 AI 분야에 1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했다.
정치권에서 ‘과학기술 패권 시대에 선도 국가가 돼야 한다’는 공감대는 일찌감치 형성됐다. 2022년 대선 국면에서는 주로 컨트롤타워 부재를 해소하는 방안을 제시하는데 과학기술 공약이 집중됐다.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대통령 직속의 민관 과학기술위원회 설치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과학기술부총리 도입을 내세웠다.
2017년 대선 때는 4차 산업혁명 공약 경쟁에 불이 붙었다. 대선 주자들이 ‘저성장의 늪’에 빠진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자 미래 먹거리로 4차 산업혁명을 내세우면서 관련 계획을 쏟아냈다.
이번에 AI 공약이 화두로 나온 것은 글로벌 디지털 패권 경쟁이 날로 심화하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후보들은 국가 전략자산이 될 AI 이슈를 선점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이다. 또 계엄 및 탄핵을 거치면서 국민들의 정치 피로도가 높아진 만큼, 이념성 공약보다 실용적 공약을 통해 중도층 표심을 잡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대규모 투자 자체는 환영할 만한 일이라는 입장이다. 실제 정부의 적극적인 예산 지원과 투자를 ‘시급한 현안’으로 꼽아왔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미국 빅테크 업체 한 곳이 쓰는 돈이 10조원 정도”라며 ”(우리가) 10대 경제 대국이라는 점에서 (투자 규모가) 100조원 이상은 나와야 설득력이 생긴다. 규모 자체를 잘못 제시했다고 보진 않는다”고 했다.
다만 투자 대상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 등 구체성과 방향성이 떨어지는 것은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강성주 세종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다들 펀드 조성하고 비용 투입하는 얘기를 하는데 정작 AI 구현에 필요한 데이터센터 전력 문제나 토지 문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며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했다.
‘대규모 투자’ 자체에만 방점을 두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원석 연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아무리 투자해도 미국과 중국을 따라갈 수는 없다. 그렇게만 해서는 승산이 없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인터넷 자체를 개발한 것은 아니지만 기존의 풍부한 데이터를 활용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인터넷 강국이 됐다“며 ”(대선 후보들이) 투자하겠다고만 할게 아니라, 어떤 AI 콘텐츠로 승부를 볼 것인지 찾아야 하는데 그런 고민은 보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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